이덕무(1741∼1793). 실학자.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庵). 아정(雅亭) · 청장관(靑莊館) · 영처(嬰處) · 동방일사(東方一士) ·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이성호(李聖浩)의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서자였기 때문에 관직에 크게 오르지는 못했지만 박학다재한 학문, 뛰어난 서체와 문장, 그림으로 이름을 떨쳤다. 1778년 심염조(沈念祖)를 수행하고 북경(北京)에 가서 청(淸)의 학자들과 교유했고 이 때 서학(西學)을 깊이 연구하여 서학의 윤리 · 종교적인 이적 측면(理的側面)은 배격하고 과학기술적인 기적 측면(器的側面)을 수용하는 이원론적 입장을 취하고 귀국 후 이를 바탕으로 북학(北學)을 제창하였다. 1779년 규장각의 검서관(檢書官)이 되어 박제가(朴齊家), 유득공(柳得恭), 이서구(李書九) 등과 함께 4검서관으로 명성을 떨쳤고 그 후 1791년 적성현감(積城縣監) 재직 중 사망하였다.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북학파(北學派)의 학풍을 정립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