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한] 李晩秀 [관련] 토사주문

이만수(1752∼1820). 자(字)는 성중(成仲), 호는 극옹(-翁) 혹은 극원(-園). 연안(延安) 이(李)씨. 복원(福源)의 아들. 1783년 사마시(司馬試)에, 1789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각각 합격, 대사성(大司成) 겸 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 공조판서, 수원유수,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 호조판서, 평안도 관찰사를 지냈다.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치안유지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유배되었으나 곧 사면되어 수원 유수로 부임했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다. 그래서 그가 대제학을 지내던 시절 <토사주문>(討邪奏文)을 짓기도 하였다. <토사주문>이란 황사영 백서(帛書) 사건으로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박해사실 때문에 청나라 황제가 문책할 것을 두려워 한 조정이 진주사(陳奏使)를 보내기로 하고 이 진주사가 청나라 황제를 만났을 때 전한 글을 말한다. (⇒) <토사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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