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등 [한] 李陽登 [관련] 진목정

이양등(?~1868).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서울 태생으로 박해를 피해 멀리 경상도 울산의 죽령(竹嶺, 대나무고개)으로 내려와 공소회장을 지냈다. 병인박해를 피해온 김종륜(金宗倫, 루가), 허인백(許仁白, 야고보)를 만나, 이들 3인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더 깊은 산중으로 찾아 헤매다가 경주땅 산내[현재 경북 월성군 산내면]에 있는 소래동 단수골이란 석굴(石窟)을 발견하여 그곳을 피난처로 삼아 목기(木器)를 만들어 팔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1868년 5월 ‘덕산묘지도굴사건’의 여파로 전국적인 박해가 있었고, 이들 셋은 이때 경주 진영의 포졸들에게 잡혔다. 경주 진영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고, 8월 울산감영으로 이송되어 이틀 후인 8월 14일(음 7월 28일) 장대벌 형장에서 효수되었다. 이들의 유해는 허인백의 부인 조애에 의해 수습되어 사형장 근처의 다리 밑에 가매장 되었다. 그 뒤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면서 유해는 월성군 산내면 진목정 안산에 합장되었고 1932년 5월 19일 대구 감천리 공원묘지로 이장되었다. 1962년 10월 25일 석곽에 모셔져 공원묘지 산위에 있는 신천동 복자성당 구내로 이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진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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