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진(?~1830).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 이종사촌 신태보(申太甫)와 함께 입교, 주문모(周文謨) 신부 입국 후, 성사(聖事)를 받기 위해 서울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신부를 만나지 못해 매우 낙담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1805년 한 배교자의 밀고로 체포되었으나 신태보가 관헌을 매수, 석방되었다. 그 뒤 정약용(丁若鏞), 홍낙민(洪樂敏)의 아들 홍우송, 신태보 등과 성직자영입운동(聖職者迎入運動)을 전개, 1811년과 1813년 두 차례에 걸쳐 성직자의 파견을 요청하는 편지를 갖고 북경을 왕래하였다. 그러나 조선 교회측과 북경교구장 수자 사라이바(Souza-Saraiva) 주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직자 파견이 어렵게 되자 오직 개인적인 신앙생활에만 전념,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교우들을 권면하다가 1830년 경기도 양지(陽智)에서 사망하였다.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의 기록(Mgr. Daveluy,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ee, vol. 4)에 의하면, 이여진은 죽기 전에 자신이 죽으면 가슴에 구멍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과연 사후, 가슴에 5개의 구멍이 생겼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