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에 위치한 고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 애급이라고도 불리며 현재의 국명은 이집트아랍 공화국이다. 국토 100만 1.449 km2, 인구 4,167만명(1982년 추계)인 이 국가에는 16만명의 가톨릭 신자가 15개 교구 199개 본당을 이루고 있다(1982년 현재).
이집트는 구세사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였다. 고대에 유복했던 이 땅은 굶주린 성조들이 몸붙여 살던 곳이요(창세 12:10). 패전한 이스라엘인의 피난처이자(예레 42~) 예수께서 피신한 곳이기도 하다(마태 2:13).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던 이집트제국은 일찍이 히브리인들을 억압하기도 했으나(출애 1장-13장) 제국의 세속적인 영화가 이스라엘인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다윗왕(2사무 20:23-26)과 솔로몬왕(1열왕 4:1-6)은 이집트의 정치제도를 모방하였고, 사마리아(호세 7:11)와 예루살렘(2열왕 17:4)은 위기에 처했을 때 이집트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문화의 고장으로 모세가 교육받은 곳이며(사도 7:22) 우상숭배와 마술의 고장으로 이스라엘을 유혹하였다(예레 44:8). 야훼께서 출애급을 단행하실 때 이집트를 벌했으나, 이집트가 회개하고 당신을 섬기도록 섭리하신다(이사 19:16-25).
그리스도교의 공동체가 2세기 이전에 에집트에 존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성신강림 때 사도들의 설교(사도 2:10)를 들은 사람 중에는 이집트인이 포함되어 있고, 마르코가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웠다는 전승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을 분이다. 2세기 말엽 이집트 교회는 굳건한 조직을 갖춘 모습으로 역사에 나타나며 이 시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데메트리오(Demetrius, 189~231)의 활약이 컸다. 셉티무스 세베루스(Septimus Severus) 황제 및 데치우스(Decius, 249~251) 황제의 박해를 견디어낸 이집트 교회는 칼체돈 공의회(451년)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스코루스(Dioscorus)의 그리스도 단성론이 이단으로 배격되기도 했으나 글레멘스, 오리제네스 등 지도자를 배출하면서 번성하였다. 3세기 성서가 번역되고 테베를 중심으로 수도원이 발달하였는데 예로니모가 쓴 테베의 바울로의 일생(Vita pauli)과 아타나시오가 쓴 안토니오의 일생(Vita Antonii)를 통하여 당시 수도자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집트는 642년 이후 아랍의 지배를, 1517년 이후에는 터키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간 혹독한 박해로 3,000여개의 교회가 파괴되었고 참된 신앙의 자유는 1882년부터 보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