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한] 箴言 [라] Liber Proverbiorum [영] Book of Proverbs

우리가 알고 있는 잠언은 기나긴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결정체이다. 잠언은 솔로몬 시대에 시작되어 기원전 5세기나 4세기경에 끝을 맺은 문학적 문화적 활동의 저작품으로 이 저서는 5세기 동안의 이스라엘에서의 지혜의 흐름을 표명하고 있다. 잠언은 곧 이스라엘 백성의 지혜의 참된 선집이다.

1. 명칭과 잠언 이해를 위한 열쇠 : 히브리 성서 속에서 이 책의 이름은 Meshalim으로, 내용에 적합한 용어이다. Meshalim의 단수 명사인 Mashal은 비교적 융통성 있는 문학양식처럼 보여지며 상이한 시에 적용되고(민수 21:27-30, 시편 49:5, 78:2) 신탁에(민수 23:7 · 18 등), 풍자시에(이사 14:4 · 41, 2:4), 비교 요소들이 지배하고 있는 담화문에(에제 17:2, 21:5, 24:3), 민중적 속담이나 금언에(1사무 10:12, 24:14, 에제 12:22-23, 18:2-3)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비교와 정교하게 다듬어진 금언이 특징적인 잠언(10:1-22 · 16, 25-29장)은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요소들인 결핍되어 있지 않은, 차원 높으면서도 정선된 주제들에 대한 상이한 형태의 시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어 번역인 paroimiai와 라틴어 번역인 Proverbia는 이 저서의 내용과 히브리 단어에 부합되게 번역하다 보니 너무 일반적으로 격언이나 금언만을 상기시킨다. Mashal이라는 히브리 용어를 현대어로 정확하게 번역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잠언 안에서 발견되는 단편들의 총체는 ‘이스라엘의 왕이며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의 수호 아래 속한다. 솔로몬이라고 하는 이름은 그를 규정해 주는 두 개의 중요한 명칭을 취하고 있다. 이 같은 선집을 소개하면서 수집가는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또한 그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이와 같이 전자를 ‘이스라엘의 왕’처럼 간주함으로써 지혜의 왕적(王的) 기원의 개념, 즉 고대의 모든 동양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개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왕이 주님이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더욱 큰 의미를 지니는데 이와 같이 왕은 ‘하느님의 신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2사무 14:18-20, 잠언 16:10-15).

물론 왕들 중에는 예언자적인 그들의 직무를 거역하는 악왕(惡王)들도 있었는데 잠언은 이점을 잘 알고 있다(28:16, 29:4). ‘다윗의 아들’이라고 특별히 지적하면서 수집가는 잠언의 내용이 속사(俗事)의 영역으로 잠입해 갈 위험이 있는 것을 성화시켰다. 주님으로부터 기름 부음받은 자인 다윗은 계약과 언약을 가져왔던 인물이다. 이 점에 대해 잠언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특별히 종교적인 신학으로서 끌어낼 수 있는 사실로부터 잠언의 지혜가 나타날 수 있었다고 본다.

요약하면, 잠언 전체 31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 표명되고 있는 하느님 계시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것들은 이 같은 표현에 대한 인문주의적 방식을 제공한다. 이것들은 이스라엘 대왕의 수호 아래 이루어진 것이기에 인문주의적 방식의 탁월한 한 부분처럼 간주된다.

2. 구조 : 저자의 다양성, 그리고 내적 비판이 제공해 주는 많은 자료들, 즉 취급되고 있는 자료의 다양성과 문학유형의 상이성은 잠언을 8개 부분으로 구분하게 한다. 부분, 취급 구체, 문학유형, 저자 순으로 분석하면,

① 1:8-9:18 = 지혜를 얻도록 초대, 지혜의 열매, 지혜에 대한 찬양, 각 파트별로 약 10개에 해당하는 절, 무명(無名).

② 10:1-22:16 = 반대병행법(反對竝行法)이 나타나는 2행시(10-15장) 또는 유사병행법이 나타나는 2행시(16-22장)로 된 Meshalim, 행동규칙 병행법, 2행시 솔로몬.

③ 22:17-24:34 = 이웃에 대한 의무, 금주규칙, 나태, 유사병행법으로 된 4행시, 현자들.

④ 25-29장 = 상이한 금언들, 2행시, 비교, 반대명제, 솔로몬과 히즈키야의 율사들.

⑤ 30:1-14 = 신적 지혜, 인간의 하찮음, 유사병행법으로 된 4행시 아구르(Agur).

⑥ 30:15-33 = 유사적, 점증적 병행법으로 된 숫자적으로 된 Meshalim, 유사적 그리고 종합명제적 병행법, 무명.

⑦ 31:1-9 = 왕들에게 대한 조언, 유사적 병행법으로 된 4행시, 마사(Massa)의 왕인 르무엘(Lemuel).

⑧ 31:10-31 = 현숙한 아내에 대한 찬양, 종합명제적 병행법으로 된 알파벳식 시, 무명.

이 책의 근간이 되고 있는 요소는 ‘솔로몬의 금언’(둘째와 넷째 부분)으로서 이 이중집(二重集) 위에 이 책이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5개의 부록이 첨가되어 있는데 첫 번째 집(集)인 10:1-22:16과 세 번째 부분인 22:17-24:34이, 그리고 두 번째 집인 25-29장은 히즈키야 통치하에서(25:1 참조, 즉 기원전 716∼687년 사이) 수집되었을 것이다. 이 두 개의 집에 실려 있는 다수의 금언에 관계되는 점에 있어서 솔로몬이 저자로 솔로몬이 저자로 간주되는 것에 반박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상기한 후기 첨가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후기 첨가 내용들 속에서 아라마이즘과 예언자 그리고 신명기로부터 분명히 영향을 받은 모습들이 발견된다는 사실로써 뒷받침된다. 솔로몬적 집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절정에 이르렀고 이것은 두 번째 집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3. 연대와 저자들 : 잠언 안에 나타난 각 단편들의 연대와 저자의 신분을 밝힌다고 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중요성을 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총집의 근본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할 수 있다. 구약성서의 다른 책들의 경우처럼 구전(口傳)이, 글로써 쓰여져 고정되기 전에 이미 선행하였다. 그런데 구전 전달은 관직에 종사하는 자들이 훌륭한 정신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왕가의 율사들 환경권 안에서 아주 일찍 그 빛을 보았어야만 하였다. 이 같은 행정적 관심사는 잠언에서보다 가장 오래된 이집트 교범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정시대는 금언집의 산실로서 특권받은 시대처럼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배 이후 시대야말로 그 형태를 갖추고, 가까운 이웃이 지혜를 가져다 쓰는데 위업을 이룩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잠언 1-9장이 더 후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판단하게 하는 데 오랫동안 지주가 되어왔던 문학비평들은 최근에 와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4. 교의(敎義) 및 메시지 : 잠언 전체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일반적 교의를 살펴보자. 이스라엘 백성은 사막의 체험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세로부터 종교적, 윤리적, 사회적인 의무에 대해 충분할 만큼 계시자격인 일체의 원칙을 받았다. 예언자들의 가르침과 모세오경의 유기적 진전이 정착되고 옛 법들이 심화되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하느님, 세상, 사회, 가정, 인간에 대한 명확함이 그들의 정신 속에 스며들게 되었다. 그들이 ‘지혜’라고 하는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을 배웠을 때 그들은 과거로부터 얻은 것에 그들의 새로운 조건에 받아들여진 타종족 기원에서 온 착한 행실의 규칙을 첨부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이즘으로 인해 변형되고 유일신 사상으로 깊이 뿌리박힌 그들의 정신에서 전래된 이 모든 자료를 활기 있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과 율법 준수, 신심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신에 대한 의미, 초자연적 동향, 참된 섭리적 질서에의 조화를 그 무엇보다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다.

① 삶의 정도(正道) : 잠언 안에 함축된 금언들은 착한 행실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자기억제에 대해 강조한다. 즉 음식과 음주의 결제, 혀의 통솔 등이 강조된다. 윤리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상당수의 권고가 주어져 있으며 일에 있어서의 정직함, 결혼의 성실성, 판단에 있어서 공정성, 회사의 가치 등이 숙고된다. 더욱 승화된 차원에 있어서는 신앙이 윤리적 생활에 있어서 필요한 주춧돌처럼 인지된다. 끝으로 현자는 종교적 인간과 동일시되며 무식한 자는 무신론자의 범주에 속한다.

종교 또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 이것은 지혜의 유일무이한 원칙이다(1:7). 바로 이러한 점에서 잠언의 지혜는 타민족에게서 가져다 쓴 지혜와 구분된다. 이스라엘의 지혜는 결코 속세적이 아니다. 인간의 도를 준수하고 현자들의 가르침에 대해 숙고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는 현자가 될 수 없다. 세심한 준수와 균형있는 숙고야말로 현자의 교육 안에서, 해야 할 역할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현자는 주님께 대한 훌륭한 경외함에 의해 인도되는 한에 있어서만 그 목적에 이를 수 있다(15:33). 이 속에서 이스라엘의 지혜는 사제 전승에게처럼 예언 전승에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현자들은 서슴없이 예레미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예레 9:22-23).

모세오경의 추억도 결여되어 있지 않다. 보상과 처벌에 관한 신명기적 교의가 개인에게 적용된다. 역사가들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업적에 대한 보상의 원칙을 지적했다. 현자들은 각자의 행복이나 비참이 야훼의 법에 대한 충실성과 경멸에 달려 있음을 확인한다. 이 원칙은 현재 삶의 엄격한 한계 속에서 적용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논리는 거기에 순응하지 않으며 정신은 그것으로 혼란된다. 고통을 통해 현자들은 무덤을 떠나 있는 곳에서의 보상이나 처벌을 내포하고 또 다른 한 삶의 길, 곧 새로운 계시의 길을 준비한다.

② 잠언과 이스라엘의 옛 전승들: 잠언의 가르침은 모든 지혜문학과 같이 종교적, 사회적, 직업적 삶에 대한 본질적인 금언들이 입증되고 있는 귀중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설화자들의 교육법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교부 역사의 영웅들은(특별히 요셉) 정도(正道)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실천적 ‘지혜’에 순응하고 있다. 이 영웅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느님 섭리의 인도에 순응하고 세심하게 귀기울이고 있다(창세 12:4, 15:6, 22:1-3, 24:10-14 등).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로 가득 차 있으며(창세 17:3, 39:9, 42:18 등) 신뢰에 가득 찬 기도에 친숙해 있고(창세 18:16-33, 28:16-22, 32:10-13 등) 가족이나 개인적인 관심을 관리하는데 능숙하지만(창세 13:2, 21:5, 23:17, 25:31 등)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창세 27:6-40) 타인의 권리에 대한 존경한다(창세 13:8-9, 23:1-18, 43:11 · 12). 나아가 부부 상호간의 충실성의 본보기(창세 16:2-3, 25:1, 29:10), 관대한 용서(창세 45:3-7, 50:15-21)등 종교적인 색채를 짙게 풍기지는 않으면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 주제들을 화합시키는 상당수의 구체적인 가르침들은 세속적인 것에 더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잠언이 이를 진전시키고 되새기고 있는 것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규칙과 적용의 기묘한 연결이 얼마나 교육적인 것인지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지혜유형과 역사유형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5. 잠언 안에 나타난 지혜 : 히브리어로 이 지혜를 지칭하는 전문적인 용어는 hokmah이고 이 hokmah를 소유하거나 최소한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를 hakam이라 한다.

① 인간의 지혜 : 인간에게 적용된 hokmah는 복잡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타나는데 인간의 행위들은 이 hokmah 덕분에 참된 목적에로 방향이 설정된다. 그러므로 이 hokmah는 윤리의 한계 속에 내포되어 있는 행위의 질서에 자리하고 있다. 이것의 구성요소는 다양하다. 즉 hokmah는 창조주 안에 원천을 두고 있는 실천적 학문(1:2, 3:20, 4:1 등)을 통해 행위를 올바로 하고 승화시켜 나가고 올바로 형성시켜 나가는 데 필수적인 준비과정으로 대두되고 있는 세심한 준수(1:2, 8:5-9, 14:8 등), 분별 있는 숙고(16:20, 21:12), 선견(3:21, 6:14), 성숙(12:16, 13:16 등), 통찰력(1:4, 2:11, 3:21)의 결과인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는 지혜는 완전을 소유하게 된다. 이 지혜는 하느님께 대한 경외함이나 hokmah(1:29, 2:5)의 원칙으로 이끌려지도록 자신을 내어놓는다.

② 인격화된 지혜 : 지혜가 질로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이 지혜는 개념론적 기관조직에서 해방되며 생존해 있다는 모습을 취한다. 지혜는 대낮에 많이 왕래하는 장소에, 소란스런 사거리에, 마을 입구에 서 있다(1:20-21). 그를 예언자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지혜는 자기의 외침을 통해 관심을 끌고자 한다. 예언자들처럼 지혜는 먼저 죄인들에게 곧 철부지들에게(1:22) 교만한 자들에게(3:24, 9:8, 15:12) 지각없는 자들에게(1:22, 15:5, 17:28) 말을 전한다. 불평 섞인 그의 힐책(1:22)은 재촉하고, 우정 어리고, 책임성 있는 초대(1:22-23)로 변모된다. 지혜는 하느님의 언어인 예언자들의 말을 한다(1:23b, 참조 에제 36:24-27). 또한 예언자들처럼 경고를 한다(1:24-27, 참조 이사 28:7-22, 예레 7:24-29). 충고와 훈계를 따르지 않을 때 복수를 할 것이다(1:28-31).

예언자인 지혜는 또한 관대한 주인의 특성을 소요하고 있다(9:1-6). 지혜가 건설한 거처로 사람들을 축제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모든 사람들은 거기에서 먹고 마신다. 물질적인 성전의 봉사 예식에서 빌어온 거처, 희생제물, 식사와 같은 형상들로부터 영성적 영역에서 출중한 천상잔치의 예고된 형태를 숙고해 볼 수 있다. 지혜는 거기서 자기의 교의적 직무를 성취할 것이다. 지혜의 가르침은 감미롭고 물질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또한 hokmah는 자기를 고유하게 치켜세울 수 있고(8:1-12) 고귀함의 호칭들을 거절할 수 있다(8:22-36). 지혜는 모든 인간들에 앞서 자리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설교는 두말할 여지없이 공번된다(8:1-3, 참조 이사 40:9, 49:6). 인간이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지혜는 본성상 지니고 있다. 지혜야말로 지도자들에게 권위와 윤리적 공정을 준다(8:15-16). 지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한다. 지혜를 찾는 자는 그것을 얻을 것이고(참조 마태 7:7, 루가 11:9·10) 그것에 의해 충만될 것이다(817-21).

③ 신적 지혜 : 지혜는 영원으로부터 존재를 부여하고 그를 낳은 하느님과 내적 통교를 누린다(8:22-26). 창조의 업적이 이루어지는 동안 hokmah는 우주의 건설에 한 몫을 하고(8:27-31a) 부드럽게, 동행자 인간을 찾는 것처럼 구체화되면서 업적의 주체가 되었다. 그의 교훈을 듣는 자들에게 있어서 신적 지혜는 삶과 죽음의 문제인 것이다(8:32-36).

예언자 또한 잔치집 주인의 형태 아래 나타난 지혜에 대한 상기는 단순한 문학적 인격화에서 유래한 다고 보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다. 최소한 우리는 신약성서의 저자들에게 육화(肉化)된 지혜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하게 하는 선상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신적 지혜에 대한 묘사는 요한복음 서언과의 접근을 거부할 수 없는 용어들을 사용한다. 신약성서의 조명하에서 초세기 교부들과 대부분의 성서주석 학자들은 이 내용을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으로 주석했던 것이다. 의미상으로 볼 때 이 같은 주석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을 적용해서 교회는 전례 속에서 영원한 지혜를 묘사하고 있는 모든 내용을 육화된 로고스의 어머니 역할을 하도록 하신 하느님 계획 속에서 영원으로부터 예정된 동정녀 마리아에게 적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잠언이 신약성서 안에서는 자주 상기되고 있으나 교부들에 의해서는 별로 주석되지 않았다. 나아가 교회의 전례 · 용도 속에 잠언의 내용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동정녀 마리아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내용들). (安秉鐵)

[참고문헌] Ancien Testament, TOB, 1977 / The Interpretater’s Dictionary of the Bible, Abiugdon Press / H. Cazelles, Introduction critique l’Ancien Testament, Desclee et Cie, Paris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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