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벌 [한] 將臺∼

장대(將臺)가 있는 벌판이라는 뜻으로,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가서 군사들을 명령하던 돌로 쌓은 대(臺)를 말한다. 조선왕조시대 군영(軍營)에는 연병장 정면에 장대가 있었고 연병장에서는 군사들의 훈련 · 사열 · 열병 이외에 간혹 중죄인에 대한 사형 즉 군문효수(軍門梟首)가 집행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군대가 주둔했던 많은 곳이 장대벌로 불리고 있는데, 울산(蔚山)과 동래(東萊)의 장대벌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한 순교지로 유명하다.

① 울산의 장대벌 : 병인(丙寅)박해를 피해 경주 근처의 진목정(眞木亭)에서 은거하던 허인백(許仁伯, 야고보) · 김종륜(金宗倫, 루가) · 이양등(李陽登, 베드로) 등이 1868년 체포되어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한 곳이다. 현지명은 울산시 병영동 5번지이다. 울산의 장대벌에서 순교한 이들 세 명의 순교자들은 순교 직후 진목정에 안장되었다가 1932년 대구 감천리(甘泉里)의 교회묘지로 이장되었고 1973년 다시 대구 신천동 복자성당으로 이장되었다.

② 동래의 장대벌 : 병인박해를 피해 울산에서 은거하던 이정식(李廷植, 요한), 이관복(李寬福, 프란치스코, 이정식의 아들), 박소사(朴召史, 마리아, 이관복의 아내), 이삼근(李三根, 베드로, 이정식의 처남), 양재현(梁在鉉, 마르티노), 이월주(李月柱), 차장득(車長得, 프란치스코), 옥소사(玉召史, 바르바라) 등이 1868년 체포되어 이해 8월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한 곳이다. 위치는 현재 부산시 남구 광안동의 육군 인쇄공장 자리이다. 이곳에서 순교한 8명의 순교자들은 순교 직후 부산 명장동(鳴藏洞)의 야산에 안장되었고, 이들 중 차장득, 양재현, 이월주, 옥소사 등의 유해는 1972년 오륜대 순교자 묘소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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