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한] 張勉

장면(1899∼1966). 정치가, 교육자. 본관은 인동(仁同), 호(號)는 운석(雲石), 세례명은 요한. 서울 적선동에서 구한말(舊韓末) 부산 세관장을 지낸 장기빈(張箕彬)의 아들로 출생, 1917년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를 졸업하고 1919년 도미(渡美), 1925년 맨하턴 가톨릭대학 문과(文科)를 졸업한 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79위 복자 시복식에 한국평신도대표로 참석하고 귀국, 평양교구에서 교회일을 보며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1931년 동성상업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33년 정지용(鄭芝溶), 이동구(李東九), 한기근(韓基根) 신부 등과 <가톨릭청년>을 창간하였고 1936년부터 1945년까지 동성상업학교 교장으로 인재 양성에 전력하였다. 8.15광복 후 정계(政界)에 투신, 민주의원의원(民主議院議員), 과도정부 입법위원을 거쳐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이해 제3차 파리 유엔총회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하여 신생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을 받아내고, 대통령 특사로 교황청을 방문한 뒤, 미국 맨하턴 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9년 초대 주미 한국대사로 부임, 1950년 영국 포덤(Fordham)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6.25동란이 일어나자 기민한 외교적 수완으로 유엔의 참전을 얻어냈다. 1951년 국무총리로 임명되었고 교황청으로부터 교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훈장을 수여 받았다. 1952년 국무총리직을 사임하고 야당의 지도자로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 1955년 신익희(申翼熙) 등과 민주당(民主黨)을 조직하여 1956년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57년 미국 시튼홀(Seton Hall) 대학에서 다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고, 1959년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에 피선, 이듬해 조병옥(趙炳玉)과 러닝메이트로 입후보했으나 낙선되었다가 4.19혁명으로 자유당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제5대 민의원(民議員)을 거쳐 내각책임제의 제2공화국 국무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집권 9개월 만에 5.16군사쿠테타로 실각, 그 뒤 5.16군사정권에 의해 정치활동을 금지당하고 한 때 이주당(二主黨)사건으로 투옥되었으나 석방된 뒤 종교생활에 전념하였다. 이미 청년시절부터 프란치스코 제3회에 입회하여 정회원(正會員)으로 활동한 것은 물론 정치 일선에서도 많은 정치가와 지식인들을 전교 입교케 하였는데 5.16군사쿠테타 이후는 소속본당인 혜화동본당의 평의회회장, 운영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보며 교리를 가르쳤다. 1966년 6월 4일 지병인 간염으로 사망, 국민장으로 포천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저서로는 ≪영한교회용어집≫(英韓敎會用語集, The Summary of Religious Terms, 1929), ≪구도자의 길≫(1930), ≪교부들의 신앙≫(譯書, 1944), ≪현대성녀 젬마갈가니≫(1953), ≪나는 왜 고통을 받아야 하나≫(1953), ≪나는 왜 고통을 받아야 하나≫(1962), ≪성 원선시오≫(1964) 등과 회고록 ≪한 알의 밀이 썩지 않고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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