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로사리오의 성모. 현재 명칭은 장계(長溪)본당이다. 일찍이 1850년께부터 최양업(崔良業, 도마) 신부의 활약무대였던 전라도 장수는 병인(丙寅)박해 때 모여든 팔도의 피난 교우가 교우촌을 이룩하게 되었다. 험악한 산악지대만, 인심이 순박하고 경치가 좋은 이 고장에 본당 설립의 기틀을 마련한 동기는, 1915년 경남 함양본당(咸陽本堂)의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와 전북 진안군(鎭安君) 어은동본당(魚隱洞本堂)의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가 이 두 본당의 인접지인 무주(茂朱), 남원(南原), 임실(任實) 등의 전교상 쉬어가는 중간지점인 장수면(長水面) 수분리(水分里)에 강당과 사제관을 건립한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사제의 부족으로 인하여 교회설립은 지연된 채 함양본당에서 이 지방을 포용해오다가, 1926년에 와서야 장수본당의 정식 발족을 보게 되었다.
초대(1926∼1928. 11. 8) 김필곤(金泌坤, 바르나바) 신부가 주임신부로 3년 동안 신설본당의 시설을 갖추기에 힘썼고, 2대(1928∼1931년) 석윤학(石允學, 바오로) 신부가 ‘소화(小花)학원’을 설립, 문맹퇴치에 기여하였다. 1931년 전라도 감목대리구가 된 뒤의 3년간은 신부 부족으로 공석 중이던 주임신부 자리에 3대(1934∼1939년) 김동욱(金東旭, 마티아) 신부가 부임하여 수분리에서 장수읍내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그 뒤 4대(1939∼1946년) 하근주(河漌珠, 요셉) 신부를 거쳐 5대(1946∼1947년) 이기순(李基順, 도미니코) 신부가 1946년 2월 5일 본당을 다시 수분리로 옮겼고, 6대(1947. 5. 27∼1948년)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 신부, 7대(1948. 8. 20∼1950년) 이철연(李喆淵, 프란치스코) 신부를 이어 8대(1950. 4. 10∼1950년) 조상익(趙相益, 베드로) 신부 때, 6.25동란으로 조 신부가 군목(軍牧)으로 입대하자 그 때부터 장수 본당은 3년 동안 남원본당(南原本堂)과 진안본당(鎭安本堂)에 소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3년 새로운 대지와 가옥을 매입하고 수분리와 장수를 망라하여 1954년 5월 19일, 장수군 계내면 장계리(溪內面 長溪里)에 성당을 짓고 본당으로 재출발하게 되었고, 이때 본당명을 장계(長溪)본당으로 바꾸었다. 그 후 김종택(金鍾澤, 요셉) 신부로부터 현재까지 9개 김봉희(金鳳熙, 요한) 신부에 이르고 있다.
한편 실제로 군소재지이면서도 본당 설치가 끊겼던 장수에 본당 설립 준비를 해온 장계본당 주임인 당시 김병운(金炳韻, 베네딕토) 신부가 1973년 2월에 현 위치인 전북 장수군 장수면 장수리에 대지를 매입, 9월에는 강당을 건립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이를 성취시킨 것은 현재의 장계본당 주임인 김봉희 신부인데 그는 장계본당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장계지역과 장수지역을 분리, 별도 운영하여, 1977년 5월 17일에는 사제관을 신축함으로써 1977년 7월 9일 새로운 장수본당을 창설하여 유서깊은 옛이름을 승계하였다. 역대 주임신부는 초대(1977. 7. 20∼1979. 9. 6) 왕수해(王壽海, 요한) 신부, 2대(1979. 9. 7∼1983. 2. 2) 이종원(李鍾源, 토마스) 신부, 3대(1983. 2. 3∼현재) 박성팔(朴性八, 안드레아) 신부이며, 1984년 6월 현재 신자수는 남자 420명, 여자 526명, 도합 946명이다. 전주교구 관하에 있는 본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