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덕표(1920∼1950). 신부. 세례명은 안드레아. 1920년 4월 16일 황해도 은율군 은율읍 남천리(殷栗郡 殷栗邑 南川里)에서 부(父) 전인택(全仁澤)과 모(母) 유루갈다(柳∼)의 3남 3녀 중 막내로 출생. 은율보통학교 졸업 후, 당시 은율본당 주임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의 추천으로 신학교에 입학,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組)[소신학교]와 천주공교신학교(天主公敎神學校)를 졸업하고 1946년 11월 21일 노기남(盧基南) 주교의 주례로 명동 대성당에서 사제로 서품, 서품 후 황해도 사리원(沙里院)본당 보좌신부로 임명되어 12월 20일 38선을 넘어 부임. 당시 북한 공산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환갑이 넘은 박우철(朴遇哲, 바오로) 주임신부를 대신하여 헌신적으로 사목하였고, 학생회, 소화데레사회, 예수성심청년회, 성모성미부인회, 요셉 노년회 등 많은 단체를 조직, 전교에 힘써 신입교우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게 하였다. 1950년 10월 12일 미사를 집전하던 중 북한 정치보위부원에게 납치되었는데, 그 미사는 북한교회에 있어 맨 마지막으로 봉헌된 미사였다. 며칠 후 사리원성당에서 1㎞정도 떨어진 정치보위부 방공호 속에서 입에 솜이 틀어 막히고 목과 양손을 전깃줄로 묶인 채 온몸이 전기고문당한 상처투성이의 시신(屍身)으로 발견되었다. 1977년 사리원 출신 교우들이 전덕표 신부를 추모하여 ≪북한교회의 마지막 종≫을 출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