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본당 [한] 殿洞本堂

조선조시대의 전주는 한양 이남에 있는 손꼽히는 웅도(雄都)이며, 전라감영(全羅監營)이 있던 고도(古都)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전동’은 순교지의 하나가 되었으며, 1791년 신해(辛亥)박해 때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이 처형되었던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곳에 현재의 전동본당이 터 잡고 있다. 신유(辛酉)박해 때(1801년)에는 이곳에서 유항검(柳恒儉)과 유관검(柳觀儉)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尹持憲), 김유산(金有山), 이우집(李宇集) 등이 교수형을 당하였다.

이러한 연혁이 얽힌 이 고장에 1889년 책임을 맡고 부임한 보두네(Baudounet, 尹) 신부가 1891년에 소양면 대성동(所陽面 大成洞)[당시 지명]에 성당 대지를 매입, 1908년에 프와넬(Poisnel, 朴) 신부 설계로 성당 준공을 보아, 초대(1889∼1915년) 주임신부로 취임 활약하였다.

이리하여 2대(1915∼1918년) 라크루(Lacrout, 具瑪瑟, 마르셀로) 신부는 성당 내부와 외부의 미화작업을 끝냈고, 1차 대전으로 인하여 출전하게 되었다. 3대(1918∼1920년) 김승연(金承淵, 아우구스티노) 신부를 거쳐 4대(1920∼1929년) 라크루 신부가 재취임, 사제관을 신축하고, 여교당(학원)을 설립, 최정숙(崔貞淑, 베아트릭스)에게 교장직을 위임하여 처녀들에게 교리와 학문을 가르치게 하였다. 1929년 8월 11일 라크루 신부의 선종 뒤, 5대(1929∼1937년)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는 1931년 전라도 감목대리구 감목대리직을 겸하였는데, 이 당시 부호 교우인 이학수(李學秀, 바오로) 회장과 그 아들 3형제는 경제적인 협조로 성당의 중요기관을 설치하는데 크게 도움을 끼쳤다. 1937년 전주교구 승격에 따라 김 신부는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뒤를 이은 6대(1937∼1938년)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신부는 1938년 3월 이미 건축되어 있던 교사에다 해성여학교(海星女學校)를 정식 설립하였다. 7대(1938∼1940년)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8대(1940∼1941년) 박문규(朴文奎, 미카엘), 9대(1941∼1942년) 최민순(崔玟順, 요한), 10대(1942∼1944년) 김후생(金後生, 바오로), 11대(1944년)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12대(1944∼1947년) 이상화 신부, 13대(1947∼1954년) 이약슬(李若瑟, 요셉), 14대(1954∼1961년) 강윤식(姜允植, 베네딕토), 15대(1961∼1963년) 오기순(吳基順, 알베르토), 16대(1963∼1967년) 김종택(金鍾澤, 요셉), 17대((1967∼1969년)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 18대(1969∼1972년)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19대(1972∼1974년) 범석규(范錫圭, 마티아), 20대(1974∼ ) 김환철(金丸喆, 스테파노) 신부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동본당은 전주시 전동 200의 1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 방지거 사베리오를 주보로 하고 있다. 건평 189평, 대지 4,000평이며, 부속건물은 160평이고, 1947년도에 설립된 성심유치원이 부속기관으로 되어 있다. 1984년 현재 신자총수는 3,564명이고, 전주 중앙본당(中央本堂)이 주교좌 성당이 되기 전까지에는 전동본당이 전주 주교좌 성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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