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사위정론 [한] 斥邪衛正論

유교(儒敎)에서 사도(邪道)를 물리치고 정도(定道)를 옹호하는 이론을 말하는데 이 말은 척사론(斥邪論), 척위론(斥衛論), 벽사위정론(闢邪衛正論), 벽위론(闢衛論), 벽사론(闢邪論), 벽이단론(闢異端論) 등의 용어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척사위정은 유교의 행동규범 속에서 진리를 옹호하고 사악함을 배척함으로써, 또 사상적으로는 반(反)유교적 사상들을 이단으로 배척하고 타파함으로써 진리 곧 유교를 수호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척사위정은 유교이념의 실현을 위한 사상적 체계이지만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하던 봉건시대에 있어서 동양의 여러 나라들은 사회와 지배이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때로는 사상적 자유를 억압하고 고착된 규범체계에 순종만을 강요하는 부정적 기능으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유교이념과 유교사를 통해서 볼 때 척사위정의 이념적 출발은 중국 요 · 순(堯舜) 시대에서 시작되어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당대(唐代)의 한유(韓愈)를 거쳐 송대(宋代) 주자(朱子)의 ≪변이단류≫(辨異端類)에서 이념적 체계가 확립되고 명대(明代)에 이르러서는 주자학과 양명학(陽明學) 두 학파의 대립에서 정통성 논쟁에 대한 척사위정론이 발생하며 그 뒤 17∼19세기까지 그리스도교와 서양사상에 대한 척사위정론이 대두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말 주자학이 도입되고 조선왕조가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하여 창건되면서 벽불숭유(闢佛崇儒)의 척사위정론이 발생했고, 이어 18세기말 천주교가 수용된 후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서구과학기술을 수용하여 타락한 지배체제를 개혁하려는 실학운동과 천주교를 신앙하는 서학운동이 발생하자 천주교와 서양을 배척하는 척사위정론이 발생했는데, 19세기말에 이르러 척사위정론은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 위협 속에서 수구파(守舊派)의 이념적 배경이 되어 민족의식의 발생을 자극하는 한편 한일합방을 전후해서 일어난 유생(儒生)들의 항일무장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 천주교 배척의 척사위정론은 17세기 이익(李瀷)의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에서 처음 보이는데, 여기서 이익은 천주교 교리에 대한 비판 끝에 천주교는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게 하는 종교라고 배척하고 있다. 이외에 17∼18세기의 문헌으로 안정복(安鼎福)의 ≪천학문답≫(天學問答), 신후담(愼後聃)의 ≪서학변≫(西學辨), 이헌경(李獻慶)의 ≪천학문답≫(天學問答), 홍정하(洪正河)의 ≪증의요지≫(證疑要旨) 등에서도 천주교 교리에 대한 유교적 비판 내용이 담긴 척사위정론이 전개되어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항로(李恒老)의 ≪벽사록변≫(闢邪錄辨), 이정관(李正觀)의 ≪벽사변정≫(闢邪辨正), 김치진(金致辰)의 ≪척사론≫(斥邪論), 김평묵(金平默)의 ≪벽사록≫(闢邪錄), 황필수(黃必秀)의 ≪척사설≫(斥邪說) 등의 척사위정론들은 학문적 비판이라기보다는 서양세력에 대한 배척적 증오감에 우러난 것이며 이 때문에 이후의 척사위정론은 편협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 이러한 척사위정론을 근거로 조선시대에는 1801, 1839, 1866, 1881년 네 번에 걸쳐 척사윤음(斥邪綸音)이 반포되었는데, 이는 곧 천주교 탄압의 법적 근거가 되었다. 결국 조선시대의 천주교 박해는 척사위정론을 사상적 근거로, 또 척사윤음을 법적 근거로 해서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洪以燮, 朝鮮儒家의 斥邪論에 대하여, 白性郁回甲論集, 東國大學校, 서울 1959 / 琴章奉, 조선시대 유학의 정통이념과 이단비판, 儒家와 韓國思想, 1980.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