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현 [한] 崔昌顯

최창현(1754∼1801). 순교자. 세례명 요한. 황사영 백서에는 최창현(崔昌賢)으로 나온다. 중인(中人)으로 역관(譯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고, 성격이 온순한데다가 활동적이고 정열적이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덕망이 높아서 그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의 가르치는 지도에 모두들 마음으로 따랐다. 그러므로 그가 총회장(總會長)이 되어 20년 동안을 하루같이 복음 전도에 몸을 바친 결과 초기 조선 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뿌리를 내려 다져질 수 있었다. 그의 집은 서울 입정동(笠井洞)에 있었으므로, 신자들간에는 관천(冠泉)이라는 호(號)로 널리 알려졌었는데, 그는 초창기 교회에 교리책 등 서적이 많지 않아 전교에 불편함을 느끼고 ≪주일분 첨례의 성경해설≫이란 한문책을 우리말로 옮겨 신자들에게 보급하여 교리지식을 높이기도 하였다. 한편 권일신(權日身), 이벽(李檗), 정약종(丁若鍾), 이존창(李存昌) 등과 함께 조선 교회 창립에 주동적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 성직자 영입을 위해서 앞장서서 활동하였다.

그의 이러한 활약과 명성으로 그는 신자들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1785년부터 형조(刑曹)에서 그의 체포를 꾀하였으므로 그는 일시 피신하여 체포를 모면했으나 1801년 1월 5일에 병이 나서 하는 수 없이 집에 돌아왔을 때, 배교자 김여삼(金汝三)의 밀고로 잡혀 포도청에 갇히게 되었다. 옥에 갇힌 그는 형리들의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처음에는 배교했으나 국청(鞠廳)에 와서는 배교를 취소하고 죽기로 신앙을 고백하여 판관(判官)에게 호교문(護敎文)까지 제출하였다.

이에 판관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그 해 4월 8일(음 2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정약종(丁若鍾) 등과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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