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아노 [원] Cassianus, Joannes

Cassianus, Joannes(360?∼435?). 교부. 아빠스 동방의 수도생활을 서양으로 도입한 사람이며, 반(半)펠라지우스파의 원조(原組)로 간주되고 있다. 소(小)스키디아(Scythia)(현재 루마니아령)에서 태어나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죽었다. 젊었을 때 베들레헴의 수도원에서 금욕수도생활을 시작, 386년 경 친구 제르마노(Germanus)와 함께 이집트를 여행, 이집트의 수도원 제도를 익히고 7년만에 팔레스티나로 돌아왔다. 얼마 후 그들은 다시 나일강 지역으로 가서 여러 수도단체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399년경 두 사람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성 크리소스토모와 접촉, 그에게서 카시아노는 부제(副祭)로 서품되었다. 그 후 사제가 되어 415년경 마르세이유로 갔으며, 그곳에 성 베드로 및 성 빅토르 남자수도원과 성 사브와 여자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네스토리우스 및 그 이단을 반박하는 7편의 책(De incarnatione)을 저술하였다. 이보다 훨씬 중요하고, 수세기에 걸쳐 영향을 남긴 것은 수도생활에 관한 저서들이다. 그 중에서도 ≪수도원제도에 관하여≫(De institutione, 417∼418)는 수도원 제도 및 죄의 근원(탐식, 사음, 탐욕, 분노, 질투, 나태, 오만)의 극복자를 논한 것이고, ≪시조 대담≫(Collationes Patrum, 419∼420)은 이집트에서의 수도사 시조와의 대화이다. 이 두 저서 속에 담겨 있는, “선 의지(善意志)는 인간에게서 처음으로 유래되어야 한다”라는 그릇된 설(說)은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배격당했지만, 아우구스티노는 그를 이단자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카시아노의 저서는 그 밖에도 많이 있고, 그리스도교적인 인생 지혜를 내포하고 있다. 그는 십자가의 희생 및 성체(聖體)의 희생은 지옥의 질곡(桎梏)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명백히 그는 천주의 성모인 마리아의 존엄과 우나 페르소나(Una persona) 즉 신인(神人) 예수 그리스도의 불가분한 유일의 위격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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