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로마나 [라] Pax Romana

1921년 스위스에서 결성된 가톨릭학생 국제조직. ‘Pax Romana’란 원래 ‘로마 지배 아래의 평화’란 뜻으로 정치적 힘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를 포함하는 말이었지만, 이것이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에 의한 세속의 지배, 즉 정치권력을 초월한 하느님의 세속지배라는 역설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이 국제 가톨릭 학생연맹의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1888년 스위스의 바론 몬테나가 가톨릭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추진할 학생단체를 만들어, ‘Pax Romana’라고 명명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본부를 스위스에 둔 팍스 로마나는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교회 내의 공식단체로 인정받았고, 현재 100여 개국이 넘는 국가에 회원단체를 두고 있다. 아울러 팍스 로마나는 국제연합(U.N.)의 경제사회이사회(UNESCO, the Economic and Social Council of the United Nations)의 자문기구로 뉴욕과 제네바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한국 가톨릭 학생 총연합회는 1954년에 창립된 후 이듬해 팍스 로마나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1950대 한국의 팍스 로마나는 레지오 마리에 중심의 활동에 치중한 나머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난 팍스 로마나 본연의 활동을 펼쳐 나가는 데에는 적극적이지 못하였다. 그 후 1960년의 4.19학생운동,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으로 자기 내부에 매몰되어 있던 신앙을 극복하고 학원사회에 대한 선교라는 방향으로 신앙의 형태를 전환시켰고,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사회참여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구체성을 띠게 되었다. 1971년에는 총련산하에 학생기획위원회를 두었으며, 가톨릭노동청년회(J.O.C)와 연합하여 크리스챤 사회운동협의회를 결성하여 사회정의구현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청계천 철거민 이주사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2년 총련이 해체되면서 한 때 구심점 없는 분산의 시대를 맞아 팍스 로마나의 운동은 침체의 국면에 빠지기도 하였다. 1981년 12개 교구의 대표가 참석한 회장단회의에서 팍스 로마나는 “억압받고 신음하는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세계 팍스 로마나의 날은 부활절 다음의 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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