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원본당 [한] 豊水院本堂

원주교구 소속 본당. 소재지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2리 1097이며, 본당주보는 ‘예수성심’이다. 강원도 최초의 본당인 풍수원에 신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로 더욱 심해진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피난해 오면서부터였다. 곳곳에서 모여들어 마을을 이룬 신자들은 일부는 화전(火田)을 일구고, 일부는 옹기를 구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던 중 1887년 5월 한불조약(韓佛條約)의 비준(批准)으로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당시 서울교구장 뮈텔(Mutel, 閔德李) 주교는 안변(安邊)에서 전교하던 파리 외방전교회원 르 메르(Le Merre, 李) 신부를 풍수원에 파견, 본당을 창설하고 초대(1886∼1896년) 본당신부로 임명하였다. 당시 관할지역은 12개 군(郡) 29개 공소로 신자수는 약 2,000명에 달하였다.

르 메르 신부가 본당의 터전을 닦은 뒤 1896년에는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하여 1943년 10월 23일 81세를 일기로 선종, 성당 뒤편의 동산에 묻힐 때까지 평생을 이 본당을 위해 바쳤다. 정신부의 부임 당시 관할구역은 화천 · 인제 · 양구 · 홍천 등지로 정기 공소순방에만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1896년에는 강원도 세 번째 본당인 원주본당(原州本堂, 현 원주교구 주교좌 園洞本堂)을 분할하였다. 1907년 서양식 벽돌 건물인 현재의 성당을, 1912년에는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한편 1910년에는 교우 유지들과 상의하여 삼위학당(三爲學堂)을 설립, 성당 사랑방에서 학생들을 모아 한글 · 한문 · 수학 · 역사 등 신학문을 가르쳤는데, 이 학당은 뒤에 광동(光東) 국민학교로 발전하였다. 1920년에는 춘천본당(春川本堂, 현 춘천교구 주교좌인 竹林洞本堂)과 양평본당(楊平本堂)을, 1922년에는 대화본당(大和本堂, 현 平昌本堂)을 분할하였다. 1943년 2대 본당주임인 정규하 신부의 별세로 1942년부터 보좌신부로 있던 김학용(金學用, 시몬) 신부가 3대(1943∼1963년)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한편 1926년부터는 매년 성체 성혈 대축일에 성체거동 행사를 거행하여 전쟁 때를 제외하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오고 있다. 1930년에는 횡성본당(橫城本堂)을, 1948년에는 홍천 물굽이본당(水曲里本堂, 현 陽德院本堂)을 분할하였다. 풍수원본당은 1939년 4월 25일 춘천지목구의 설정으로 서울교구로부터 춘천교구로 편입되었는데, 1937년말 신자수는 1,178명으로 이때까지도 강원도에서는 큰 본당 가운데 하나였다. 1963년 4월 26일 3대 본당주임인 김학용 신부가 선종하여 4대(1963. 4. 26∼1963. 7. 7) 신현봉(申鉉奉, 안토니오) 신부가 잠시 본당주임으로 있다가 5대(1963∼1965년) 이응현(李應鉉)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후 역대 본당신부는 다음과 같다.

6대(1965∼1969년) 강대형(姜大亨, 토마스) 신부, 7대(1969∼1973년) 델라니(Delany, 都) 신부, 8대(1973∼1976년) 켈리(Kelly, 毛) 신부, 9대(1976∼1981년) 조응환(曺應換, 다테오) 신부, 10대(1981∼1984년) 박용식(朴容植, 시몬) 신부, 11대(1984∼현재) 김한기(金漢起, 시몬) 신부.

풍수원본당은 1965년 3월 2일 원주교구의 설정으로 이에 편입되었으며, 현재 신자수는 1,048명으로 5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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