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노 [라] Hadrianus

Hadrianus, 6세(1459∼1523). 최후의 독일인 교황. 유트레히트(Utrecht, 현 네덜란드령)의 아드리안 플로렌츠 데달(Adrian Florensz Dedal)에서 태어났다. 루뱅 대학에서 신학을 배웠으며, ‘공동생활 형제회’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루뱅대학 신학교수로 재직, 1497년 루뱅의 성 베드로 성당 수석사제가 되었으며, 그 후 대학의 총장을 두 번 지냈다. 1507년 칼 5세의 사부(師傅)가 되어 그를 위해 스페인 왕국의 완전한 상속권을 확보케 했고, 1516년 이래로 스페인의 추기경이자 섭정(攝政)인 히메네스(Ximenez de Cisneros)와 협력해서 스페인 통치에 종사, 히메네스가 죽은(1517년) 뒤에는 혼자서 담당하였다. 한편 1516년 스페인 토르토자(Tortosa)의 주교, 이듬해 아라곤 및 나바라의 종교재판관, 1518년 카스틸랴 및 레온의 종교재판관 겸임, 1517년 추기경이 되었다. 1519년 칼 5세가 대관식 때문에 로마에 갔을 때 그는 섭정을 맡아보았고, 1520∼1522년의 카스틸랴 폭동을 잘 진압하였다. 1522년 그 영성(靈性)과 학식에 의해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교황으로서 주요과제는 교회 개혁에 의해 종교개혁 운동을 억제하는 일, 그리고 터키인(人) 침입에 대항해서 그리스도교 제국(諸國)을 동맹케 하는 일이었다. 독일국정에 대해서는 1522∼1523년의 뉘른베르크 국회에 교황대사 키에레가티(Franc Chieregati)를 파견하여 개입하였다. 칼 5세와 프랑스와 1세의 화평에 진력했으나 허사로 끝났다. 모든 곤란에 공정을 잃지 않고 대처했으나, 마침내 적의(敵意)를 품은 프랑스와 1세에게 강제(强制)당해 칼 5세와 방어동맹을 체결하게 되었다(1523년 8월 3일). 그의 사목(司牧)의 관심은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폴란드, 헝가리에 쏠렸으나 환멸에 그친 곳도 있었다. 또한 종교개혁을 억제하기엔 그의 교황즉위가 너무 늦었었고, 실제로 종교개혁과 대항하기엔 그의 죽음이 너무 일렀다. 그의 수많은 계획은 그 의도의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엄격함 때문에 도리어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그러나 가톨릭세계의 부흥과 하드리아노 6세의 이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오늘날 일반적으로 여러 교황 중에서도 매우 존경할 만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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