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2월 26일, 한국 주교회의 총회의 결의에 따라 발족된 한국 최초의 외방선교회. 이 회의 목적은 복음화 활동이 필요한 곳이면 세계 어디에든지 그 지방 교구장의 선교와 사목협조요청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봉사할 한국 선교사를 양성 지도하는 데 있으며 특히 궁극적 목표로서의 선교지로는 북한과 중공의 침묵의 교회를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회는 또한 특별히 한국 순교선열들의 영성(靈性)을 그 핵심으로 하며 그러기에 창조적이고 적극적이며 개혁적인 선교활동을 지향한다. 한국에서의 이 회의 창립은 특히 외적으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포함한 세계 교회의 성소빈곤(聖召貧困) 호소에 부응하고 내적으로는 역사상 유례없이 스스로 교회를 창립하여 순교로써 신앙을 지키고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성장해온 한국 교회가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전환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한국 교회도 이제는 한국인 선교사를 외국에 파견하여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나 이것이 구체화된 것은 1974년 10월의 주교회의에서였으며 여기에서 세 주교[崔再善, 鄭鎭奭, 金南洙]를 위원으로 하는 설립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리하여 동 설립준비위원회는 각 선교회의 자문을 받는 등 그 가능성을 예의 검토하였으며 이들의 보고를 토대로 1975년 2월에 열린 한국 주교회의는 마침내 한국 외방선교회의 발족을 정식 결의하게 되었다. 단 정식활동은 성청의 인준을 받은 뒤 시작하기로 하고 규약은 3년 기한부로 정하기로 하였으며 설립책임자로 최재선(요한) 주교를 선임하였다.
1976년 3월 1일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대신학생 16명, 소신학생 29명으로 이 회의 신학원이 정식으로 개원되었다. 초대 지도신부로는 이홍근(李洪根, 바오로) 신부가, 제2대 지도신부로는 린츠(Charles Lintz, 黃春晟) 신부와 길홍균(吉鴻均, 이냐시오 로욜라) 신부가 각각 잇따라 부임하여 신학생들의 선교사로서의 자질향상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듯 한국 외방선교회의 발족은 순조로이 진행되어 1977년도에는 신학생도 62명(대신학생 18명, 소신학생 44명)으로 증가하였으며 1979년 7월에는 이 회를 돕기 위한 한국 외방선교회 후원회(회장 최 마리아)가 창립되어 자립하는 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 동안 초대 총재로서 산파역을 했던 최재선 주교가 1979년 4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고 제2대 총재로는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가 선임되었다.
선교활동의 산 교육을 위해 1981년 2월에는 학생 4명과 지도신부가 필리핀에서 2주간 해외연수를 마쳤으며 동년 3월 7일에는 내외교회의 관심 속에 첫 정회원인 김동기(金東基, 미카엘) 부제가 사제로 서품되었다. 또한 동년 8월에는 최규명(崔奎明, 안드레아) 신학생이 부제품을 받음으로써 두 번째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이들 두 회원은 소정 과정을 거쳐 현재 한국 교회 사상 첫 한국인 선교사로 파푸아 뉴기니에서 활약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