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순교자현양회 [한] 韓國天主敎殉敎者顯揚會

1946년 9월 16일 한국 천주교 순교자들의 신앙과 순교정신을 높이 현양하기 위하여 발족된 단체. 원래 1939년 9월 24일 약현본당(현 중림동) 김윤근(金允根) 신부를 중앙위원으로 하여 발족하여 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하여 무산되었다. 당시만 하여도 종교의 본질에 어긋나는 미신적인 행동이 난무함으로써 종교의 그릇된 관념을 갖게 되어 일반대중이 종교라 하면 으레 그렇게 인식하였기 때문에 천주교의 본질을 밝히는 데 교리상 설명이나 변론이 아니라 숭고한 ‘순교사실’로써 천주교의 본질을 밝히기 위하여 천주교순교자현양회를 발기코자 하였다. 1946년 9월 김대건 신부의 순교 100주년 경축행사 때 노기남(盧基南) 주교의 대미사를 시작으로 본회의 발회식(發會式)을 가졌다. 당시 중앙위원으로는 정원진(鄭元鎭) · 이완성(李完成) · 장금구(裝金龜) 신부 및 조종국(趙鍾國) · 장면(張勉) · 박병래(朴秉來) · 박대영(朴大英) 등 모두 7명이었으며 윤형중(尹亨重) 신부가 위원장이었다. 회원으로는 한 번에 1만원의 회비를 납부하는 유공회원, 1년에 500원을 납부하는 특별회원, 1년에 50원을 납부하는 통상회원으로 구분하고 각 회원들을 위한 미사가 봉헌되도록 하였다. 사업으로는 우선 순교기념지를 조사할 것, 군난(窘難) 때의 유물을 수집할 것, 순교비를 건립할 것 등으로 하여 20여 종의 유물들이 접수되는 한편 많은 회비가 접수되었다. <경향잡지>에서도 이 사업을 적극 지원하여 순교자현양회 고정란을 통하여 본회의 주요 지출내역 및 기념품진열장 설치를 강조하였다. 6.25동란 후에는 유물의 유실 및 재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54년 성모성년경축대회 때 한국복자수도회와 함께 한국 가톨릭 사료전시회(史料展示會)를 개최하고, 1956년 11월에는 양화진(楊花津) 순교사적지(殉敎史蹟地)를 매입하였다. 1958년 10월에는 이효상(李孝祥)을 중심으로 한 순교자현양회 대구지부가 결성되었지만 1960년이 지나면서 차츰 침체되어 갔다. 1963년 5월 최석우(崔奭祐) 신부가 운영책임을 맡으면서 본회가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조직체를 갖는 동시에 전문가에 의해 학문적이고 과학적으로 운영되어야 함을 기본방침으로 병인년 순교자 100년제(丙寅年殉敎者百年祭), 박물관 설치, 순교사적지 확보, 교회문화재 전시, 교회고전출판 등의 사업계획을 주교회의에 건의했으나 현행대로 서울교구 산하에 소속되고 각 교구에서 필요한 현양사업을 각 교구에 일임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본회는 활기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다만 본회에서 제의했던 병인순교 10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각 교구에서 복자성당(福者聖當)이 건립되고 서울교구에서는 양화진순교기념성당과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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