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백 [한] 許仁伯 [관련] 진목정

허인백(1821∼1868). 순교자. 세례명 야고보. 김해 허씨의 후예로 김해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황사국(黃士國)에게 교리를 배워 1846년경 25세의 나이에 영세, 입교했다고 전한다.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언양을 거쳐 죽령(竹嶺)[대나무고개] 산골의 교우마을에 숨어들었다가 그 곳에서 이양등(李陽登, 베드로) 회장, 김종륜(金宗倫, 루가) 등과 만났다. 이들 3사람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더 깊은 산 속을 헤매다가 경주땅 산내(현재 경북 월성군 산내면)에 있는 소래동 단수골이란 석굴(石窟)을 발견, 그 곳을 피난처로 삼고 목기(木器)를 만들어 팔며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1868년 5월 ‘덕산묘지 도굴사건’의 여파로 전국적인 박해가 있었고, 이들 셋은 이 때 경주아문의 포졸들에게 잡혔다. 경주아문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8월 울산감영으로 이송되어 이틀 뒤인 8월 14일(음 7월 28일) 장대벌 형장에서 효수되었다. 이들의 유해는 허인백의 부인 조애에 의해 수습되어 사형장 근처의 다리 밑에 가매장되었다. 그 뒤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면서 3인의 유해는 월성군 산내면 진목정 안산에 합장되었고, 1932년 5월 29일 대구 감천리 공원묘지로 이장, 1962년 10월 25일 석곽에 모서져 공원묘지 산 위에 있는 성모석상 앞으로 옮겨졌다가 1974년 10월 신천동 복자성당 구내로 이장되었다. (⇒) 진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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