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노동청년회는 청년노동자로 구성되어 청년노동자들과 함께, 청년노동자의 손으로, 청년노동자를 위하여 노동계를 그리스도적인 생활양식을 만들고자 하는 회(會)로서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세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첫째, 일상생활을 통하여 활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 하루하루의 생활환경 속에서 동료 노동자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수련을 쌓아야만 한다. 세째, 청년노동자들에게 고동적으로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에 있어서나 일치되어야 할 상황속에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청년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벨기에의 카르딘(Joseph Cardijn) 신부에 의해 이 회가 시작되었는데, 카르딘 신부는 브뤼셀에서 가까운 마을의 노동자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진학을 못하고 노동을 하다가 노동자를 위한 사제가 될 것을 결심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뒤 1906년 사제서품(司祭敍品)을 받았다. 오늘날과 같은 운영 형태는 1차 세계대전 중 옥중생활 속에서 착상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뒤 그는 곧 ‘Jeunesse Syndicalist’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이 모임의 이름으로 정기간행물까지 발간하였다. 1921년부터 1924년까지 빠른 속도로 벨기에 전역에 확산되었으나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않았다. 마침내 1925년 벨기에 주교단과 교황 비오 11세로부터 인정을 받아 1925년 4월 18일 가톨릭노동청년회(Jeunesse Ouvriere Chretienne)의 창립 총회를 갖고 국가적인 조직체로 육성할 것이라는 정관도 채택하였다. 1927년부터는 세계 곳곳에 확산되기 시작하였는데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이 운동은 중단되지 않았다. 한편, 확고한 기반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견지에서 국제적인 정관을 채택하지 않다가 1957년에 가서야 이를 채택하게 되었으며, 1981년 현재 125개국에 약 700만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1958년 11월 14일 창설자 카르딘 추기경의 내한을 계기로 1958년 11월 16일 간호원 9명과 박성종(朴成鍾) 지도신부가 함께 모여 결성되었다. (⇒)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