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 [라] Nestorianismus [영] Nestorianism [한] 景敎

시리아 유프라텐시스에 있는 제르마니치아(Germanicia) 원주민인 네스토리우스(Nestorius, 또는 Nestorios, ?~451)에 의하여 창출된 교리를 신봉하는 종파.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위격적 결합(hypostatic union)이 아니라 외형적 결합(synapheia)이라 하여 그리스도에는 두 인격이 있다는 주장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는 당(唐)나라 초기에 서역(西域)을 통하여 중국으로 전해져 경교(景敎)로 불렸고 14세기 말에 소멸되었다. 이 종파는 로마 제국 영내에서 발달한 그리스도교가 아니고 로마 제국 영역 밖에서 발달하였다.

네스토리우스의 교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페르시아를 거쳐 동방으로 그 선교지를 확장하여 나가, 아라비아, 인도, 중앙 아시아에까지 이르렀다. 이리하여 5세기 말부터 이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는 중국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개시하여 성경의 번역은 물론, 곳곳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교의 일파의 명칭이 왜 중국에서 경교라고 호칭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연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중국에서는 최초로 이 종교를 ‘파사교'(波斯敎), 교회당을 ‘파사사'(波斯寺)라고 부르다가, 당나라 현종(玄宗)이 ‘파사사’를 ‘대진사'(大秦寺)로 개칭하여 ‘파사교’는 ‘파사경교'(波斯景敎)로 되었다가 뒤에 ‘대진경교'(大秦景敎)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진’이란 로마를 가리킨다. 당의 덕종(德宗)때인 781년(建中 2년)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에는 “眞常之道 妙而難名功用昭彰 强稱景敎”라 기록되어 경교 신도를 경중(景衆) 혹은 경사(景士)로, 경교사원을 경사(景寺), 본존(本尊)인 미사가(彌師訶)를 경존(景尊)이라고 하였다. 경교 비문에 따르면, 635년(貞觀 9년) 페르시아 사람 알로펜(阿羅本, Alopen 혹은 Abraham)을 단장으로 한 경교 선교사 일행이 장안(長安)에 도착하였고, 638년에는 태종(太宗)이 장안에 대진사를 건립하여 승려 21명을 배속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경교 신자가 당나라 이전부터 중앙 아시아 일대와 만리장성 내외에 거주하였으며, 경교 선교사가 그 곳을 왕래한 사실을 알려 주는 사료들은 적지 않게 있다. 당나라 때의 경교의 주장은, ① 일신교(一神敎), ② 제왕 숭배, ③ 왕법 위본(王法僞本)주의, ④ 부모 효양(父母孝養), ⑤ 보시(布施) 장려, ⑥ 선악 이도(善惡二道, Didache)의 교회를 신봉하고 있었고, 펠리오(P. Pelliot)가 1908년 돈황(敦煌)에서 발견한 《경교삼위몽도찬》(景敎三威蒙度讚) 및 《존경》(尊經)에 의하면, ⑦ 삼위일체설의 신봉과, ⑧ 세례 및 영성체(領聖體)를 행하고, ⑨ 품급(品級)을 경교회의 전례(典禮)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과 타협하여 충효, 호국(護國)의 가르침이라는 점이 설명되었다. 그러다가 무종(武宗)이 도교(道交)를 믿게 되어 845년 다른 교를 압박한 결과, 경교는 차차 쇠퇴하여 신도들이 서역으로 쫓겨가거나 도교의 그늘에 숨어 버리거나 하였다. 원(元)나라 때로 접어들면서 1289년 경교는 다시 그 선교활동이 허용되었고, 삼위일체를 신봉하며, 로마교황의 수위권을 승인하여 원나라의 정치적 심부름을 충실히 하였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는 경교라고 부르지 않고, 중국측 역사문헌상에는 ‘타르사'(達娑, Tarsa) 또는 ‘에르케운'(也里可溫)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의 경교 사원인 십자사(十字寺)가 72개소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잠시 재흥했던 중국의 경교는 원의 멸망과 더불어 그 터전을 잃고 말았다. 따라서 몽고 각지에 그 유적을 남긴 것 중에 원대 이후의 것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의 경교는, 신라시대의 돌로 된 십자가, 동제(銅製)십자가, 마리아 관음상(觀音像) 등 경교적 흔적을 보여 주는 유물들이 1956년 경주(慶州)에서 출토됨으로써 널리 통일신라시대로 그 전래시기를 보는 측도 있지만 정설(定說)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는《속 일본서기》(續 日本書紀)에 783년 (당 開元 24년, 일본 天平 8년) 당나라 사람 황보(皇甫)가 페르시아 경교 의료선교사인 밀리스(Millis, 李密)를 동반해 와서 세이부(聖武) 천황을 만나게 한 사실이 전래의 초기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F. Loofs, Nestorius and his Place in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Doctrine, Cambridge, Eng. 1914 / L. Wieger, Histoire des croyances religieuses et des opinions philosphiques en Chine, 1919 / E.A. Wallis Budge, The two monks of Khuablai Khan, 1927 / 佐伯好郞, 景敎の硏究, 東方文化學院 東京硏究所, 1935/Henri Bernard S.J., La decouverte de Nestoriens Mongols aux Ordos et l’Histoire ancienne du Christianisme en Extreme-Orient, Tientsin 1935 / P.Y. Saeki, The Nestorian documents and relics in China, Tokyo 1937 / J. Steward 原著, 佐伯好郞 校訂, 賀川豊彦 · 熱田俊貞 譯, 東洋の基督敎 景敎東漸史, 日本 豊文書院, 1940 / L.I. Scipioni, Ricerche sulla Cristologia del Libro di Eraclide di Nestorio, Fribourg 1956 / P.T. Camelot, Grill-Bacht Konz, Ephese et Chalcedoine, v. 2 of Histoire des conciles oecumeniques, Paris 1962.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