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윤리의 뜻 : 경제란 재화와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및 그와 직접 관련되는 질서와 행위의 총체를 말한다. 부연하면, 생산수단과 노동으로써 자연에 작용하여 인간의 욕망에 비하여 그 양이 한정되어 있어 매매나 점유의 대상이 되는 경제재(經濟財)를 생산하고 그 생산물을 분배, 소비하는 과정을 뜻한다. 윤리란 사회집단 속에서의 인간의 행동기준에 관한 것으로서 사회구조와 윤리체계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회구조를 제도적 통제 또는 규정된 관계 안에서 인간의 교류로 해석함으로써 개인들로 구성되는 사회조직으로 보는 견해, 일관성이 부족한 개인간의 관계를 제외하고 보다 항구적인 집단간의 관계만으로 보는 견해, 제도화된 사회적 역할의 집합간의 관계만으로 보는 보다 추상적 견해가 있으며, 윤리체계는 사회학자들의 관찰을 통해 정리된 특정 사회의 관행, 복리후생적 입장에서 정리된 합리적 윤리행위에 대한 철학적 이론, 윤리원칙의 체계적 법전으로 보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 있다. 여기서는 윤리를 윤리원칙의 체계적 틀과 사회적 역할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본다.
경제윤리는 사회윤리의 한 부분이다. 사회윤리는 사회생활의 다양한 양식을 대상으로 하지만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올바른 양식의 여하를 문제로 하는 규범적인 것이다. 사회윤리는 사회생활 그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고 항상 사회생활의 양식을 결정하는 객관적 물적 관계를 통하여서만 나타난다. 바로 이 객관적 물적 관계의 하나가 경제이다. 사회적 기능으로서 분업(分業)은 노동을 개별화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사람은 사회적으로 결합하여 상호관계를 맺게 된다. 경제윤리는 이 같은 사회관계의 당위성을 입증하고, 경제운용에 올바른 양식과 경제생활에 있어 인간상호간의 올바른 관계를 다룬다. 종교적 경제윤리의 특징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경제행위에 올바르게 참여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경제윤리의 과제는 어떠한 조건이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라 경제행위에 참여하는 것인가, 그리고 경제에 관한 하느님의 뜻을 어떠한 원천을 통하여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가로 요약된다.
2. 역사와 원천 : 경제윤리의 역사적 전개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일반적 정형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다만 노동, 소유권, 현세의 재화(財貨)는 인간생활에 필요함이 인정되면서도 동시에 계속 비판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즉 세속적 재화를 위험시하는 데서 오는 금욕적 태도와 인간생활에 필수적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창조와 직결된다는 긍정적 태도가 함께 이어져 왔다. 따라서 가톨릭 경제윤리관의 역사적 흐름은 금욕과 필요의 이중성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어떻게 인식하였는가에 따라 요약된다. 이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던 요인은 하느님과 세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점과 현실사회에서 전개되는 경제형태의 내용이다.
초대 교회 때는 경제형태가 고립적 양상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경제윤리는 공동체적 생존을 위한 도덕적 요구의 단계이었고 자선에 대한 윤리적 의무가 강조되었다. 중세에는 자연법의 신학적 해석이 자연적 요구의 질서로서 경제행위를 긍정하거나 제한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 같은 경제윤리의 원칙은 노동, 소유권(所有權), 금리에 대해서 ‘스콜라 학파'(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 와서야 압축 정리된다. 경제생활의 필요성을 감안하면서 재화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훌륭하게 결합시킨 당시 수도원의 금욕적 생활은 중세 경제윤리의 실천적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경제윤리의 원칙은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노동헌장>(勞動憲章)과 그 이후의 사회 회칙들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가톨릭 경제윤리를 형성하고 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경제행위를 조정하는 것이 경제윤리의 임무라면 경제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가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 세상과 그 질서를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고 인간은 경제활동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쉽게 경제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창조의 신앙은 경제행위를 긍정하는 원천이 된다. 그러나 모든 경제행위가 하느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안배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올바른 경제행위만이 그렇다.
올바른 경제행위의 판단기준은, 창조의 총체적 계획 속에서 경제가 지니는 내재적 의의이지만, 실제로는 물적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경제본질에 의해서만 확인될 수 있다.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내재적 본질적 순명(順命)은 인간이 자신의 생활을 통해 하느님께 순명함으로써 비로소 확인되는 것처럼, 경제고유의 내재적 법칙이 경제행위의 구체적 양상을 규정할 때 비로소 경제의 내용은 자율성을 지니게 되며 하느님의 전체적 안배에 부합하게 된다. 경제의 내재적 법칙과 본질은 실제사회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지므로 그 성격이 보편타당성을 갖는 동시에 제약된 양식으로서의 특수성도 가지게 된다. 따라서 경제윤리도 보편적 부분과 주어진 상황에 따른 특수적 부분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3. 기능과 임무 : 인간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수요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경제의 가치는 입증된다. 물질적 수요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째는 인간생존을 위한 필수적 물량에 대한 수요단계로서 기본적 수요의 단계이며, 둘째는 기본수요의 단계를 충족시킨 다음 나타나는 문화적 수요의 단계이다. 기본적 수요의 단계인가, 문화적 수요의 단계인가에 따라 인생의 의미나 그에 대한 근본관념도 달라지고 따라서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성격도 다르게 된다. 기본적 수요와 문화적 수요에 대한 구분은 그 사회의 문화 정도에 크게 의존하게 되므로 유동적이다. 일반적으로 사회 전원의 기본적 수요가 우선 충족되고 그 다음에 비로소 문화적 수요의 충족수단이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두 단계의 수요관계를 해석하는 경제윤리의 결론이다. 아울러 경제윤리는 경제가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튼튼해야 하며, 한 계층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골고루 문화적 수요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될 것을 요구한다. 경제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인식 위에서 경제윤리는 성립된다. 따라서 경제를 그 주어진 기능 속에서 평가하는 것이 창조의 질서에 적합한 것이며 그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질적인 필요의 절박함은 지나친 금욕으로 억제될 것이 아니라 그를 충족시킴으로써 해소되어야 한다. 다만 경제의 적절한 책임한계는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정도이어야 하며 지나친 물적 풍요는 인간을 경제에 예속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창조질서에 어긋나게 된다.
경제의 기능을 통해 경제윤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생산 · 분배 · 소비 과정을 검토해야 한다. 생산은 자연과 노동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생산과정에서 인간은 경제와 가장 긴밀하게 접촉한다. 따라서 노동은 소유권 및 소득과 더불어 경제윤리의 기본요소를 형성하게 되며, 중세 이후 가톨릭의 경제윤리는 소유권과 소득이 생산과정에 이바지하는 노동의 업적과 수고에 상응하는 것일 때에만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윤리는 불로(不勞)소득이나 소유권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생산과정에 있어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서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는 분배기능과 가치의 우선순위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경제윤리와 직결되는 내용이다.
또 하나의 경제기능은 분배과정으로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用役)을 소비와 연결시키는 일련의 활동을 의미한다. 교통산업, 통신산업, 창고저장 및 시장기능이 직접 관련을 갖게 되는 분야이다. 동시에 한 사회의 경제정책과 긴밀한 관련을 갖게 되는데 자유로운 거래행위가 보장되는가, 중앙계획에 의해 통제되는가, 아니면 혼합형태의 정책을 채택하는가에 따라 분배과정은 영향을 받게 된다. 분배과정에 있어 거래행위의 동기가 개인적이고 이기심만을 고려하는가 아니면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는가의 문제와 분배를 촉진 또는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서 재화 및 용역의 가격이 정당한 가격이냐의 문제는 경제윤리와 직결되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소비는 가장 중요한 경제기능으로서 인간생존에 필수적인 물적 재화를 사용 처리하는 과정이므로 경제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 과정에서 입증되게 마련이다. 생산된 재화나 용역이 인간생활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과 모든 사람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경제윤리와 직결되어 있다. 특히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양(量)이 부족하여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나타나는 여러 가치의 우선순위 문제는 경제윤리의 중심과제가 된다.
4. 가톨릭 경제윤리 : 경제의 내재적 가치는 구체적으로 현실사회에서 나타나는 양상에 의해 확인되며, 경제의 내재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하느님의 창조사업 역시 완료된 것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 하면, 경제의 표현양식도 주어진 조건 아래서 끊임없이 변모하고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의 표현양식에 대한 경제윤리의 적용은 신축성을 가져야 한다. 가난이라는 현실문제에 대한 인식 문제, 그 원인과 대책의 문제는 가톨릭 경제윤리의 원칙과 그 적용에 있어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 경제윤리의 중심과제는 현사회의 구체적 경제표현 양식으로서 자본주의 경제체제 및 사회주의 경제조직에 대한 윤리적 판단, 경제행위의 구체적 결과로서 빚어진 도시·농촌간, 선·후진국간의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윤리적 해석, 그리고 가톨릭 사회원리에 입각한 올바른 경제질서 재건을 위한 대안의 제시로 요약된다.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노동헌장>과 그 이후 역대교황의 사회회칙을 통하여 선명하고 일관성 있게 제시된 원리들을 정리하면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쉽게 알 수 있다. 가톨릭 경제윤리는 가톨릭 교회의 인간관과 사회관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로서 하느님과 함께 완전한 행복을 누릴 운명을 타고 났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본질, 즉 자유의지와 지성으로 이루어지는 영혼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본성에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가 생겨난다. 또한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인간답게 계발되기 위해서 사회는 필수적이며 모든 사회의 원인이며 목적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 가톨릭의 인간관과 사회관의 기반이다. 이러한 가톨릭 사회원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각 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현상에 따른 특수한 경제조직의 존재는 인정되며 다양한 형태의 경제질서가 공존 발전하는 것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질서는 종합적인 윤리질서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와 윤리는 각자 고유의 영역에 있어서는 자율성을 갖고 있지만, 경제의 존재 이유가 인간을 위한 데 있으며 하느님의 뜻이 그렇다면 양자의 관계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인 조화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영리가 공익(公益)에 우선하며, 절대적 소유권과 사용권의 무제한적 특권이 주장되고, 무자비한 경쟁과 생산 및 분배수단의 독점을 통한 부의 축적이 허용되며, 노동을 상품으로 취급하며 임금도 시장가격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물질 중심의 가치관 때문에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경제의 목적을 벗어나게 되고 따라서 경제윤리에 어긋난다. 공산주의는 오히려 더욱 잘못된 경제제도이므로 자본주의의 결점을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물론적 사관(史觀)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관심을 오로지 현세에만 두고 있고, 개인의 창의성이나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모든 재산과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자연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사유재산제도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며, 전체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계급만을 위해서 다른 계급은 송두리째 희생되어야 한다는 계급투쟁의 모순성, 그리고 국제적 팽창을 위해 국제사회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등의 근본적 오류 때문이다.
사유재산제도는 자연법에 합치하며 인간본성에 기초를 둔 권리이므로 절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인간이 자신과 가족의 인간다운 생활을 충분하게 보장하고도 남는 잉여재산에 대해 그 사용권까지 절대불가침의 권리라고 주장하여 그 결과 부의 편재현상이 빚어지고 경제는 자신의 고유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될 때 이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므로 사유공용(私有共用)의 원리는 엄격하게 지켜져야 할 경제윤리이다. 따라서 재산의 소유권은 공동선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제한될 수 있으며, 재산의 사용권은 항상 사회적 책임과 공동선의 증진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윤리의 내용이다.
가톨릭 사회론에 바탕을 둔 새로운 경제질서 재건의 길은 개인적으로는 올바른 인생관 확립과 내적 쇄신, 이에 바탕을 둔 사회경제생활의 쇄신, 경제의 고유목적이 인간완성에의 수단이라는 점에 대한 재인식, 자연법과 윤리의식의 우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통하여 새로운 질서를 회복하는 데 있다. 모든 사회 조직의 제일차적 목적은 전체 구성원의 복리를 증진하는데 있으며 이러한 목적 즉 공동선의 증진은 보다 작은 사회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보다 큰 사회가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보조성(補助性)의 원리’에 의해 추구되어야 한다. 가정 또는 중간 사회집단이 자신의 책임하에 솔선하여 자신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조화 속에 협력할 때, 다양성을 일치시키는 끈으로서의 공동선은 바르게 이어져 국가사회의 건전성은 회복되고 전체 구성원의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에 인간사회의 경제질서는 사회정의와 사랑의 원리에 비로소 순응하게 된다. (金漁相)
[참고문헌] B.W. Dempsey, The Functional Economy, Englewood Cliffs, N.T.1958 / J. Messner, Social Ethics, tr. J.J. Doherty, new ed., St. Louis 1964 / R.E. Mulcahy, The Economics of Heinrich Pesch, New York 1952, ed. Readings in Economics, Westminster, Md. 1959 / J.F. Cronin, Social Principles and Economic Life, Milwaukee 1959 / H.R. Bowen, Toward Social Economy, New York 1948 / P.H. Wicksteed, The Common Sense of Political Economy, 2 vol., London 1933 / Pope Leo ⅩⅢ, Rerun Novarum, Vatican 1891 / Pope Pius XI, Quadragesimo Anno, Vatican 19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