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본당 [한] 高山本堂 [관련] 내평본당

① 고산본당은 1958년 4월 25일 전주(全州)교구 관내 본당으로 승격되어 현재 고산면 등 5개면과 1개읍을 총괄한다. 역사가 얕은 고산교회지만, 실은 이 교회가 역사 오랜 전라도의 초대 전교지대였던 되재[升峙]본당의 후신이므로 편의상 다음 3기로 나누어 그 연혁을 살펴보기로 한다.

㉠ 되재 본당 시기(1893~1944년) : 1893년 비에모(Villemot, 禹) 신부가 와서 차돌박이(현 백석)에 거처하며 전교를 시작, 동학혁명때 서울로 피신했다가, 이듬해 다시 되재로 와서 본당을 설립, 주보를 성 베드로 · 바오로 사도로 정하여 정초(定礎)하였다. 당시는 박해시대였으므로 피난 겸 은거하기에 알맞은 되재로 교우들이 몰려들어 큰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며, 7대(1930~1936년)부터는 주임 신부가 방인(邦人) 신부로 바뀌어 이성만(李成萬, 이냐시오) 신부, 8대(1936~1940년) 박문규(朴文圭, 미카엘) 신부, 9대(1940~1943년) 임인교(任仁敎, 바오로) 신부, 10대(1943~1944년)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로 이어져 오다가 서신부의 신병으로 본당 신부가 공석 중에 있다가 되재는 수청(水淸) 본당의 공소로 속하게 되었다. ㉡ 수청본당 시기(1942~1950년) : 아직 되재 본당이 존속되어 있던 1942년 6월 수청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신부 김영태(金永泰, 도밍고)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한편 2차 대전 말기의 일제 탄압과 서 바오로 신부가 신병으로 전주(全州) 주교관으로 옮겨간뒤 되재 본당은 1944년에 폐쇄되었다. 그런데 8.15광복 후 1947년까지 부임한 김영희 신부 후임으로 서정수(徐挺壽, 알렉스) 신부가 재임 중 6.25전쟁이 일어나 수청본당이 파괴됨은 물론 교우촌이 모두 불타버렸으므로 본당은 폐쇄의 시기를 맞았으며, 삼례(參禮) 본당의 공소로 되었다가 1958년 고산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 고산본당 시기(1958~현재) : 삼례본당 주임 신부인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신부가 되재 및 수청리 등 관내의 폐쇄된 여러 공소를 중심으로 한 본당 신설용 토지를 매입하여 신축하였으나, 즉시 본당이 설치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958년 4월 25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99에 세워진 이 성당이 본당으로 승격되어 성모 영보(3월 25일)를 주보로 하며 역대 주임신부인 1대(1958~1964년) 송남호(宋南浩, 요셉) 신부, 2대(1964~1966년) 김반석(金盤石, 바오로) 신부, 3대(1966~1969년) 이대권(바오로) 신부, 4대(1969~1973년) 안용기(가브리엘) 신부, 5대(1973~1976년) 이재후(도마) 신부, 6대(1976~1980년) 문규현(바오로) 신부, 7대(1980~1983년) 전대복(라오렌시오) 신부, 8대(1983~현재) 박병준(필립보) 신부로 이어지고 있다. 1984년 6월 현재 공소수 20개소, 200명 이하 수용의 강당수 8개소, 신자수는 남자 989명, 여자 1,134명 도합 2,123명이다.

② 내평(內坪)본당의 후신. 1896년 함경남도 안변군 위익면 내평리에 창설된 내평본당이 1930년 교통의 요지인 고산역[信高山]으로 이전되면서 고산본당으로 개칭되었다. 고산본당은 1949년 5월11일 본당 주임오트(C. Ott, 吳) 신부가 북한 공산정권에 체포되고 성당을 비롯한 모든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 내평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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