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의 독서와 기도문만 봉송하고 성찬의 전례 부분을 생략한 미사. 공미사를 봉헌한 기록은 9세기 프루덴시오(Prudentius) 주교의 예식서에 처음 나타났으며 13세기 윌리엄 두란드 주교가 이의 타당성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종교개혁 이전 시기에 프랑스 국내 수도원과 본당에서 공미사가 상당히 봉헌되었는데 후자의 예로는 혼인미사, 위령미사의 경우에 국한되었고 항해하는 선박 안에서 공미사가 봉헌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우는 완전한 미사를 드리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불편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