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기쁨,평화,인내,친절,선행,진실,온유,절제

 



34                         < 성령의 열매 >









1.   축복된 삶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곧 새롭게 변화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새로운 인품을 묵상하였다.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오는 아홉 가지의 열매이다.




하나의 뿌리는 그리스도 안엣 사는 삶을 말하는 것으로 첫째, 기도하는 생활을 가리킨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기도했다고 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열심히 노력하는 삶이다. 그런데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서 자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 말은 모순되게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 이루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역사 하시도록 자신을 열어 놓고 받는 것을 배우라는 뜻이다.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할 선물이다. 그래서 자신의 습기찬 부분을 하느님의 따스한 빛에 열어 보이는 것이다.


하느님은 전능하시지만 은총의 햇빛에 나의 습기찬 곳을 뒤집는 것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느님이 해 주신다면 그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거슬러 강제로 하시는 것이고, 이 부분만큼은 인간이 하기를 하느님은 원하신다.


아무리 강한 햇볕이라도 덮어씌운 항아리의 속을 비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기 뜻대로 살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망이 하느님의 역사 하심을 막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로 이것이 아담과 에와가 과일을 따먹으면서 한 독립 선언인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하느님께 장독 뚜껑을 열어드리기를 거부하고 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햇빛과 은총 그리고 성령이 우리 마음 안에 역사 하심을 아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깨달음이고 체험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이 참된 행복을 준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이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해야할 일은,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다. 하느님을 굳게 믿고 그분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는 참된 기쁨과 평화 그리고 사랑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평생을 따라 다니는 신념이 될 때에,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자기가 있는 장소와 맡겨진 일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만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다른 때와 장소에 있기를 바란다면, 오늘의 이 자리에서 나를 만나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가 없다. 하느님의 역사 하심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있는 이 곳에 있기를 바라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충실히 하기를 원할 때에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배우는 유일한 장소는 우리의 일상 생활이다.




우리가 날마다 일하고 있는 소임지의 일상 생활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배우는 유일한 장소이다. 지금 자신이 처한 장소에서 그 일을 통해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뵈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지나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도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사람이고 만남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신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과 같이,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다만 그분께 마음만 열어 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변화시키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 드려야 한다. 자신의 힘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 하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리 성실하고 겸손하더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고정시키고서 그분의 생애를 본받는다면 점점 그리스도를 닮을 것이므로 실망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실수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활 성야 때 우리는 “오! 복된 탓이여!”라고 노래를 한다. 아담과 에와가 지은 죄 때문에, 하느님께서 삶이 되신 은총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나 실수 때문에 실망과 좌절에 빠지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구원과 겸손을 줄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노력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신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게될 것이고, 그 사람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먼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열매를 다 맺어 주시고 익힌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분의 역사 하심을 보도록 허락 받게 될 것이다.


즉 성령께서 우리를 얼마나 부드럽게 인도하시고 인내롭게 우리의 실수를 참고 받아들이셨는지를 알고 놀라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부족함을 얼마나 인내롭게 참아주셨는지는 하늘 나라에서 알게 될 것이며, 그 때 우리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 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 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는, 하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실히 주셨을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걸어온 우리의 길을 주님께 감사드리고, 이제는 그 길을 주님께서 우리를 업고 가신다는 믿음의 삶을 살 때, 우리는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아홉 가지의 열매를 맺으면서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가 되어 축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2.  새로운 삶 






1) 완덕에의 부르심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것을 매일 길을 걸어가는 것에 비유하여 生卽道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내가 가고 싶어했던 그 길을 가고 있는지, 또한 그 길이 올바른 길인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이 완전하심 같이 우리도 완전해지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완전함”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다 하느님으로부터 초 한 자루를 받았다. 그리고 이 초에 불을 붙이면, 그 초는 완전한 초가 된다. 비록 그 초가 태양처럼 온 천지를 밝힐 수는 없지만 초가 자기가 발산할 수 있는 빛을 발하면, 초 나름대로의 완전성을 이룬 것이다.




또한 우리 모두는 한 송이의 꽃송이가 들국화나 장미 또는 백합일 수 있다. 그런데 할미꽃이 장미꽃은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 들국화가 자기의 위치에서 활짝 피어나면, 들국화의 완전성을 이룬 것이다. 그래서 들국화에게 너는 왜 장미가 되지못하느 냐고 나무라서는 안된다. 그 들국화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활짝 피어나 하느님 께 “제 몫을 다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박아들이 성가 부르는 것을 보면, 노래가 아니라 고함을 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들으신다.


부모는 자식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결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 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꽃봉우리를 활짝 피우려는 노력을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소질과 생명을 최선을 다해 살 때, 완덕에의 불안감이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물에 살면서도 물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 상류로 가듯이, 그리스도인의 삶도 완덕에의 어려움이나 시련을 강한 의지로 물리치는 용기가 필요하다.




2) 그리스도의 향기와 성령의 열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닮고 그분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신약성서에서는 “여러분은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 버렸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골로사이 3,10)라고 하면서, “새 인간”이라는 말을 서너 번 썼다.


즉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옛 생활과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으로 다시 태어 남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새로움과 변화를 나타내며 이것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역사 하시는 능동적인 능력이다.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 중에서 방언에 굉장히 집착을 한다. 아주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역사 하심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은사는 “인품의 변화”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고린토 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는 모두 공동체를 위한 것이며,


더 큰 은총의 선물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변화”임을 강조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비범한 은사보다 눈에 금방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품성과 인격이 변하는 것이 가장 주된 성령의 역사다.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 변화된 인품의 참모습을 갈라디아 5장 22-23절에서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그리스도인 전체의 덕목을 이야기 해 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 이 하나의 뿌리는 요한 복음 15장 5절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


첫째,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는 것을 조용히 기다리 면서 듣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둘째, 성령께서는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성취시켜 주시므로 그 은혜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무엇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 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사도행전 4장 13절에는 “예수를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도들이 이제 두려움을 무릅쓰고 전교하기 시작했다.


사랑(Ⅰ)        <성령의 열매>그분들은 말주변도, 지식도 변변치 않았다. 그러나 그 확신과 기쁨에 넘친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그분들을 “예수를 따라 다니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 하시어 내가 나날이 변화되고 있음을 다른 사람이 보고, “저 사람은 예수를 따라 다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는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로 드러나야 한다.







      3.  사  랑






사도 바오로가 언급한 성령의 첫째 열매는 사랑이다.


성경에는 야곱의 라헬에 대한 사랑, 룻의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 등이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다.


인간을 서로 가깝게 만드는 가장 강한 힘은 “사랑”이다. 부부, 부모와 자녀 그리고 친구간의 사랑은 우리 삶의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서는 인간적인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처럼 모든 것을 주는 아가페이다.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 사랑은 감정이기 때문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없어지는 수가 있다. 반면 두 번째 사랑은 사랑을 주는 것으로써, 상대방에게서 매력의 감정이 생겨서 봉사하겠 다고 결심하기 전에, 즉 그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한 후에 이 매력의 감정이 생기는 것 이다.




중매결혼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감정이 없다. 그러나 결혼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나는 남편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말 거야.”라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의 사랑은 의지의 문제로써 이것이 오래가고 진실한 것이다.




첫 번째/ 사랑을 가지고 있는 부부는 사랑이 오고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을 받겠다는 사람만 있고, 정작 사랑을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현대 가정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은 갈수록 커지지만, 사랑을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랑을 하는 부부는 상대방의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주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라는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나도록 온갖 정성을 다 쏟는다.


그의 행복은 아내를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이고, 남편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아내 역시 똑같은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사랑을 주고 받게 된다.




성경에 나오는 사랑(Agape)이라는 말은 항상 자기 자신을 주는 것(Self-giving)에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사랑을 주고 또 받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사람도 사실은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먼저 받고서야 주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모든 가정 공동체와 대인관계가 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해야할 일은 먼저 주는 것이다.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썩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먼저 주면 저절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체험을 통해서만 익힐 수 있다.




신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이 아닌 체험 그 자체이다.


사람은 한 번 실천해서 자기 마음에 강렬하게 와 닿는 체험이 있을 때 삶이 바뀌기 시작한 다. 참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을 체험할 때 비로소 삶이 바뀌게 된다.


이런 큰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단지 이론에만 머물러 삶의 일부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아가페는 단순한 감정이 아닌 “타인에게로 향하는 꾸준한 의지의 방향”이 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뜻과 의지는 모든 사람의 선과 행복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착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 즉 하느님은 우리를 행복에로 이끄시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가 우선하며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때때로 하느님은 우리를 고통과 슬픔의 어두운 길로 인도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시련의 때가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에게 굉장한 도움과 이익 그리고 선의 원천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참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해 배려하 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루가 복음 10장 29-37절에서 예수님은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드신다. 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할 일을 다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이웃”임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니까 이웃 사랑은 하느님께서 도와주라고 맡긴 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는 “순종”의 뜻이 들어있다.




사랑은 성령의 첫 열매로서, 이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 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다. 요한 1서 4장 19절의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말은 참 쉬운 것 같지만 아주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사랑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을 배운다. 아기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기 훨씬 전에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사랑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전혀 배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하느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체험이 깊이 와서 닿았을 때야 비로소 자신 있게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즉 하느님의 사랑이 자신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게 만들고, 자신감을 가지고 하느님께 사랑을 되돌려 드리고, 이웃에게도 사랑을 베푸는 여유와 자신감을 주는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하느님 사랑과 자기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이 잘 어울린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 사랑을 확실하게 체험하고 도달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을 쳐다보고 용기와 희망을 주시는 그분을 만나야 한다. 아울러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


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하늘 공중에 떠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생각 하는 데 있어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공간의 개념을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하느님이 계시는 곳을 하늘 어디엔가 있을 하늘 나라나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천국에서 기대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하느님과 영원히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깊은 사랑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하늘 나라에 가서 할 것이 없다. 하늘 나라에서는 사랑밖에는 할 것이 없기 때문 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사랑을 하면서 참된 사랑의 아름다움과 애절함 그리고 가슴 뿌듯함을 못 느껴 보는데, 그 완전한 사랑을 하느님과 영원히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비록 불완전한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 불완전한 사랑을 완전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갈 자격이 없다. 사랑을 빼어 버리면 인간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을 절실히 깨닫지 못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며 무궁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은 아주 개별적인 사랑이다. 하느님은 우리 개개인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마치 목자가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불러서 양우리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따로 불러서 구원해 주신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고, 잃어버린 은전 한 닢을 찾으려고 방을 쓸고 불을 켜고 애타하는 여인과 같이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개별적이며 강하다. 그러나 우리 인간 은 제한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사랑의 능력이 없다. 인간은 자기 중심으로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지만,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마치 햇볕이 높은 산꼭대기와 깊은 골짜기의 어떤 풀잎의 이슬방울에도 비쳐지는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각 개인의 영혼을 안아주시고, 개인적인 사랑으로 이끄신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깨닫느냐가 문제다. 이 체험은 조금 일찍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는데, 하느님의 사랑을 빨리 느낄수록 우리는 천국 같은 곳에서 살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에 하느님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선 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이것이 사랑의 이중 계명이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에서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라고 묻는 질문에, 예수님은 “하느님과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하느님을 본받는 것이다.


구약에는 십계명이 언급되기 직전에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에집트 땅 종살 이하던 곳에서 너희를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내가 이런 것을 너희에게 해 주었으니, 너희도 이런 것을 베풀라.”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이 모든 계명과 윤리의 근거는 하느님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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