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1. 신경 안에서의 위치


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의 고성소에 내려가심과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같은 조항에서 고백한다. 이 조목은 모든 신앙 조목 가운데 가장 핵심을 이루며, 사도신경의 다른 모든 신앙 조목들은 이 조목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2. “고성소(古聖所)에 내리시어”


2.1. 고성소의 개념


고성소란 말은 의로운 옛사람들이 하느님의 날을 기다리는 곳이란 뜻이지만, 이 말은 ‘죽음’의 세계를 지칭하는 Sheol이라는 히브리어나 Hades라는 희랍어에서 온 말이다. 성서는 고성소를 지옥, Sheol, Hades라고 부르는데, 이 곳에 있는 이들은 하느님을 볼 수가 없다. 따라서 고성소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




2.2. 고성소에 내리시어


“고성소에 내리시어”라는 사도신경의 고백은 예수께서 Sheol에 들어갔음을, 인간적으로 완전히 죽으셨음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에서 부활하셨다”(사도 3,15;로마 8,11;1고린 15,20)는 신약성서의 표현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죽은 자들의 거처에 머물러 계셨다는 사실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겪으셨고 죽은 이들의 거처에서 당신의 영혼을 통해 그들과 함께 계셨다. 예수는 그곳에 묶여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구원자로서 그곳에 내려가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고성소에 내려가셨음은 그분이 인간으로서 죽으셨다는 사실과 죽음을 이기셨다는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고성소에 내려가심은 구원의 복음 선포의 충만한 완성이다. 예수께서 고성소에 내려가셨다는 표현으로써 신경은 예수께서 참으로 죽으셨으며, 우리를 위한 당신의 죽음으로 죽음과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히브 2,14) 악마를 멸망시키셨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3. ‘사흗날에’


구약에서 ‘사흗날’이란 숫자상의 날짜가 아니라 구원의 날을 의미한다. ‘사흗날’이라는 표현은 구원론적 의미에서 야훼께서 예수를 부활시킴으로써 당신이 의인을 해방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몸소 개입하셨다는 내용을 말해주고 있다.




4. 예수의 부활


사도 바오로의 말대로 부활 없이는 복음도 없고 신앙도 없다.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가 그리스도의 부활 없이는 그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났으며, 예수 부활을 통해 예수의 정체가 무엇인지가 명확히 드러났을 뿐 아니라, 예수가 아빠(Abba)라 부르며 선포했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가 결정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예수의 부활은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된 자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예수가 이스라엘의 약속된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예수의 죽음이 인류의 화해를 대리로 성취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도 예수의 부활에 비추어서 가능하다.


4.1. 성서에 나타나는 부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정식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전승은 I고린 15,3-5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말씀)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또 성경(말씀)대로 사흘 만에 일으켜지시고 게파에게, 다음에는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읍니다”이다. 성서는 한결같이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시신이 부활하는 장면에 관한 묘사는 전혀 없다. 즉 부활의 직접 목격자는 없다. 다만 빈무덤과 예수의 발현이 있었다라는 사실을 통해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부활을 전하는 신약성서의 증언과 부활에 대한 내용적인 이해에 관련해서 많은 문제점이 있다. 먼저 부활을 전하는 복음서의 기사들은 단일한 전승으로 재구성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조화와 모순점을 드러낸다. 부활한 예수를 만난 이들과 이 만남의 장소 그리고 발현과정에서도 서로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러나 예수가 자신의 죽음 후에 특정의 몇몇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다는 발현에 관해서는 일치를 보이고 있다. 즉 예수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살아있는 분으로 직접 보여주셨다는 사실이다.


예수 부활에 관해서 복음서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활이 단순한 시체의 소생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결국 복음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는 부활하셔서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다는 사실’과, ‘그분은 부활하셔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새로운 차원, 즉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새로운 세계에 들어갔다’는 믿음인 것이다. 사도행전에 실려있는 사도들의 설교는 부활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선포’이다. 그러므로 예수 부활에 관한 성서의 전승은 신앙인들의 고백이요 증언이다. 곧 부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한번 일어났다가 이제는 일단 마감된, 사학적으로는 확인 가능한 사건일 뿐 아니라 현재적인 현실, 증인들에게 바로 오늘 결정적 의미를 갖는 현실임을 의미한다.




4.2. 부활의 역사성


복음서의 부활 사화는 전설적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반면에 다른 신약성서의 증언들은 신앙고백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약성서 신앙에 따르면 부활은 하느님의 차원 안에서의 하느님의 행동 문제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과학에 의하여 사학적 방법으로 실증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죽음과 그후 제자들의 부할 신앙과 부활 선포이다. 그러나 부활은 바로 하느님의 행동이기에 허구나 상상일 수만은 없고 가장 깊은 의미에서 실재 사건이다. 즉 부활은 나자렛 예수라는 구체적 인물에게 일어났으면서도 오히려 그 예수를 역사 위에 그리고 시간성 밖에 내놓은 신비롭고도 초월적인 사건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과 하나의 종말론적이며 신론적인 사건이 내면적으로 일치를 이루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의 부활은 십자가에 처형된 나자렛 사람 예수 한테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바로 여기에 예수 부활이라는 사건의 역사적 차원이 있는 것이다.


또한 부활은 초월적인 사건이다. 빈 무덤이라는 표징과 부활하신 예수님과 사도들의 만남이라는 사실에 의해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확인되지만, 역사를 초월하고 넘어선다는 면에서 부활은 여전히 신앙의 신비의 핵심이다. 부활은 통상적 의미의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파악된 사실’이다.




4.2.1. 빈무덤


빈무덤 자체가 부활의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그럼에도 빈 무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핵심적 징표를 보여준다. 제자들이 빈무덤을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인정하는 첫걸음이었으며, 이는 빈 무덤의 상태를 보고 예수께서 단순히 지상의 삶으로 돌아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4.3. 하느님의 종말적 자기 계시로서의 부활


성서에서 부활을 표시하기 위해 타동사인 ἐγείρειν(깨우다, 깨워 일으키다)와 자‧타동사인 ανασταναι(일어나게 하다, 일어나다)를 사용한다. 이는 현세적 생명에로 되살아 온 죽은 자의 소생이거나 아니면 후기 유대교에서 기대하고 있었던 죽은 모든 사람들의 종말론적 부활이었다. 예수 부활은 종말론적 희망의 지평안으로 옮겨 놓이게 되고 종말론적 사건으로 규정된다. 즉 부활은 묵은 생명의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인 것이다.


마지막 때에 가서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하리라는 후기 유대교의 희망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었으므로, 부활은 바로 하느님 고유의 업적이요 그분 특유의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서도 예수의 부활에 관해서 언급할 때 그분이 당신 홀로 능동적으로 ‘부활’하셨다는 표현을 매우 드물게 사용한다(루가 24,7 ; 요한 20,9 ; I데살 4,14). 대부분 하느님께서 예수를 깨워 일으키신 주인공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하기 위해서 ‘신론적 수동형’(Passivum theologicum)을 사용한다. 즉 ‘예수가 깨워 일으켜졌다. 부활되었다’고 말한다. 예수의 부활은 하느님의 하나의 위업이요, 그분의 억센 힘의 작용으로 이루어진 업적이며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영의 위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하느님의 결정적인 종말론적 위업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종말론적 자기 계시이기도 하다. 즉 이 부활을 통해서 하느님이 누구이신가가 그 이상 능가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으로 계시된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에 의해 선포된 하느님 나라의 계시요 그 실현이다.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킴으로써 하느님은 당신 사랑의 신의를 실증하셨고 예수와 예수가 내세운 소신을 결정적으로 인정하셨고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셨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신앙고백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고백, 즉 하느님의 창조적 능력과 그 信義에 근거하고 있다. 결국 예수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하느님의 하느님이심을 믿는 신앙에 근거한다.




4.3.1. 현양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일으켜졌다’ 함은 예수가 부활하여 하느님께로 올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부활의 완성으로서의 현양이다. 예수는 아버지의 영광속으로 올려졌다. 부활과 현양은 구약성서의 표현과 결부되어 죽음을 정복한 분의 통치권 장악(즉위)을 뜻한다. 사도행전의 사도 설교에서 사용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 신앙 고백문에 따르면 예수는 비천한 인간이었으나 하느님이 부활시키신 다음에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다(사도 2,36). 지상의 인간으로서는 아직 아니고 현양된 분으로서야 비로소 예수는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표명된다(로마 1,3-4).




4.4. 부활 신앙


4.4.1. 발현


부활 신앙은 예수의 발현으로부터 생성되었고, 예수의 부활 발현에 근거한다. 예수 부활의 첫 증인들은 자기의 증언을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부활하신 분의 발현을 내세운다(I고린 15,3-8). 발현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보려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발현은 신비로운 체험인 것이다. 신약성서는 구약에서 神顯現을 묘사하는 ὢφθη를 사용하여 예수의 발현을 일련의 계시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다.




4.4.2. 부활 신앙의 내용


그리스도교 신앙의 결정적인 시발점은 예수 부활이라는 사건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출발점은 동시에 그리스도 신앙의 지속적이며 근원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도들의 증언이 아니고는 부활이라는 진리와 그 현실에 근접할 수 없다. 전승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신앙을 적합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러기에 신앙의 시작으로서의 부활발현을 유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신앙이 사도들의 증언에 근거한다면 부활 신앙에 이를 수 있는 통로도 역시 사도들의 증언을 거치지 않고서는 힘들다.


제자들은 부활 자체보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그분의 부활을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예수가 살아계신다는 사실, 예수의 발현을 통해 생전의 예수께 품었던 사도들의 신뢰를 되살려 주었다. 그 신뢰는 예수가 예언자이시고 마지막 시간을 펼쳐 하느님의 통치를 소개하기 위해 파견된 하느님의 전권대사, 하느님의 메시아라는 믿음이다. 부활 신앙은 부활된 즉 하느님께로 현양된 주님으로서의 예수를 믿는 신앙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피조물과 역사 안에 하느님께서 초월적으로 개입하셨다는 점에서 신앙의 대상이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피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사는 이들이 하느님의 탁월한 구원 능력을 신뢰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부활의 희망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데 있다. 죽은 분이 죽음에 머물지 않고 살아계시다고, 그분께 의지하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살리라는 희망이다. 이것이 곧 부활 선포이며 부활 신앙이다.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 신앙 진리의 정수이며, 초기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를 중심적 진리로 믿고 생활했으며, 성전(聖傳)이 근본 진리로 전승하였고, 신약성서의 기록에 의해 확립되어 십자가와 함께 파스카 신비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가르쳐온 진리이다. 부활신앙은 자기 생명의 운명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삶은 곧 ‘구원된다’는 희망적인 신앙이다.




4.4.3. 육신의 부활


부활하신 예수의 육신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신다. 부활은 죽음에서 하느님의 포괄적 차원으로 초월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상태, 유례없이 새로운 결정적 불멸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근본적 변화이다.


부활하신 예수는 그 육신이 수난의 흔적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바로 그 육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인성이 성부의 신적인 영역에만 속하기 때문에 부활한 육신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갈 수가 있다. 부활을 분자들의 존속과 같은 자연과학 문제가 아니기에 육체의 연속성은 없고, 인간 각자의 온 생애와 운명의 영속적 의미 문제이기 때문에 인격의 동일성이 있다.


부활신앙의 기원은 제자들의 예수 발현 체험과 제자들이 체험한 발현에 대해 제자들이 수용할 수 있었던 기존하는 유대교의 부활 신앙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한다. ‘죽은 모든 이들의 부활’과 ‘육신의 부활’에 대한 희망 그것이다. 부활은 全人의 부활을 가르키기에 ‘육신의 부활’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죽은 모든 이들의 부활’이란 죽은 모든 이들이 종말에 부활하여 영육의 갈림이 없는 全人이 구원에 이르리라는 희망의 표현이다.




4.5. 부활의 의미


‘죽은 이들의 부활’은 이스라엘인들의 신앙, 적어도 바리사이들의 신조였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개인’의 부활이었고, 하느님이 베푸신 성령에 의해 새 역사를 여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활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사건으로서, 예수의 죽음은 인간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죽으셨읍니다”(I고린 15,3).


예수의 부활이 가장 먼저 확증하는 것은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것에 존재를 부여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느님께 대한 역사적 신앙고백이다. 부활은 예수가 나자렛 예수의 정체성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본성적 가능성의 완전한 실현, 즉 완전히 변모되고 충만히 실현된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부활은 역사적 예수의 철저하고도 근본적인 변혁이다. 하느님은 나자렛 예수를 버리지 않으셨으며, 예수의 설교가 참되었음을 부활을 통해 입증하였다. 부활은 죽음의 지배로부터의 총체적 해방에 대한 그리스도의 선포가 실현됨이며, 예수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구체화된 것이다.


부활(Auferweckung)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비유일 뿐이다. 이 단어는 잠자던 사람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상(Auferwecken)에서 취해진 것으로 여기서부터 완전히 다른 사건에로 전용되어 있다. 묵시문학적 용어에서 ‘부활’은 실제로 옛 삶(생명)에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 새 기원의 여명을 뜻한다. 이 새로운 삶의 실재는 우리의 통상체험으로부터 벗어나 있다.1) 예수 부활과 여기서 궁극적으로 현시되는 하느님의 다스림은 신앙적 신뢰의 최후 근거이다. 부활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원된 세계의 근거이며 시작이고 출현이다. 즉 1) 부활 신앙은 예수를 알아보았고, 인간적인 무력과 하느님께 버림받은 상태 속에서 일어나 예수의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들에게서 생성되었다. 2)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세계 안에서의 삶의 온갖 방해물과 충돌들로부터의 삶의 해방이다. 3) 예수의 부활은 우리 자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타인들의 죽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공한다.




5. 결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신경의 진술들은 부활사건에 근거하고 있다. 부활사건은 예수의 지상활동과 그의 唯一無二한 전권 요구를 최종적으로 보증해 주고 있다. 예수의 부활은 그의 지상활동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나 한편으로는 심판과 모든 사물의 변화라는 종말적 기대와 연결되어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어떻게 이 단죄받은 이단 설교자가 이스라엘의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이 무시당한 거짓 예언자가 ‘주님’으로, 이 폭로당한 혹세무민자가 ‘구세주’로 이 배척받은 신성모독자가 ‘하느님의 아들’로 변하게 되었을까? 파국적 결과가 담긴 수난사화가 전승된 이유는 수난 사화를 전혀 다른 빛으로 조명하는 부활사화가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부활은 1) 시공적 현세 생명으로의 귀환이 아니다. 죽음이 철회되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정복된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죽음이라는 최후의 한계를 결정적으로 물리치고 전혀 다른 불멸의 ‘천상’ 영생에로 들어가신 것이다. 2) 부활은 시공적 현세 생명의 계속이 아니다. 영생은 시공의 차원을 벗어난, 불멸 ‧ 불가시 ‧ 불가사의의 하느님 영역에서의 새 삶이다. 끝없이 계속 ‧ 연장 ‧ 속행되는 삶, 끝없는 ‘생존’이 아니라 새 창조 ‧ 새 탄생 ‧ 새 세계인 최종적 ‘신생’이다. 3) 궁극 실재 속으로의 현양이다. 부활 선포가 말해주듯이 예수는 허무 속으로 죽어 가지 않고 죽음 속에서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일컫는 저 불가사의한 포괄적 궁극실재 속으로 죽어 들어가고 높여지셨다. 즉 부활은 하느님 안으로 죽어들어감인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만인을 위한 보편적 구원에 대한 희망의 근거이며, 사람들을 회개시켜 하느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를 갖도록 억압상태에서 구출하시는 성령과 공전하는 힘이다.


그리스도교는 나자렛 예수를 살아 계시고 권능을 행사하시는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이라는 의미에서 부활과 더불어 시작된다. 부활없이는 그리스도교의 어떤 신앙, 어떤 선포, 어떤 교회, 어떤 예배, 어떤 선교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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