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교황들 Renaissance-Päpste
교황 니콜라오 5세(1447~1455년)는 가장 고상한 르네상스 교황들 가운데 한 분이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저명한 문학자, 예술가 그리고 학자들을 로마로 초대하여 황금 시대를 열었다. 교황은 베드로 대성전과 바티칸을 새롭게 건축할 것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교황은 새로운 건축을 통해 신자들의 믿음을 북돋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교황 식스토 4세의 직무 수행은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친인척 중용주의는 기승을 부렸고, 교회는 점점 세속화에 물들어 갔다. 교황 인노첸시오 8세(1484~1492년) 역시 교황권의 위신을 세우는 데 있어서 성공하지 못하였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1492~1503년)의 직무 수행은 교회에 있어서는 불행이었다. 즉 그의 삶은 결코 그의 직책에 걸맞은 방식이 아니었다. 교황 비오 3세는 1503년 교황으로 선출된 지 26일 만에 서거하였다. 교황 율리오 2세(1503~1513년)에 관한 평가는 서로 엇갈리고 있다.
율리오 2세 교황의 정치적인 활동만을 평가한다면 교황은 매우 중요한 교황직을 수행한 교황들 가운데 속한다. 그러나 교황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1512년 라테라노 공의회를 소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재임 기간은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예술 전성기에 해당한다. 교황 율리오 2세는 베드로 대성전의 새로운 건축을 제안하였고,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 벽화(미켈란젤로)와 바티칸의 프레스코(라파엘로) 역시 교황 율리오 2세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사가들은 교황 레오 10세(1513~1521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교황의 친인척 중용, 교회 재산의 탕진 그리고 사치스러운 궁정 생활 등은 많은 이들에게 추문을 남겼다. 교황 레오 10세에게는 교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교회는 루터의 교회 개혁과 씨름하면서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교황의 등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