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리아 모성적 중재의 특성
마리아의 전생애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었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 구원의 신비에 바치셨다. 마리아는 성령의 힘에 의해 예수를 낳았고, 이로써 예수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나셨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 또한 성령께 의지하고 유지된다(39항, 41항). 마리아의 모성은 원래부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이었다(루가 1,35). 그러나 성령께 대한 마리아의 개방성은 영보의 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성령께서는 영원한 계약으로 마리아에게 주어지셨으며, 그리스도 강생의 각 단계에 함께 계신다. 마리아의 모성, 마리아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믿음과 희망과 사랑, 하느님의 뜻을 수락한 힘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고통을 참아낸 용기는 모두 성령께로부터 비롯하였다(13항, 14항, 39항). 성령은 주님 탄생 예고(루가 1,35)에서 마리아를 감쌌던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며,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도 동반하신 분이며, 예수에 의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자들을 태어나게 하시는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시다. 마리아의 인격은 처음부터 성령의 특별한 영향권 안에 있었다. 영보와 성령강림의 두 사건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데, 이 두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성령과 마리아이다.1)
성령의 사업에 참여하게 된 마리아의 모성은 ‘하늘에 올림 받으신 후에도 뽑힌 이들의 수가 찰 때까지’ 어머니로서의 중재를 계속하시어 당신의 자녀들을 어김없이 예수께로 인도한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성령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유지되고 있다.2)
우리가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의 중개를 통하여 성령 안에 은총을 받는다면, 의심없이 그 은총은 마리아가 성령의 감도로 하느님께 말씀드린 ‘피앗’(Fiat)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를 탄생시킬 능력을 얻고자 동정녀께 전구를 구한다.3)
회칙은 「교회헌장」 제8장에 의해 밝혀진 교리 원칙들을 재고하며 그 교리 원칙들을 문헌 안에 자의적으로 인용함으로써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유일한 중개자(仲介者)이시며, 어떠한 피조물도 강생하신 말씀이시며 구세주이신 분과 비교될 수 없다는 바울로의 교리를 다시 제시하고 있다.4) “하느님은 한 분 뿐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 뿐이신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셨습니다.”(1디모 2,5-6)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을 중개(仲介)하신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격을 얻게 해 주셨다. 이 선물은 그리스도의 사명일 뿐만 아니라 그의 거룩한 아들의 신분 때문이기도 하다. 그분의 인격은 참 하느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천주성으로 성부와 결합되시고, 인성으로 우리 인간과 결합되심으로써 천국과 지상을 연결하는 사닥다리요 구원의 다리이다(창세 28,12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중개야말로 가장 완전한 중개이다. 그리스도는 유일하고 완전한 중개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중개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5)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는 이차적인 중재를 제외하지는 않는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인류에게 하느님과 일치하도록 헌신함으로써’ 완전히 이차적인 의미로써 그리스도 이외에 사람들도 중재자라 부르게 된다고 말한다.6) 각 개인은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함으로써 자신과 하느님과의 교류의 길이 열리게 된다. 구원된 모든 이들은 구세주의 역사(役事)에 참여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그들의 형제 자매들의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기인하는 것이다.7)
성인들의 중재와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여적 중재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중재라고 말할 때의 그 ‘중재’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회칙은 공의회의 교리 원칙에 따라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와 마리아의 모성적, 참여적 중재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회칙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명에 마리아의 협력을 명백히 함으로써 마리아의중재를그리스도의중개에‘종속된 중재’(從屬的 仲裁, Meditatio subordinata)라 부른다.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충족스러운 중개직(Mediatorship)에서 그 어느 것 하나도 줄어들게 하지 않는다(38항).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 역할 안에 마리아는 하나의 개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바로 그녀가 유일한 중개자를 세상에 오게 했다. 그녀는 촉매자로서 그 기적을 낳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 역할에 참여로써 마리아의 모성적인 중재 역할을 말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어떤 피조물도 하느님이면서 사람이고, 사람이면서 하느님이신 구원자와 육화된 말씀과 동등하게 될 수 없으며 또한 동시에 구원자의 유일한 중개 역할은 피조물 안에서 유일한 원천으로부터 참여한 여러 협력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유발시킨다고 말하고 있다8). 구원된 자들 모두는 구세주의 역사(役事)에 참여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그들의 형제자매들의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참여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속공로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단일 중개에 참여한다. 마리아는 ‘주님의 종’으로서 온 역량을 다하여 그분께 순종하고, 자유롭고 의식적인 동의로써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하였다. 그녀는 주님의 참다운 종으로서 구세주의 모친이며 동반자로서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주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은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전구하는 중재를 통해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녀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중개에 의존하여 효과를 거두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기억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모든 구원적 영향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고 그리스도의 공로에서 솟아나온다.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중개에 기반을 두고 있고 거기에 의존하여 효력을 내며 그리스도의 중개를 방해하지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와 형제들의 직접적인 일치를 도와준다9).
그리스도의 유일중개는 하느님 앞에 인간의 친교와 상호 책임을 해소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하느님을 향해 다양한 모양으로 각기 다른 중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중재 역할 또한 구원 사업에 피조물적인 협력의 선상 위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세사 안에서 특수하고 예외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마리아의 중재는 성인들과의 친교 안에 있지만 그녀만의 특수하고 유일한 방식 안에서 움직인다. 마리아 중재의 특수성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강생에 질서 지어진 하나의 모성적인 중재에 있다. 다른 인간적인 피조물을 존중한 마리아의 참여적 중재는 분명하게 그녀의 거룩한 모성으로부터 나온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이다. 성부와 같은 본성인 성자의 어머니요, 구원사업에 너그러운 동반자로서 신적인 선택을 받은 마리아는 은총의 질서 안에 우리를 위한 어머니였다. 이 기능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구원적 신비 안에 그녀의 현존의 매우 중요한 몫이 되게 한다.10)
‘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마리아의 완전한 믿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생명자체를 세상에 낳아주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위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그의 현존의 실제적 차원을 형성하기 때문에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참여하는 여타 피조물들의 중재와는 구별되는 특수한 모성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 신비 안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위치의 고유성과 유일성이 드러난다. 마리아가 그리스도 신비 안에서 차지하는 고유성과 유일성 때문에 마리아는 은총의 질서에서 우리 어머니가 되셨고, 하나의 피조물이지만 인류를 위한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은 특수한 모성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9항, 38항). 마리아는 유일한 중개자를 세상에 오게 했다. 그래서 마리아의 중재는 다른 피조물과 마리아의 독특하고 특수한 역할을 구별시켜주는 모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11)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보편적인 차원’을 지닌다. 구세사에는 연대성을 지닌 ‘대표’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이 법칙은 각 개인의 행위가 집합적 내지 집단적 의미를 지님을 뜻하고 있다. 마리아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위한 항구한 전구 속에서 언제나 아들 구세주의 구원작용에 협력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전인류를 포함하기 때문에 마리아의 모성적 전구는 보편적, 연대적 의미를 지닌다. 마리아의 모성은 온 인류에게 확산되어 작용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구원사업은 전 인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협력은 종속된 신분(subordinated character)으로서 유일한 중개자인 구세주의 중개의 보편성에 참여한다.12)
마리아는 당신의 모성적 사명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 즉 마리아의 신비는 그리스도론적이면서 교회론적인 관점을 하나로 연결해 주고 있다. 마리아와 교회의 일치는 바로 마리아의 모성과 동정성에서 나온다. 마리아의 모성은 육체적인 관계에서가 아닌 영적인 관계에서의 모성이며, 이 탁월한 모성은 사랑으로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구성하는 신자들이 태어나도록 협력하고 그들을 위해 전구해 주는 보편적 모성이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육체적 어머니인 마리아께서 영적으로도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가 되신다. 마리아의 협조는 종속적인 상태로 유일한 중개자이신 구세주의 중개가 지니는 보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13)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생애 안에서와 그리고 교회의 시작 때에 표명되었는데 그 역할은 하늘에서도 영광을 받으시는 주님과 일치하여 역사가 완성 될 때까지 확장된다(40-41항).
마리아는 모든 자녀들을 위해 전구하면서 구세주 성자의 구원사업에 협력한다. 실제로 공의회는 은총의 섭리 안에 마리아의 모성이 모든 선택받은 이들의 영원한 완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속된다고 가르친다. 마리아는 지금도, 내일도, 그리고 항상 그리스도인들의 길에 실재하고 현존한다.
마리아는 주님의 여종으로서 섬김을 그치지 않고 다양하고 특별하게 성령강림 때부터 전인류의 영원한 승리의 날까지 자신의 모성적 중재를 완성하고 있으며 구원에 유익한 마리아의 영향은 성령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