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마리아론, 성모님


2.1. 초기 교부들




 2.1.1.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110)                                                 78


 2.1.2. 유스티노 (+165)                                                             80


 2.1.3. 리용의 이레네오 (+202)                                                      82


 2.1.4. 외경 「야고버 복음」                                                         84


 2.1.5. 2세기경의 그 밖의 작가들                                                    85


 2.1.6. 신앙고백문의 형식들                                                        86


 2.1.7. 떼르뚤리아노 (160-240)                                                       86


 2.1.8. 로마의 히뽈리또 (+235)                                                      87


 2.1.9.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215)                                               88


 2.1.10. 오리게네스 (185-253/4)                                                      89


 2.1.11. 3세기 교부들과 그리스도교 작가들                                           91





1. 교부들의 마리아론




교부들이란 초세기에 있어서 교회의신앙을, 신앙의 유산을 교회에 전수시킨 분들이다. 신앙을 충실하게 지키고, 또 그 신앙을 해설한 진리의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꼭 우리가 교부들이라고 일컫지 않는, 그리스도교 작가들도 있다. 이들 역시 교회의 신앙의 유산을 지키는데 공헌한 사람들이다. 사도시대에 뒤이어 사도적 교부들이 활약하였고, 특히 교부들의 황금시대라고 일컫는 4-5세기에 있어서 교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부시대는 8세기까지 이어진다. 초대교부와 그리스도교 작가들은 직접적이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마리아에 대해서만 저술한 것은 상당히 드물고, 대체적으로 성서를 해설하면서, 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설명하거나 교회의 생활, 전례의 신비를 해설하면서 거기에 덧붙여 설명되었다. 다시말해서 성서, 특히 복음이 그리스도론적 설명을 위해 보조수단으로 마리아론이 거론되었던 것과 같은 문맥을 이룬다 하겠다. 하지만 이들의 마리아에 대한 증언 마리아에 대한 신앙을 신학적으로 개척한, 선구자적 의미에서 가치가 있다.




1.1. 초기 교부들




여기서는 예루살렘 함락에서부터 니체아 공의회 시기까지의 교부들을 말한다. 사도적 교부로, 1) 디다케, 2) 로마의 클레멘스, 3)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4) 뽈리카르보, 5) 제라폴리의 파피아, 6) 바르나바의 편지, 7) 가 클레멘스, 8) 목자 헤르마, 9) 디오게네토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작품들이 있다. 또 교회를 옹호하던 호교론자들로서, 1) 아리스티데, 2) 타지아노, 3) 유스티노, 4) 이레네오, 5)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6) 아테나고라, 7) 테오필로등이 있다. 플라톤적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교의 교부들로서, 1) 오리게네스, 2)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3) 로마의 히뽈리또, 4) 떼르뚤리아노, 5) 카르타고의 치쁘리아노, 6) 노바지아노등의 교부들이 있다.


이 시기에 신앙고백문, 즉 신경이 정식화 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종교와 철학이 만연되어 있어서 정리해야 했고, 받아들여할 것들을 분명히 하여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교 문화가 형성된다. 그리이스어 뿐만아니라, 라틴어, 시리아어, 아라메아어, 콥틱어로 된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학파가 생겨나고, 교리교육이 강조된다. 외적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방인들의 문화, 종교, 철학과 충돌하게 되고, 또 내적으로 유다이즘과 대결하여야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교리나 생활에 대해 어리석은 것으로 보고 경멸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표징을 구하고, 그리이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1고린 1,18-25).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마리아의 예수 동정잉태에 관한 교리에 대해서 냉소적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선재론과 그리스도의 성부와의 동일성을 부정하고, 예수를 단순한 하나의 예언자로 보려고 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적 선재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많은 신적 존재를 인정하였다. 그러한 신적존재들이 pleroma(신적 충만)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지주의자들은 유일하신 한 분이신 하느님을 부정하고, 구약에 나타나는 정의의 하느님과 신약에 나타나는 하느님을 구별한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의 육화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물질이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체란 암암리에 구원받을 수 없는 악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구원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계시의 차원이다. 그리스도는 사라질 인간 육체에 사로잡힌 영적 존재에 대한 계시라는 것이다. 영적 인간에게는 신앙과 어떤 선행 업적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식”(또는 영지적인 것 자체 – 이것이 인간의 마지막 운명이요, 영원한 원천으로서 -) 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되었다는 것이다. 즉,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때 성령의 발현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고, 수난의 순간에 끝났다는 것이다. 성령은 세례의 순간에 인간 예수(혹자에게 참 인간으로서, 또 혹자에게는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인 인간(가현설))에게 내려왔고, 예수가 죽음 맞이하기에 앞서 먼저 하늘로 되돌아 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화, 잉태, 탄생, 인간적 체험, 죽음, 부활은 단지 순전히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는 것, 또는 구원사건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런 사고방식 안에서 아무도 마리아를 하느님의 아들의 진정한 모친, 또 처녀이면서 모친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당시 주위는 매우 복잡하였고, 이런 처지에서 교부들은 교회를 적수들로부터 ,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를 통하여 전해진 신앙을 옹호하여야 했다.




1.1.1.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110)




안티오키아의 주교로서, 성서에 이어서 첫번째로 마리아에 대해 언급한 교부이다. 또 바오로 사도의 신학을 이어받아 발전 시킨 첫 교부이며,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을 인간적이고 우주론적 측면에서 심화시켰다.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 마리아에 관해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마리아에 관한 신앙은 당시 유대적 영지주의적 흐름 가운데서 마리아의 역사적 근거를 찾고자 하는 가운데 온 교회가 고백하였던 신앙이라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냐시오는 무엇보다도 한 교회의 주교로서 신자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사도들에 의해 전해 오는 하나의 신앙 속에서 하나의 교회안에 굳게 결속할 것을 촉구하였다. 여기서 동정녀 마리아의 위치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마리아의 모성과 동정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마리아의 진정한 모성은 하느님 아들의 육화의 보증이요, 확고한 근거라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보증이요 근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구원은 육화되지 않은 천상 신비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영지주의자들의 주장), 마리아에 의해서 육화되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간적 행위와 사실에서 이루어진 계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들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장님이나 귀머거리일 것이다. 그 분은 다윗의 자손이며,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분이며,참으로 탄생하셨고, 먹고 마시고, 참으로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수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죽으셨으며 참으로 죽은이들 가운데로 부터 살아나신 분이시다”(트릴리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9항).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재가 구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2) 동정잉태는 모든 교회가 신앙으로 고백했던 것이다. 또 이것은 신경에서 중요한 핵심 부분을 이루고 있다.


“여러분들은 분명하게 우리 주님께서 참으로 육을 따라서 다윗의 후손이시며, 하느님의 능력과 뜻을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스미르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 1).


초기 그리스도교 교리교육에 있어서 마리아의 이름은 다윗의 후손인 ‘동정녀’로 불리었다.




3)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시되었고, 교회에 의해서 해석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만큼이나 마리아의 실제적인 모성(잉태하셨고, 출산하셨던)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을 따라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따라서 다윗의 후손으로서, 성령의 후손으로서, 마리아의 태중에 전해졌다. 그 분은 수난과 더불어 물을 정화하기 위하여 태어나셨고 세례를 받으셨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8,2).


“이세상의 우두머리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의 출산, 주님의 죽음과 같이 하느님의 침묵속에 완성된 세가지 신비중의 하나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9,1).


이 편지는 후대에 영지주의자들이 고안해 낸 환상에 대해 답을 주는 신학의 기틀이 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을 거스려서 동정녀에게 잉태되었다는 것, 동정출산, 죽음, 부활이 따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신 사건이었고 이것이 실제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4) 유일무이한 사건으로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강조한다. 이냐시오는 아름다운 전례적 찬가 안에서 주님의 역사적 구원 사건을 노래하고 있다. 주님의 선재, 육화, 죽음, 부활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오직 한 분이신 의사입니다. 그 분은 하느님이시요, 또 인간이십니다. 태어나셨으며, 또 유래하셨습니다. 육이되신 하느님이시요, 죽음안에서 참으로 생명이셨으며,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으며, 하느님께로부터 나셨습니다. 처음엔 수난 받으실 수 없는 분이셨으나, 나중에 수난 받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7,2).


일부 학자들은 이 귀절이 요한 1,13과 루가 1,35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1.1.2. 유스티노 (+165)




그의 작품으로 「호교론I」(apologia prima),「호교론Ⅱ」(apologia secunda),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Dialogo con Giudeo Trifono)가 있다.


철학적 입장에서 유대인들과 그리이스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왜 하느님은 육화하셨는가? 왜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셨는가? 유스티노는 육화사건과 동정잉태가 인간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적극적 계획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시 신화에서 나타나는 동정잉태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방인들, 특히 그리이스인들에게 유스티노는, 그리스도는 모든 진정한 철학의 완성임을 제시한다. 동정녀로부터의 육화는 Logos의 seme를 지니고 있는 이성안에, 쉽게 진리에 도달하고 진리 안에 살게 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강조한다. 사실 구약의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를 예고하였고 구약은 그 예형이었다는 것이다. 그 분의 동정잉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구약은 그 예형이나 또는 그것에 대한 예언이었다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 가운데서도 동정잉태에 관해서 창세기 49,10-11; 이사야 53,8; 다닐엘서 2,34; 그리고 7,13을 예로든다.


“왕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않으리라. 지휘봉이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분이 와서 만 백성이 그에게 순종하게 되리라. 포도나무에 나귀를 예사로 매어놓고, 고급 포도 나무에 새끼 나귀를 예사로 매어두리라. 포도주로 옷을 빨고, 포도주의 즙으로 겉옷까지  빨리라”(창세 49,10-11).


“그는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자가 어디 있었느냐? 그렇다 그는 인간사회에서 끊기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당하였다” (이사 53,8).


“임금께서 그것을 보고 계시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돌 하나가 난데 없이 날아들어와 쇠와 흙으로 된 그 발을 쳐서 부수어버렸습니다”(다니 2,34).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이 앞에 인도되어 나갔다”(다니 17,3).


무엇보다도 이사야 7,14: “보라 하느님께서 손수 표징을 보여주리니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고 아이를 낳으리라. 그 아이를 엠마누엘이라 부르리라”의 성취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유대인들을 거스려 그리스도교의 전형적인 해석을 펼친다. 유스티노는 이 예언이  예언한 것처럼 동정녀로부터 출생한 것이고, 만일 almah가 평범하게 아이를 출산한 것이라면 늙은 여인만이 아니라 석녀에게도 하느님이 선물로서 아이를 출산하게 하실 수 있는 하느님께 무엇이 문제가 되고, 그리고 무슨 이적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진정한 표징은 또 모든 인간들에게 믿을 수 있는 동기가 되어야 하는 표징은 모든 창조물의 첫번째(primogenito), 맏아들은 동정녀의 태중을 취하면서 실제로 출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것을 성령을 통해서 미리 예언하셨다. 미리 알려주셨다는 것은 반드시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능력과 뜻에 의하여 성취됨을 깨닫도록 하시고자 하기 위함이다(Dialog. 84).


말씀이 동정녀에 의해 잉태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렇게 원하셨고, 그렇게 미리 말씀하셨고 또 그렇게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의 내적 이유가 있다. 하느님은 그런 방법으로 이끄신 이유는 죄와 죽음의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한 동일한 길을 통해서 원초적인 역사를 회복하시고자 원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와-마리아의 대조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신비스러운 연결이 루가 1,26-38(예수의 탄생예고)와 창세기 3,1-20(인류의 타락)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두가지 역사적 탄생의 순간은 인간과 하느님에게 속하는 것임을 보게된다. 인간은 파멸하게 하고, 하느님은 다시 세우신다. 인간은 죄를 짓고 하느님은 구원하신다. 인간은 죽음으로 이끌고 하느님은 생명을 다시 주신다. 아직 “처녀”인 에와 때문에 아담이 죄에 떨어지고, 동정녀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의 육화, 즉 그리스도의 탄생이 이루어진다. 에와는 처녀로서 뱀의 말을 받아들이고, 불순명과 죽음을 출산하였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기쁜 소식을 전할 때 그 기쁨과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대답하길: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였다.


마리아에게서 성서가 그토록 말씀하신던 그 분이 탄생하셨다. 탄생하신 그 분을 통해서 하느님은 사기꾼인 뱀을 쳐부수고 그 분을 믿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Dialogo 100).


이러한 유스티노의 대조에서 초대교회 공동체가 마리아의 동정성을 유지하면서 모성을 지니셨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어머니가 되게 하셨던 신앙과 순종의 자유로운 응답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해서 에와 – 마리아 두 처녀는 아담과 그리스도, 인류의 두 우두머리와 관련하여 책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에와는 사탄과 더불어, 마리아는 하느님과 더불어, 에와는 죽음을 가져왔고, 마리아는 생명을 가져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엔 오직 한가지 동정녀의 순종의 길만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예수 탄생예고에 관한 장면에 촛점을 맞춘다면 이런 암시는 유스티노의 마리아에 대한 생각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마리아는 참 어머니이시다. 동정녀이면서 어머니, 신앙과 순종의 응답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화하신 하느님의 말씀의 어머니시라는 것이다.




1.1.3. 리용의 이레네오 (+202)




순교자이며 리용의 주교였던 이레네오는 마리아론의 교부라고 불린다. 「이단을 거스려서」(cosntro l’eresie)라는 작품안에서, 또 「사도적 설교에 관한 간단한 논증」이라는 작품에서 이단 영지주의를 성서적 근거를 통하여 반박하고 있다. 그의 신학의 주축은 “구원의 역사”였다. 또는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라고도 한다.


이 하느님의 계획이었던 구원은 모두를 일치시키기 위해 인간에게 그 근원을 가져다 주기 위해 오신 성자의 시대에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한분이신 하느님, 한분이신 그리스도(육화하신 말씀), 오직 하나의 신앙, 하나의 교회, 하나의 계시, 하나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고, 모두가 구원되어 영원으로 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원 경륜의 실현에는 “동정녀 – 마리아”가 어느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유일한 자리를 지니고 있다. 구원을 위한 하느님다운 방법을 두가지 단어, 즉 ricapitolazione(원천에로의 수렴), ricircolazione(다시 순환하다)로 설명하고 있다.


말씀-로고스는 육화하면서 모든 인간을 원천에로 수렴케(ricapitola)한다. 그리고 말씀은 인간본성의 공통적인 것을 수용하면서 고유한 신적 본성을 봉헌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에게 상실된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받아들이는 모두에게, 그것을 주기 위해 새로운 아담이 되었다. 아담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예형(로마 5,14)이었다. 만일 아담이 지상 동정녀에 의해,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한다면(창세 2,4-7), 새로운 아담 역시 그 분이 기원이 지상-동정녀에 의해 동일한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서 갖게되기 마련이다. 마리아는 지상-동정녀였다. 그 분을 통해 그리스도는 “첫째”가 된다.


“사실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하여 – 아직 가꾸어 지지 않은 땅으로부터 만들어진 첫번째 인간의 불순종을 통하여 -모두가 죄인이 되고 생명을 잃었다. 그와같이 한 인간이 순종이 요구되었다. 동정녀에 의해 탄생한 첫 인간의 순종으로 의화되었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contro le eresie III, 18, 7).


만일 아담이 하느님에 의해 물질과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을 지닌 이성적 영혼으로 구성된 하나의 본성을 지녔다면 구원자이신 분 역시 지닌 본성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인간과 관계없이 하느님의 능력을 통하여 한 여인으로 머물면서 출산을 하신 마리아는 모든 아담의 후예들을 그리스도에게 전한다. 왜냐하면 그 분을 “새로운 아담”, “인간의 아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담이 사탄의 유혹으로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죄에 떨어졌다면 그리스도는 여기에 대조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계명에 대해 충실성과 순명안에 머문다. 그러면서 충분히 아담의 불순종을 보상하였다. 왜냐하면 죄가 풍부한 곳에 은총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레네오는 아담-그리스도의 유비적 관계 안에서 에와-마리아의 대조적 관계를 발전시킨다. 이미 유스티노에게서 보았듯이 마리아는 순종적이다. “저는 당신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루가 1,).


“에와는 불순종한 여인이다. 그녀는 분명히 동정녀였다. 에와가 불순종하여 모든 인간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면 마리아는 순종하여 모든 인간의 구원의 원인이 된다. 그처럼 에와의 불순종의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으로 풀었다. 동정녀 에와가 불신앙으로 매듭을 얽었다면 동정녀 마리아는 그녀의 신앙으로 이 얽힌 매듭을 풀었다”(contro le eresie, III, 22,4).


즉 옛 여인의 동정적 불순종을, 마리아가 그녀의 동정적 순종으로 대조를 이루면서 마리아는 결국 에와의 변호자가 되었다. 첫번째 동정녀는 죽음으로 모든 인간을 이끌어 들였지만, 새로운 동정녀는 생명을 되돌려 주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에와의 죄의 결과로 하느님께서 여인과 뱀 사이에 원수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였다면, 그리스도는 “여인의 씨앗(seme)”가 되면서 첫 아담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을 구속하셨다.


이와 같이 이레네오에게는 육화가 창조의 ‘원천에로의 수렴(ricapitolation)으로 이해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 역사가 그 육화로 말미암아 새로운 방향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구원이신 하느님-인간으로서 그 분의 활동을 통하여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구약의 예형과 예언들 가운데 이레네오 역시 이사야 7,14을 강조한다. 유스티노처럼 이 징표는 하느님으로부터 아하즈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이 표징은 구원을 위해서 동정출산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엠마누엘(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 분은 하느님으로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고 또 인간으로서 어머님을 지니신다. 동정녀의 표징은 그러므로 구원의 표징이 된다. 가장 깨끗한 분, 그 분의 깨끗한 태중안에 육화하시면서 하느님안에서 인간들의 재생의 항구한 원천이 되신다는 것이다.


“순수한 인간이 단지 요셉에게서 태어났다고,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신 엠마누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이신 그 분의 선물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불사불멸을 아낌없이 베푸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죽을 육체안에 머물고 죽음에 경의를 표하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생명의 해독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Contro le eresie, III, 19,1)


그러므로 마리아의 동정적 모성을 고백하는 것은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신앙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1.1.4. 외경 「야고버 복음」




2세기경에 쓰여진 작품으로서 외경 가운데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고, 교육적인 측면에서 유명하다. 희랍어로 기록되었으며, “하느님의 거룩한 모친 마리아의 탄생과 영광스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부제 그대로 동정마리아를 주제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야기 형태로 마리아의 출산이전, 출산시, 출산 이후의 동정성을 옹호하면서 구약과 신약을 총괄하여 요약되어 있다.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 외경에 의하면, 본래 요아킴과 안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2-3장). 그런데 이 착하고 열심한 두사람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허락하여 은총의 선물로 마리아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4-5장). 요아킴과 안나는 마리아를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보호하여 건강하게 키우고 하느님 앞에 축성하였다는 것이다(6장).


3세 때에 봉헌되어 12세까지 지성소에서 천사의 손에 양육되었고, 살아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서 그녀 자신은 날마다 하느님 말씀을 들으며 거룩하게 살았다는 것이다(7-8장). 그렇게 “하느님의 아들”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준비를 하였다.


한편 요셉은 마리아를 여느 여인처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동정서약을 보호하기 위해 사제로부터 약속을 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9장). 다시말해 사제에 의해서 마리아의 동정이 지켜지기 위해 요셉에게 맡겨진 셈이다. 외경은 요셉이 이미 늙었고, 자신의 자녀들이 많이 있음을 고백한다(9,2). 마리아는 요셉의 약속 이후에도 계속 성전에 머물고, 그러는 가운데 천사가 출현하여 높으신 분의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잉태예고를 듣는다(11장). 마리아는 사제로부터 이 세상의 모든 세대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라는 말을 듣게된다. 잉태 예고를 받고 친척인 엘리사벳을 만나러 간다. 3달 머문후 돌아와서 집에 칩거한다. 그때 나이가 16이었다(12장). 마리아가 임신한지 6개월후 마리아를 만나게 되는데,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마리아의 동정을 지킬 것을 약속한 자신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하느님앞에서 애통해 한다. 그러면서 마리아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자세히 묻는다. 마리아는 결백을 주장한다(13장).사실을 들은 요셉은 두려워하며,  마리아를 떠나서 곰곰히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무죄한 마리아를 돌에 맞아 죽지 않도록 할까 고민한다. 그러던 어느 날밤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서 성령에 의한 잉태임을 알려준다. 요셉은 하느미께 영광을 돌리며 마리아를 보호한다(14장). 어느 날 사제가 요셉을 방문하고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게되고 마리아와 요셉을 문책한다. 그리고 죄가 없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쓴물을 마시게 하고 산으로 올려 보낸다.  요셉이 살아서 돌아오자, 마리아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산으로 올려보낸다. 마리아 역시 살아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무죄하다는 것이 증명된다(15-16). 이후의 장에서는 루가나 마태오의 예수의 유년기 설화에서처럼 인구조사 때문에 베틀레헴으로 떠나게 되었고, 베틀레헴 동굴에서 예수를 분만한 과정을 비롯해서 동박박사들의 방문, 어린 세자 요한의 피신, 즈카리아의 피살과 어린아이들의 피살을 기록하고 있다(17-25장).


요약하면,


① 마리아가 미리 선택되었다는 것,


② 마리아의 잉태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


③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요셉에게 의탁되었다는 것,


④ 마리아의 예수 동정잉태는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한 것이라는 것,


⑤ 동정출산은 인간 본성의 차원을 넘어선것, 자연의 법칙을 넘어선 경이로운 것이라는 것,


⑥ 마리아의 동정성은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외경은 복음안에서 마리아에 대해 부족하게 언급하고 있는 그 여백을 채우고자 시도되었다고 보여진다.




1.1.5. 2세기경의 그 밖의 작가들




1) 아테네의 아리스티데


아드리아노 황제에게 쓴 그의 「호교론」에서 “하느님은 하늘로부터 내려 오셨고, 이스라엘 처녀에게서 육체를 취하였다. 사람의 아들은 인간의 딸안에 거주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호교론 2,6).




2) 사르디의 멜리톤(+180)


그의 「부활절 강론」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의 유일 무이성을 모든 역사적 순간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마리아는 아름다운 양, 즉 희생을 위한 어린 양을 출산한 양이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양이란 순진 무구함을 표현한다. 이런 뜻으로 비잔틴 전례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또 이 양은 고통과 수난의 연관성 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말없이 묵묵한 고양, 학살된 고양이시다. 그 분은 순수한 고양이신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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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마리아론, 성모님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1. 초기 교부들


     2.1.1.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110)                                                 78

     2.1.2. 유스티노 (+165)                                                             80

     2.1.3. 리용의 이레네오 (+202)                                                      82

     2.1.4. 외경 「야고버 복음」                                                         84

     2.1.5. 2세기경의 그 밖의 작가들                                                    85

     2.1.6. 신앙고백문의 형식들                                                        86

     2.1.7. 떼르뚤리아노 (160-240)                                                       86

     2.1.8. 로마의 히뽈리또 (+235)                                                      87

     2.1.9.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215)                                               88

     2.1.10. 오리게네스 (185-253/4)                                                      89

     2.1.11. 3세기 교부들과 그리스도교 작가들                                           91


    1. 교부들의 마리아론


    교부들이란 초세기에 있어서 교회의신앙을, 신앙의 유산을 교회에 전수시킨 분들이다. 신앙을 충실하게 지키고, 또 그 신앙을 해설한 진리의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꼭 우리가 교부들이라고 일컫지 않는, 그리스도교 작가들도 있다. 이들 역시 교회의 신앙의 유산을 지키는데 공헌한 사람들이다. 사도시대에 뒤이어 사도적 교부들이 활약하였고, 특히 교부들의 황금시대라고 일컫는 4-5세기에 있어서 교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부시대는 8세기까지 이어진다. 초대교부와 그리스도교 작가들은 직접적이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마리아에 대해서만 저술한 것은 상당히 드물고, 대체적으로 성서를 해설하면서, 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설명하거나 교회의 생활, 전례의 신비를 해설하면서 거기에 덧붙여 설명되었다. 다시말해서 성서, 특히 복음이 그리스도론적 설명을 위해 보조수단으로 마리아론이 거론되었던 것과 같은 문맥을 이룬다 하겠다. 하지만 이들의 마리아에 대한 증언 마리아에 대한 신앙을 신학적으로 개척한, 선구자적 의미에서 가치가 있다.


    1.1. 초기 교부들


    여기서는 예루살렘 함락에서부터 니체아 공의회 시기까지의 교부들을 말한다. 사도적 교부로, 1) 디다케, 2) 로마의 클레멘스, 3)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4) 뽈리카르보, 5) 제라폴리의 파피아, 6) 바르나바의 편지, 7) 가 클레멘스, 8) 목자 헤르마, 9) 디오게네토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작품들이 있다. 또 교회를 옹호하던 호교론자들로서, 1) 아리스티데, 2) 타지아노, 3) 유스티노, 4) 이레네오, 5)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6) 아테나고라, 7) 테오필로등이 있다. 플라톤적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교의 교부들로서, 1) 오리게네스, 2)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3) 로마의 히뽈리또, 4) 떼르뚤리아노, 5) 카르타고의 치쁘리아노, 6) 노바지아노등의 교부들이 있다.

    이 시기에 신앙고백문, 즉 신경이 정식화 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종교와 철학이 만연되어 있어서 정리해야 했고, 받아들여할 것들을 분명히 하여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교 문화가 형성된다. 그리이스어 뿐만아니라, 라틴어, 시리아어, 아라메아어, 콥틱어로 된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학파가 생겨나고, 교리교육이 강조된다. 외적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방인들의 문화, 종교, 철학과 충돌하게 되고, 또 내적으로 유다이즘과 대결하여야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교리나 생활에 대해 어리석은 것으로 보고 경멸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표징을 구하고, 그리이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1고린 1,18-25).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마리아의 예수 동정잉태에 관한 교리에 대해서 냉소적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선재론과 그리스도의 성부와의 동일성을 부정하고, 예수를 단순한 하나의 예언자로 보려고 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적 선재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많은 신적 존재를 인정하였다. 그러한 신적존재들이 pleroma(신적 충만)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지주의자들은 유일하신 한 분이신 하느님을 부정하고, 구약에 나타나는 정의의 하느님과 신약에 나타나는 하느님을 구별한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의 육화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물질이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체란 암암리에 구원받을 수 없는 악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구원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계시의 차원이다. 그리스도는 사라질 인간 육체에 사로잡힌 영적 존재에 대한 계시라는 것이다. 영적 인간에게는 신앙과 어떤 선행 업적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식”(또는 영지적인 것 자체 – 이것이 인간의 마지막 운명이요, 영원한 원천으로서 -) 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되었다는 것이다. 즉,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때 성령의 발현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고, 수난의 순간에 끝났다는 것이다. 성령은 세례의 순간에 인간 예수(혹자에게 참 인간으로서, 또 혹자에게는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인 인간(가현설))에게 내려왔고, 예수가 죽음 맞이하기에 앞서 먼저 하늘로 되돌아 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화, 잉태, 탄생, 인간적 체험, 죽음, 부활은 단지 순전히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는 것, 또는 구원사건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런 사고방식 안에서 아무도 마리아를 하느님의 아들의 진정한 모친, 또 처녀이면서 모친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당시 주위는 매우 복잡하였고, 이런 처지에서 교부들은 교회를 적수들로부터 ,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를 통하여 전해진 신앙을 옹호하여야 했다.


    1.1.1.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110)


    안티오키아의 주교로서, 성서에 이어서 첫번째로 마리아에 대해 언급한 교부이다. 또 바오로 사도의 신학을 이어받아 발전 시킨 첫 교부이며,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을 인간적이고 우주론적 측면에서 심화시켰다.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 마리아에 관해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마리아에 관한 신앙은 당시 유대적 영지주의적 흐름 가운데서 마리아의 역사적 근거를 찾고자 하는 가운데 온 교회가 고백하였던 신앙이라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냐시오는 무엇보다도 한 교회의 주교로서 신자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사도들에 의해 전해 오는 하나의 신앙 속에서 하나의 교회안에 굳게 결속할 것을 촉구하였다. 여기서 동정녀 마리아의 위치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마리아의 모성과 동정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마리아의 진정한 모성은 하느님 아들의 육화의 보증이요, 확고한 근거라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보증이요 근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구원은 육화되지 않은 천상 신비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영지주의자들의 주장), 마리아에 의해서 육화되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간적 행위와 사실에서 이루어진 계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들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장님이나 귀머거리일 것이다. 그 분은 다윗의 자손이며,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분이며,참으로 탄생하셨고, 먹고 마시고, 참으로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수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죽으셨으며 참으로 죽은이들 가운데로 부터 살아나신 분이시다”(트릴리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9항).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재가 구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2) 동정잉태는 모든 교회가 신앙으로 고백했던 것이다. 또 이것은 신경에서 중요한 핵심 부분을 이루고 있다.

    “여러분들은 분명하게 우리 주님께서 참으로 육을 따라서 다윗의 후손이시며, 하느님의 능력과 뜻을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스미르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 1).

    초기 그리스도교 교리교육에 있어서 마리아의 이름은 다윗의 후손인 ‘동정녀’로 불리었다.


    3)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시되었고, 교회에 의해서 해석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만큼이나 마리아의 실제적인 모성(잉태하셨고, 출산하셨던)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을 따라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따라서 다윗의 후손으로서, 성령의 후손으로서, 마리아의 태중에 전해졌다. 그 분은 수난과 더불어 물을 정화하기 위하여 태어나셨고 세례를 받으셨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8,2).

    “이세상의 우두머리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의 출산, 주님의 죽음과 같이 하느님의 침묵속에 완성된 세가지 신비중의 하나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9,1).

    이 편지는 후대에 영지주의자들이 고안해 낸 환상에 대해 답을 주는 신학의 기틀이 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을 거스려서 동정녀에게 잉태되었다는 것, 동정출산, 죽음, 부활이 따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신 사건이었고 이것이 실제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4) 유일무이한 사건으로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강조한다. 이냐시오는 아름다운 전례적 찬가 안에서 주님의 역사적 구원 사건을 노래하고 있다. 주님의 선재, 육화, 죽음, 부활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오직 한 분이신 의사입니다. 그 분은 하느님이시요, 또 인간이십니다. 태어나셨으며, 또 유래하셨습니다. 육이되신 하느님이시요, 죽음안에서 참으로 생명이셨으며,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으며, 하느님께로부터 나셨습니다. 처음엔 수난 받으실 수 없는 분이셨으나, 나중에 수난 받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7,2).

    일부 학자들은 이 귀절이 요한 1,13과 루가 1,35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1.1.2. 유스티노 (+165)


    그의 작품으로 「호교론I」(apologia prima),「호교론Ⅱ」(apologia secunda),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Dialogo con Giudeo Trifono)가 있다.

    철학적 입장에서 유대인들과 그리이스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왜 하느님은 육화하셨는가? 왜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셨는가? 유스티노는 육화사건과 동정잉태가 인간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적극적 계획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시 신화에서 나타나는 동정잉태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방인들, 특히 그리이스인들에게 유스티노는, 그리스도는 모든 진정한 철학의 완성임을 제시한다. 동정녀로부터의 육화는 Logos의 seme를 지니고 있는 이성안에, 쉽게 진리에 도달하고 진리 안에 살게 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강조한다. 사실 구약의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를 예고하였고 구약은 그 예형이었다는 것이다. 그 분의 동정잉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구약은 그 예형이나 또는 그것에 대한 예언이었다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 가운데서도 동정잉태에 관해서 창세기 49,10-11; 이사야 53,8; 다닐엘서 2,34; 그리고 7,13을 예로든다.

    “왕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않으리라. 지휘봉이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분이 와서 만 백성이 그에게 순종하게 되리라. 포도나무에 나귀를 예사로 매어놓고, 고급 포도 나무에 새끼 나귀를 예사로 매어두리라. 포도주로 옷을 빨고, 포도주의 즙으로 겉옷까지  빨리라”(창세 49,10-11).

    “그는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자가 어디 있었느냐? 그렇다 그는 인간사회에서 끊기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당하였다” (이사 53,8).

    “임금께서 그것을 보고 계시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돌 하나가 난데 없이 날아들어와 쇠와 흙으로 된 그 발을 쳐서 부수어버렸습니다”(다니 2,34).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이 앞에 인도되어 나갔다”(다니 17,3).

    무엇보다도 이사야 7,14: “보라 하느님께서 손수 표징을 보여주리니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고 아이를 낳으리라. 그 아이를 엠마누엘이라 부르리라”의 성취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유대인들을 거스려 그리스도교의 전형적인 해석을 펼친다. 유스티노는 이 예언이  예언한 것처럼 동정녀로부터 출생한 것이고, 만일 almah가 평범하게 아이를 출산한 것이라면 늙은 여인만이 아니라 석녀에게도 하느님이 선물로서 아이를 출산하게 하실 수 있는 하느님께 무엇이 문제가 되고, 그리고 무슨 이적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진정한 표징은 또 모든 인간들에게 믿을 수 있는 동기가 되어야 하는 표징은 모든 창조물의 첫번째(primogenito), 맏아들은 동정녀의 태중을 취하면서 실제로 출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것을 성령을 통해서 미리 예언하셨다. 미리 알려주셨다는 것은 반드시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능력과 뜻에 의하여 성취됨을 깨닫도록 하시고자 하기 위함이다(Dialog. 84).

    말씀이 동정녀에 의해 잉태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렇게 원하셨고, 그렇게 미리 말씀하셨고 또 그렇게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의 내적 이유가 있다. 하느님은 그런 방법으로 이끄신 이유는 죄와 죽음의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한 동일한 길을 통해서 원초적인 역사를 회복하시고자 원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와-마리아의 대조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신비스러운 연결이 루가 1,26-38(예수의 탄생예고)와 창세기 3,1-20(인류의 타락)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두가지 역사적 탄생의 순간은 인간과 하느님에게 속하는 것임을 보게된다. 인간은 파멸하게 하고, 하느님은 다시 세우신다. 인간은 죄를 짓고 하느님은 구원하신다. 인간은 죽음으로 이끌고 하느님은 생명을 다시 주신다. 아직 “처녀”인 에와 때문에 아담이 죄에 떨어지고, 동정녀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의 육화, 즉 그리스도의 탄생이 이루어진다. 에와는 처녀로서 뱀의 말을 받아들이고, 불순명과 죽음을 출산하였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기쁜 소식을 전할 때 그 기쁨과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대답하길: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였다.

    마리아에게서 성서가 그토록 말씀하신던 그 분이 탄생하셨다. 탄생하신 그 분을 통해서 하느님은 사기꾼인 뱀을 쳐부수고 그 분을 믿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Dialogo 100).

    이러한 유스티노의 대조에서 초대교회 공동체가 마리아의 동정성을 유지하면서 모성을 지니셨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어머니가 되게 하셨던 신앙과 순종의 자유로운 응답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해서 에와 – 마리아 두 처녀는 아담과 그리스도, 인류의 두 우두머리와 관련하여 책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에와는 사탄과 더불어, 마리아는 하느님과 더불어, 에와는 죽음을 가져왔고, 마리아는 생명을 가져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엔 오직 한가지 동정녀의 순종의 길만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예수 탄생예고에 관한 장면에 촛점을 맞춘다면 이런 암시는 유스티노의 마리아에 대한 생각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마리아는 참 어머니이시다. 동정녀이면서 어머니, 신앙과 순종의 응답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화하신 하느님의 말씀의 어머니시라는 것이다.


    1.1.3. 리용의 이레네오 (+202)


    순교자이며 리용의 주교였던 이레네오는 마리아론의 교부라고 불린다. 「이단을 거스려서」(cosntro l’eresie)라는 작품안에서, 또 「사도적 설교에 관한 간단한 논증」이라는 작품에서 이단 영지주의를 성서적 근거를 통하여 반박하고 있다. 그의 신학의 주축은 “구원의 역사”였다. 또는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라고도 한다.

    이 하느님의 계획이었던 구원은 모두를 일치시키기 위해 인간에게 그 근원을 가져다 주기 위해 오신 성자의 시대에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한분이신 하느님, 한분이신 그리스도(육화하신 말씀), 오직 하나의 신앙, 하나의 교회, 하나의 계시, 하나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고, 모두가 구원되어 영원으로 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원 경륜의 실현에는 “동정녀 – 마리아”가 어느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유일한 자리를 지니고 있다. 구원을 위한 하느님다운 방법을 두가지 단어, 즉 ricapitolazione(원천에로의 수렴), ricircolazione(다시 순환하다)로 설명하고 있다.

    말씀-로고스는 육화하면서 모든 인간을 원천에로 수렴케(ricapitola)한다. 그리고 말씀은 인간본성의 공통적인 것을 수용하면서 고유한 신적 본성을 봉헌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에게 상실된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받아들이는 모두에게, 그것을 주기 위해 새로운 아담이 되었다. 아담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예형(로마 5,14)이었다. 만일 아담이 지상 동정녀에 의해,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한다면(창세 2,4-7), 새로운 아담 역시 그 분이 기원이 지상-동정녀에 의해 동일한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서 갖게되기 마련이다. 마리아는 지상-동정녀였다. 그 분을 통해 그리스도는 “첫째”가 된다.

    “사실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하여 – 아직 가꾸어 지지 않은 땅으로부터 만들어진 첫번째 인간의 불순종을 통하여 -모두가 죄인이 되고 생명을 잃었다. 그와같이 한 인간이 순종이 요구되었다. 동정녀에 의해 탄생한 첫 인간의 순종으로 의화되었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contro le eresie III, 18, 7).

    만일 아담이 하느님에 의해 물질과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을 지닌 이성적 영혼으로 구성된 하나의 본성을 지녔다면 구원자이신 분 역시 지닌 본성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인간과 관계없이 하느님의 능력을 통하여 한 여인으로 머물면서 출산을 하신 마리아는 모든 아담의 후예들을 그리스도에게 전한다. 왜냐하면 그 분을 “새로운 아담”, “인간의 아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담이 사탄의 유혹으로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죄에 떨어졌다면 그리스도는 여기에 대조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계명에 대해 충실성과 순명안에 머문다. 그러면서 충분히 아담의 불순종을 보상하였다. 왜냐하면 죄가 풍부한 곳에 은총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레네오는 아담-그리스도의 유비적 관계 안에서 에와-마리아의 대조적 관계를 발전시킨다. 이미 유스티노에게서 보았듯이 마리아는 순종적이다. “저는 당신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루가 1,).

    “에와는 불순종한 여인이다. 그녀는 분명히 동정녀였다. 에와가 불순종하여 모든 인간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면 마리아는 순종하여 모든 인간의 구원의 원인이 된다. 그처럼 에와의 불순종의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으로 풀었다. 동정녀 에와가 불신앙으로 매듭을 얽었다면 동정녀 마리아는 그녀의 신앙으로 이 얽힌 매듭을 풀었다”(contro le eresie, III, 22,4).

    즉 옛 여인의 동정적 불순종을, 마리아가 그녀의 동정적 순종으로 대조를 이루면서 마리아는 결국 에와의 변호자가 되었다. 첫번째 동정녀는 죽음으로 모든 인간을 이끌어 들였지만, 새로운 동정녀는 생명을 되돌려 주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에와의 죄의 결과로 하느님께서 여인과 뱀 사이에 원수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였다면, 그리스도는 “여인의 씨앗(seme)”가 되면서 첫 아담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을 구속하셨다.

    이와 같이 이레네오에게는 육화가 창조의 ‘원천에로의 수렴(ricapitolation)으로 이해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 역사가 그 육화로 말미암아 새로운 방향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구원이신 하느님-인간으로서 그 분의 활동을 통하여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구약의 예형과 예언들 가운데 이레네오 역시 이사야 7,14을 강조한다. 유스티노처럼 이 징표는 하느님으로부터 아하즈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이 표징은 구원을 위해서 동정출산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엠마누엘(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 분은 하느님으로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고 또 인간으로서 어머님을 지니신다. 동정녀의 표징은 그러므로 구원의 표징이 된다. 가장 깨끗한 분, 그 분의 깨끗한 태중안에 육화하시면서 하느님안에서 인간들의 재생의 항구한 원천이 되신다는 것이다.

    “순수한 인간이 단지 요셉에게서 태어났다고,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신 엠마누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이신 그 분의 선물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불사불멸을 아낌없이 베푸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죽을 육체안에 머물고 죽음에 경의를 표하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생명의 해독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Contro le eresie, III, 19,1)

    그러므로 마리아의 동정적 모성을 고백하는 것은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신앙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1.1.4. 외경 「야고버 복음」


    2세기경에 쓰여진 작품으로서 외경 가운데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고, 교육적인 측면에서 유명하다. 희랍어로 기록되었으며, “하느님의 거룩한 모친 마리아의 탄생과 영광스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부제 그대로 동정마리아를 주제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야기 형태로 마리아의 출산이전, 출산시, 출산 이후의 동정성을 옹호하면서 구약과 신약을 총괄하여 요약되어 있다.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 외경에 의하면, 본래 요아킴과 안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2-3장). 그런데 이 착하고 열심한 두사람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허락하여 은총의 선물로 마리아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4-5장). 요아킴과 안나는 마리아를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보호하여 건강하게 키우고 하느님 앞에 축성하였다는 것이다(6장).

    3세 때에 봉헌되어 12세까지 지성소에서 천사의 손에 양육되었고, 살아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서 그녀 자신은 날마다 하느님 말씀을 들으며 거룩하게 살았다는 것이다(7-8장). 그렇게 “하느님의 아들”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준비를 하였다.

    한편 요셉은 마리아를 여느 여인처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동정서약을 보호하기 위해 사제로부터 약속을 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9장). 다시말해 사제에 의해서 마리아의 동정이 지켜지기 위해 요셉에게 맡겨진 셈이다. 외경은 요셉이 이미 늙었고, 자신의 자녀들이 많이 있음을 고백한다(9,2). 마리아는 요셉의 약속 이후에도 계속 성전에 머물고, 그러는 가운데 천사가 출현하여 높으신 분의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잉태예고를 듣는다(11장). 마리아는 사제로부터 이 세상의 모든 세대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라는 말을 듣게된다. 잉태 예고를 받고 친척인 엘리사벳을 만나러 간다. 3달 머문후 돌아와서 집에 칩거한다. 그때 나이가 16이었다(12장). 마리아가 임신한지 6개월후 마리아를 만나게 되는데,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마리아의 동정을 지킬 것을 약속한 자신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하느님앞에서 애통해 한다. 그러면서 마리아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자세히 묻는다. 마리아는 결백을 주장한다(13장).사실을 들은 요셉은 두려워하며,  마리아를 떠나서 곰곰히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무죄한 마리아를 돌에 맞아 죽지 않도록 할까 고민한다. 그러던 어느 날밤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서 성령에 의한 잉태임을 알려준다. 요셉은 하느미께 영광을 돌리며 마리아를 보호한다(14장). 어느 날 사제가 요셉을 방문하고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게되고 마리아와 요셉을 문책한다. 그리고 죄가 없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쓴물을 마시게 하고 산으로 올려 보낸다.  요셉이 살아서 돌아오자, 마리아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산으로 올려보낸다. 마리아 역시 살아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무죄하다는 것이 증명된다(15-16). 이후의 장에서는 루가나 마태오의 예수의 유년기 설화에서처럼 인구조사 때문에 베틀레헴으로 떠나게 되었고, 베틀레헴 동굴에서 예수를 분만한 과정을 비롯해서 동박박사들의 방문, 어린 세자 요한의 피신, 즈카리아의 피살과 어린아이들의 피살을 기록하고 있다(17-25장).

    요약하면,

    ① 마리아가 미리 선택되었다는 것,

    ② 마리아의 잉태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

    ③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요셉에게 의탁되었다는 것,

    ④ 마리아의 예수 동정잉태는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한 것이라는 것,

    ⑤ 동정출산은 인간 본성의 차원을 넘어선것, 자연의 법칙을 넘어선 경이로운 것이라는 것,

    ⑥ 마리아의 동정성은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외경은 복음안에서 마리아에 대해 부족하게 언급하고 있는 그 여백을 채우고자 시도되었다고 보여진다.


    1.1.5. 2세기경의 그 밖의 작가들


    1) 아테네의 아리스티데

    아드리아노 황제에게 쓴 그의 「호교론」에서 “하느님은 하늘로부터 내려 오셨고, 이스라엘 처녀에게서 육체를 취하였다. 사람의 아들은 인간의 딸안에 거주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호교론 2,6).


    2) 사르디의 멜리톤(+180)

    그의 「부활절 강론」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의 유일 무이성을 모든 역사적 순간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마리아는 아름다운 양, 즉 희생을 위한 어린 양을 출산한 양이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양이란 순진 무구함을 표현한다. 이런 뜻으로 비잔틴 전례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또 이 양은 고통과 수난의 연관성 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말없이 묵묵한 고양, 학살된 고양이시다. 그 분은 순수한 고양이신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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