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에게 샘솟듯 흘러 넘치리라.

성령이 사도들 위에 내리셨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그 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주실 것이다.”(요한 16,13)

그날은 오순절이었다. 시나이산의 계약을 기념하는 유대인 축일인 이날, 예루살렘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온 경건한 유대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의 섭섭함을 되새기면서 성령을 보낼 것이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최후만찬을 가졌던 그곳에 모여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령을 기다리며 고요히 기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같은 소리가 별안간에 하늘에서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불길 같은 혀들이 그 자리에 나타나 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위로자 성령이 임하신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유령을 보는 줄로 알고 안절부절하여 책망받던 사도들은(루가 24,58) 성령으로 가득 차서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무엇 때문에 세상에 오시어 죽고 부활하셨는지 그 참뜻을 깨닫고,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가 예루살렘에 모였던 무수한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위로자 성령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지를 구약과 신약성서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성령은 누구이신가?
구약과 신약성서를 잘 살펴보면 성령에 대해 적용된 여러 가지 표상들을 만날 수 있다. 성령과 물이 동일시되어 나타나는가 하면(1요한 5,8)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내부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요한 7,38). 또한 성령강림 날은 성령이 바람소리와 함께 불 혀 모양으로 사도들 위에 내리셨다(사도 2,2-3). 물, 불, 바람, 숨과 같은 성령에 대한 여러 표상들은 성령이 사람들에게 내리실 때 생기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표상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러한 표상들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생명을 쉽게 연상할 수가 있다. 모든 생물에 생기를 주는 물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에서, 더욱이 잠자는 아기의 숨결에서 생명의 힘찬 율동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은 곧 생명의 성령이다. 그러면 이 생명은 무엇을 위한 생명인가?

가. 구약의 ‘하느님의 영(靈)’
구약성경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영’이라는 표현을 가끔 만날 수 있다. 구약의 이 ‘하느님의 영’은 세상을 창조하고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힘으로 나타나며(창세 1,3;2,7), 특히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내리어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혜로써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이스라엘 백성을 흉년에서 구한 요셉에게(창세 41,38)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킨 모세에게(민수 11,17), 팔레스티나를 점령하여 광대한 다윗왕국을 건설한 다윗에게(1사무 16,13] ‘하느님의 영’ 이 내려 이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고 구원하고 번성케 했다. 그러나 어떤 한 개인에게 내렸던 ‘하느님의 영’은 후대에 오면서 점차로 모든 사람들에게 내리게 된다. 많은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영’이 모든 사람들 위에 내리리라는 것을 예언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을 받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엘 예언자는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영’에 의해 생명과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시온산에는 난을 면한 사람이 있으리라. 예루살렘에는 야훼께서 부르신 사람이 살아남으리라.”(요엘 3,1.5) 에제키엘 예언자도 역시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리라. 나의 기운을 너희 속에 넣어 주리니”하는 예언과 함께 그때는 온갖 악과 고통, 불행이 사라지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는 구원이 실현될 것이라 기대했다.(에제 36,26 이하 참조)
이와같이 구약의 ‘하느님의 영’은 죽은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넣어 다시 살리는 하느님의 힘이었으며 ‘하느님의 영’이 있는 곳에 곧 생명과 구원이 있게 마련이었다. 즉 ‘하느님의 영’은 생명과 구원에 대한 보증이었다. 그러면 언제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영’을 받게 되어 구원과 생명을 보장받게 되는 것일까? 이 모든 일은 바로 신약의 예수님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나. 신약의 위로자 성령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떠나가실 때 위로자 성령을 보낼 것을 약속하셨고 이미 오순절날 이 성령은 사도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내리셨다. 성령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의 결과로서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요한 복음서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 샘솟는 물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임을 상기시키고 “그때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와 계시지 않으셨던 것이다”고 전하고 있다(요한 7,37) 성령은 예수님의 청에 의해 성부께서 파견하신다(요한 5,26) 이렇게 파견되신 성령이 하시는 일은 모든 사람들을 진리로 이끄는 일이다(요한 16,13) 이 진리는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우리 구원을 위한 진리이며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서 완전히 드러나게 된 진리이다. 따라서 성령이 하시는 일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와 전혀 다른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요한 16,13). 그러나 성령은 이 진리를 단순히 알려 주시는 데 그치기 않고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치심, 수난과 부활의 참뜻을 더욱 깊이 깨닫고, 깨달은 바를 세상에 증거하고 전파하게 하신다.
이와같은 사실로 미루어 우리는 예수님과 성령이 밀접히 연결되어 따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당신의 수난과 부활 승천을 통해 이 구원사업을 완성하셨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한번 이루어진 구원이 세상 마칠 때까지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져야 했기에 이제 성령께서 교회를 통하여, 또 교회 안에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의 참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에게 생명과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 이와같이 성령은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하시며 그 일이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는, 즉 죽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다시 살리는 일이라 하겠다. 2천년의 긴 역사를 통해 교회가 자신의 무지와 나약함으로 많은 진통을 겪어온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지와 나약함 속에서도 멸망치 않고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구원사업을 계속 수행해 온 것은 바로 그 속에 성령의 은총의 역사가 함께 하기 때문이며, 이 성령이 바로 “새 생명의 성령이며, 영원한 생명을 위해 솟아 오르는 샘이기 때문이다”(교회 4).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은 바로 우리의 협조자이며 위로자인 것이다.
구약과 신약을 비추어 볼 때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은 생명과 구원에 대한 보증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같은, 성령을, 찾아보기 힘든 양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물의 고마움과 숨을 쉬기에 생명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잊고 생활하듯 우리 자신과 교회 안에 활동하면서 생명과 구원을 베푸시는 성령을 잊기 쉬운 것이다. 만약 성령이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어떻게 될까? 물이 없어진 세상! 모든 생물체들은 죽어가고 푸른 초원은 사막처럼 황폐해지고, 결국 모든 것은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시편 저자도 이 사실을 절실히 느끼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러다가 당신께서 외면하시면 어쩔 줄을 모르고 숨을 거두어 들이시면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지만, 당신께서 입김을 불어 넣으시면 다시 소생하고 땅의 모습은 새로와집니다.”(시편 104,29-30)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