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von Aquin
중세기, 특히 13세기의 신학자들 가운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매우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토마스는 1227년 이탈리아의 남부에서 출생하였고, 가족들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나폴리에 소재하던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1243년 또는 1244년). 파리에서 토마스는 알베르토의 제자로서 수학하였으며, 스승 알베르토와 함께 독일의 쾰른으로 갔다. 그 후 토마스는 파리, 로마, 볼로냐, 피사 그리고 나폴리 등지에서 가르쳤다. 스승 알베르토의 저술을 토대로 해서 토마스는 중세기의 정신적인 업적을 남겼다. 토마스가 남긴 수많은 저서 가운데 Summa Theologica(『신학대전』)는 그의 주저이기도 하다. 『이교들을 거슬러』라는 저서를 통해 토마스는 아라비아의 철학과 씨름하기도 하였다. 토마스는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리옹으로 가던 중 1274년 3월 7일에 별세하였다.
토마스는 ꡒ성인들 가운데 가장 박학한 사람, 박학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거룩한 사람ꡓ(J. Lortz)으로 칭송받고 있다. 토마스는 사물의 내적인 연관성을 인식하고, 그 인식의 결과를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려고 부단하게 노력하였다. 토마스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로 이르는 길이었다. 토마스는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기도로 간주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토마스에게 성체 찬가의 창작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토마스주의는 수세기 동안 미래의 사제 양성에 있어서 요구되는 신학 연구의 토대로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