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론 (Sacramentum Mundi)
1. 성서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르 6,8 ; 마태 13,55 ; 사도 1,4),는 신약성서에서 그 모습이 크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녀의 신앙에 대한 증언은 그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 성서의 첫 선포와같이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비중이 크져 갈수록 점점 깊고, 크다고 간주한다.
복음 보다 먼저 쓰여진 바울로 서간에서 마리아는 단지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언급되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진실은 이미 여기에 표명되어 있다. 비록 마리아의 이름은 언급되어 있지 않더라도 바울로는 마리아에 대하여 이야기 함으로써 메시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때가 찾을 때,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여자에게 태어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보내셨다.”
이 텍스트에 따르면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는 장소이다. 여자로 부터의 탄생은 참된 인성과 십자가 죽음의 사실성, 바울로가 설교하는 주님의 부활 그리고 순수 영적인 것으로만 보려고 하는 모든 경향들을 거부하는 참된보증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전, 그의 행동과 삶에 의지하기 시작했을 때, 예수님의 한부분인 그의 어머니는 점점 큰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 흥미로운 사실은 기원전 약 80년 경에 각각 쓰여진 마태오와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로 부터의 장면들에 그들자신들을 제한하지 않는 마르코 루까 복음서에 충분하고도 만족스럽게 씌여져 있다. 마르코 복음에 따르면(3,20a ; 31.35), 그의 행동이 군중을 자극하고, 관심을 끌었기 때문에 예수의 친척과 또한 그의 어머니는 – 그러나 그녀의 관계는 거의 조용한 방관자인 – 예수님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시도한다. 마태오 12,46-50과 루까 8,18ㄱ은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어색함들을 줄이기 위한 그러한 방법으로 이 택스트를 소개한다. 루까는 예수님의 공생활로부터 다른 장면을 준다. 루까는 한 여자가 예수님께 그의 어머니를 칭송했을 때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참으로 복되다.” 라고 대답하셨다고 말해준다. 메시아 삶의 기원에 대하여 마태오 1,2장과 루까 1,2장에서 메시아의 유년기 구성이 이야기 된다. 그들은 많은 점에서 의견을 달리하는데 특히 혈통에 대하여 그러하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은 완전히 조화롭게 할수는 없다. 두 복음사가는 다른 전승을 사용하였다. 게다가 각 복음사가는 그 전승들이 지닌 신학적 성격인 그들 고유의 신학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두 복음사가 모두 유년시절 이야기에서 구약과 유대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마태오 복음 안에서 모세 이야기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텍스트는 구약의 인용이 썩여 있고, 구약의 약 속의 성취로 구성되어 있다. 루까에는 또한 셈계 배경이 들어있다. 두 이야기다 대중적인 전승들의 계열 안에 있는 것이고, 다른 복음서들의 부분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세히 말해서, 이를테면 천사들의 잦은 출현들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역사적인 핵심은 남아있다. 우리는 마리아가 나자렛 출신이며, 그녀가 다윗의 자손 요셉과 결혼했다는 것을 배운다. (마태 1,18 ; 루까 1,26) 마리아 자신이 다윗의 자손인지 아닌지는 텍스트로 부터는 명확하게 알수 없다. 요셉의 선조들은 합법적으로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이 되게 한다. 요셉이 결혼하여 마리아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오기 전에,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은총을 가득히 받고 있으며, 주께서 그녀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마리아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를 예수라 불렀다.그녀의 모성은 인간적인 중재를 통한 것이 아니였고, 성령에 의한 것이였다.(마태 1,18 ; 루까 1,35) 그녀가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그 천상적 메시지는 그녀가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 다시 상기되었다. 그 복음사가는 엘리사벳과 마리아 자신과 그녀가 메시아를 성전에 봉헌하러 갔을 때 찬미가를 부르며, 감사하였던 시메온에게로 돌린다. 탄생은 베들레헴에서 이루어졌다.(마태 1,23 ; 2,1 ; 루까 1,27 : 2,4) 목동들이 그 아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고, 동방으로부터 온 현자들도 경배 드리러 왔다. 폭군 헤로데의 의도로 마리아는 에집트로 피난을 가게 하였다. 그 가족이 돌아왔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과 요셉과 함께 나자렛에서 살았다.(마태 2,23 ; 루까 2,39) 예수님은 율법의 규정에 따라 성전으로가서 할례를 받았다.(루까 2,21-40) 예수님의 유년기에 관한 장면은 단지 예루살렘 성전 방문에 대한 한 장면만이 말해진다. 그 장면은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귀향하는 순례자들과 함께 가지 않고, 그의 부모님께 아무런 말도 없이, 뒤에 머무르셨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들이 몹시 근심하며 찾다가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그들에게 “왜 나를 찾으셨나요?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함을 모르셨습니까?”하는 놀라운 대답을 한다. 복음사가는 마리아와 요셉이 이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마리아는 이것들 모두를 그녀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신앙안에서 그것들을 묵상하였다.
예수님의 유년기 시절에 대해 한 특별한 질문이 우리의 주의를 끈다. 그것은 동정 잉태와 탄생에 대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이래,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루까 1장 34절이 마리아가 동정의 서원을 하였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이 전통적인 관점은 오늘날에 비판되어진다. 만일 마리아가 일생동안 결혼할 의사가 없었다면, 왜 결혼을 하였는가? 여기서부터 많은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영보의 순간 동정의 삶을 살기를 결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녀는 무조건적으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봉헌했다. 이러한 봉헌을 통하여 마리아는 그녀의 몸과 영혼에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였다. 성령께서는 예수를 낳게하는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잉태를 가져오는 활동적인 힘으로서 묘사된다. 아버지 없는 잉태의 대한 사상은 구약에서는 이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신이 자신을 나누어 대지의 여신이 되어 대지의 아버지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이도교들의 신화와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동정 잉태와 출산은 신약의 진정한 계시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도 이 계시는 구약 안에서 인간적인 힘으로 임신을 할 수 없었던 위대한 인물들을 낳은 어머니들의 이야기 안에서 미리 준비되어져 있다.(창세 18 ; 사무上 1) 구원을 가져다 주는자와 한 여인으로부터 나는 그의 출생에 대하여 기록한 이사야 예언서 7장 14절에 나오는 메시아의 약속은 이미 동정 잉태의 예언으로서 ‘70인역’의 그리스 번역가들에 의해 이해되어왔다. 어쨌든 이것은 마태오 복음 안에 이사야 예언서가 주어진 의미이다. 텍스트의 유년기 사화의 이러한 견해가 단지 현실적인 말들만으로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중요한 요소를 낮추어 보는 사람들에게 일격을 가한다. 만일 누가 예수님이 왜 동정으로 잉태하셨는가? 라고 물으면, 그 대답은 지상의 아버지가 선제하는 말씀의 천상 아버지와 반갑지 않은 경쟁자의 일종이다는 것이 될 수 없다. 또한 결혼을 통한 잉태가 영원하신 하느니의 아들로부터 가치없는 것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동정 잉태와 출산 하느님의 창조적인 힘과 구원사업에 있어서 그분의 전적인 주도권을 완전하게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한 사람의 업적도 개입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도 행전과 요한복음에도 마리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마리아는 제자들이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릴 때 예루살렘에서 그들과 함께 있었다.(사도 1,14) 요한에 따르면, 마리아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요한 2,1-11)그녀는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진 주인에게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한다. 예수는 처음에 당신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나, 후에 그 청을 들어주었다. 마리아는 여기서 집의 안주인 같이 나타난다. 네 복음서가 편집되었을 그 시기에 교회 안에서 마리아의 위치를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명백하다.(불트만) 십자가 아래서,(요한 19,25ㄴ) 마리아는 죽어가는 그녀의 아들에 의해 그녀가 지금부터 사랑하는 제자가 그녀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듣게 된다. 그 제자는 예수에 의해 그가 마리아를 그의 어머니처럼 된다는 것을 듣게 된다. 네 복음서의 명백한 상징적인 인물은 예수님의 그 말씀이 시대를 초월하여 마리아와 교회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마리아가 계시의 책에 나오는 여인에 의해 의미되는지 아닌지는 말하기 어렵다. 아마 그 여인은 이스라엘과 교회 자체에 처음으로 위치한다.
사도시대 이후 성서의 그 봉헌은 점점 더 발전되고 풍부해지게 된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마리아의 모성이다. 곧 다이파라의 실제적인 제목 즉 하느님을 낳은 자는 3세기 시작에 로마의 히폴리뚜스에 있어서 처음으로 발견되어진다. 그 기간의 이러한 의미는 3세기와 4세기경의 그리스도론 논쟁을 통해 점점더 명확해 지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의 교회의 일치에 위험을 가한 네스토리아니즘에 반대하여 그리스론 교의를 형성시켜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에페소 공의회에서 명확히 성립되었다. 그 시기에 예수의 위격의 단일성이 표현되었고, 영신적 그노시즘을 거슬러 예수님이 참 인간이심과, 유다이즘을 거슬러 참 하느님이심이 신앙의 고백으로 표현되었다. 다이파라의 용어가 고정적인 통교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예수 위격의 단일성 때문에 예수 위격 자체는, 예수님은 신성과 성령을 통한 마리아로 부터의 탄생으로 인성을 둘 다 소유하게 된다. 다이파라, 즉 ‘하느님을 낳은자’ 라는 용어는 단성론자들에 의해 이교의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 ‘하느님의 어머니’ 라는 용어에 의해 대치되어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되어지게 되었다. 세상에 발표된 그 단어는 마리아의 기능이 생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인격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데 다이파라 보다 더 좋은 용어였다. 그것은 모든 충실한 자들의 영신적 어머니인 마리아의 개념을 가능하게 한다.
교부들의 신학은 마리아를 주님의 동정 어머니로 이해하였다. 그 동정성은 우선 출산전의 동정이다.(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유스티노) 또한 에페소 공의회 이전에는 전체적으로 일치된 개념이 없었던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이야기 한다. 이것은 떼르뚤리아노, 오리게네스, 또는 제롬등에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이레네오와 사도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 니싸의 그레고리오에 의해 뒷바침되어 진다. 마리아의 출산전 동정과 출산후의 동정은 오리게네스와 알렉산드리아의 바오로 1세와 니싸의 그레고리오, 힐라리우스, 제롬 등이 가르치고 있다. 바실리오는 신앙에 거스르지 않는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는 요한 크리소스토모, 에프렘,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노 등이 있다.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이러한 확신은 그녀의 영원한 동정성의 믿음으로 발전하였다. 4세기부터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은 가끔씩 언급되었다. 7세기 이후에(649년 라떼란 종교회의), “성모님은 출산전 그리고 출산이후에도 동정이시다” 는 이 신조는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마리아와 에바”의 반대 주제는 원시 복음으로 유래하여, 유스티노에 의해 발전되었고, 이레네오에 의해 보다 발전하여,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것은 오래동안 신앙 안에서 마리아론의 기본적인 사상이 된다. 에바의 불신과 불순종은 파멸을 가져왔으나, 마리아의 신앙과 순종은 구원을 가지고 왔다. 이레네오와 히뽈리뚜스 그리고 특히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발전된 또 다른 주재는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과 교회의 역할을 비교하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는 말씀을 전하는 역할에 의해 그리고 또한 세례를 베푸는 역할에 의해 신앙인들의 어머니로 나타난다. 마리아는 교회의 머리를 낳으셨다. 마리아의 이러한 신원은 의인화된 교회의 많은 특징들을 시사해 준다. 루까 2,48과 참으로 부정적인 선언들(알렉산드리아의 시릴로), 그리고 마리아의 무죄함에 의해 생기는 마리아의 신성함에 대한 어떠한 불확실성들은 뻴라지우스와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주제는 곧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동방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상이 있었는데, 크레타의 안드레아와 다바스커스의 요한에 의해 나타난다. 아무도 표현할수 없는 무염시태에 대한 증언은 약 1000년경에 서방에서 발견된다. 열렬한 마리아 공경가인 클라이르바욱스의 성 베르나르도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도 미심쩍게 남아있었다. 신학자들은 구원의 보편성과 마리아의 무염시태의 발전된 사상을 조화시킬수 없었다. 둔스 스코뚜스와 윌리엄 웨어(1300)의 논쟁에서 이 개념은 마리아는 나머지 인류가 원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결과인 예수님의 구원의 덕에 의해 원죄로부터 물들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으로 발전되었다. 이 관점으로 마리아는 원죄교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적인 특별한 섭리에 의해 그것은 실제적으로 그녀안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마리아 역시 구원이 되었으나 그러나 그것은 매우 특별한 방식이였다. 교황 식스토 5세는 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의 일반적인 확신을 공인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반대들을 금하였고, (이교도의 누명을 쓰는 ?) 이러한 신비를 지지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제 5회기의 ‘원죄에 관한 교의적 선언’은 공의회의 가르침이 원죄의 보편성에 대한 공의회의 가르침 안에 마리아가 포함된다는 것은 공의회의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19세기에 마리아의 무염시태의 교리는 완전하게 형성되었는데 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도그마로서 선포되었다. 무염시태는 마리아의 모든 영적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전승의 교의에 따르면, 마리아는 평생 죄에물들지 않고 초자연적인 완전함의 선물을 허락받았다. 그 의미는 그녀가 하느님께 드린 그녀의 봉헌의 완전성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든 사람의 결단을 앞어가는 자연스러운 감정조차도 보존할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그녀가 당해야 했던 고통과 그녀의 죽음의 진실이였다. 마리아의 죽음은 가끔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그녀의 삶이 순수히 동화됨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의 죽음이 병이나, 늙음에 의한 결과와 같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교부시대 이후 신앙의 발전에 있어, 마리아의 신적모성에 대한 사상은 마리아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에 참여에 의해 완전하게 되었다. 그녀의 구원의 역할은 바로 여기서 고찰되어진다. 구세주의(redepmptor 라, redeemer 영) 어머니, 마리아 자신은 9세기경 부터 Redemptrix라 불리웠다. 이 용어는 15세기에 Co-Redemptrix(공동 구속자)로 바뀌어 진다. 17, 18세기에 마리아론은 충심과 신학적 논증을 통하여 강하게 발전된다. “찬미 없이는 영광도 없다.” 교부들의 문헌에서 찾은 마리아론은 J.H. Newman 과 M.J. Scheeben 에 의해 소개 되었다. 가장 중심적인 문제로서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 문제는 교회와 마리아의 관계의 문제로 구체화 되었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님의 육체가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교의를 선포하였다.
만일 우리가 우리 사고가 미치지 않는 문제는 접어두고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의 신학 안에서, 교회가 권위있게 받아들인 교회 신조의 점차적인 발전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마리아는 메시아 예수님을 성령을 통하여 잉태하셨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참된 어머니이며 동시에 참된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도 그녀는 동정으로 남아 있다. 3세기 경에, 성부의 교회와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신조는 예수님의 출산때 마리아에게는 산고도 없었고, 육체적 손상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그마로 간주 될 순 없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그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고 있다. 일반적인 출산과 같이 필연적으로 동정성의 손상을 수반하는지 않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마리아의 출산이 일반적인 출산의 경우와 같이 앞선 성적 결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동정성은 만족스럽게 해명되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 교회는 어떠한 선언도 하지 않았다. 마리아의 출산은 비록 출산때의 동정성의 본성을 온전히 나타내보이기는 불가능하다고 할 지라도 완전히 인간적인 것이고, 인격적인 행동이며, 마리아모성의 은총에 의한 굳게 결심한 온전한 작용이다. 요약해서, 마리아는 남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식의 원리 없이 성령에 의해 예수님을 잉태하였다. 그것은 마리아가 당신의 티없으심에 대한 침해없이 낳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가톨릭 교회 불변의 가르침이다. 비록 그 주제를 외형적으로 정의할 수 없더라해도 그리스론 정식에 의한 교회 무류성 선언이다.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은 확실히 신앙의 한 부분이며, 교회의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어머니로서의 하느님의 선택은 그녀가 원죄를 보호받으며,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가지고 왔다. 마리아와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에 의해 영혼과 육신이 하늘로 불려가는 승천을 가지고 왔다. 즉 말하자면 그리스도와의 그러한 일치는 그녀 육신의 변모를 이해하게 한다. 성서에는 이러한 결과에 대한 표면적인 증언은 없다. 교부들의 증언은 6세기 경에 시작된다. 그러나 성서의 증언에 의한 마리아의 모습은 부활한 주님과 가장 친밀하게 일치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녀의 육신의 변모는 그녀의 일생동안 끊임없이 따르려 했던 그의 아들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 최고의 위치가 되게 한다. 이러한 마리아의 닮은은 그녀를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연결시켜주며, 그녀의 전존재에 스며든다. 그러므로 그녀는 비오 12세의 말대로 “하늘의 여왕”이 되었다. 신화로부터 나왔으나 신화적인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닌 이러한 명칭은 하느님 섭리와 구원의 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매우 높은 위치를 말해준다. 육체와 영혼의 관계, 지복직관, 그리고 죽은자들의 부활과 같은 그러한 중요한 신학적인 많은 문제들은 마리아 도그마 안에 포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