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리아 중재성과 교회일치
트리엔트 공희회 이후 가톨릭 신학이 논쟁적인 응답을 해야 할 필요성은 마리아 신학이 아니라 ‘은총’(恩寵, gratia)에 대한 문제였다. 16세기 서방 교회가 분열된 이후 수세기 동안 가톨릭과 개신교는 피조물이자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의화되어 구원될 수 있는가 하는 의화론(義化論)을 둘러싸고 신학적으로 팽팽히 맞서 왔다. 이러한 교파 신학적 논쟁 안에서 마리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은 상이하면서도 상관된 일련의 원인들을 가지고 있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이것은 절대로 학자들 간의 단순한 신학적 견해 차이가 아니었으며, 현재도 그렇다.1)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처음부터 반(反)마리아적 입장을 견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결정된 마리아의 ‘신적모성’ (Theotokos)교리를인정하였고,마리아전구의중재성(mediatrix intercessionis)을고백하였다.그러나마리아를중재자라고부르지는않고전구자(Deprecator)라고 불렀다.2) 중재자는 자기 지위나 공로에 의해 능력을 가지기 때문에 인간은 이 능력에 의지함으로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전구자는 중재자와는 달리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그분의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을 돕는다. 그는 교회의 전통에 따라 변호자 마리아, 유순하신 하느님의 모친에게 전구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육화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성이 중심이기에 이 사실을 약화시키는 과장된 마리아 공경을 비판하였다. 모든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유일 중개에만 수렴되어야 하는데 당시의 마리아 공경은 마리아의 중재성을 지나치게 과장하였다.3)
쯔빙글리(Huldrich Zwingli, 1484-1531)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중세의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을 따랐다. 마리아가 천주의 모친이시며, 평생 동정녀이심을 명백히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의 중재성에 대해서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마리아를 중재자로 부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유일한 중개자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마리아와 성인들을 공경하고 전구자인 마리아에게 간청은 하지만 마리아가 중재자가 될 수는 없다고 하였다.4)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마리아에 대한 정당한 공경과 신적모성은 인정했지만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에서 성인들의 전구와 성상에 대한 공경도 거부됨으로써 마리아의 중재성과 전구도 거부되었다. 이로써 개혁교회는 루터교회보다 훨씬 더 마리아와 멀어지게 되었다.5)
초기 개혁자들은 마리아 중재성 안에서 대중 신심으로 널리 행해진 남용과 거짓 사상들을 처음부터 명백히 배척했다. 그 결과 마리아를 포함한 성인들에 대한 공경 자체를 배척하기에 이르렀다.
개혁 초기에는 마리아 신학이 가톨릭과 개신교를 갈라놓는 원인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신교 측에서는 마리아의 공경을 삼가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마리아에 대한 전구와 성인들에 대한 전구도 사라졌다. 개신교는 오늘날까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교리 내지 신심 행위는 성서를 통해서 정당성을 지닌다고 보고 마리아론과 마리아 공경도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에 따라 판단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또한 가톨릭의 마리아론이 마리아를 자립적으로 위대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있음을 오류로 규정하면서 ‘공동구속자’(Coredemptrix), ‘은총의 중재자’(Mediatrix gratiarum)와 같은 칭호들이 유일한 구세주요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할을 약화시킨다고 보아 이를 거부하고 있다.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