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모친 마리아

 

II.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




    1. 에페소 공의회 :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




    가. 하느님의 모친 칭호에 대한 이의 제기 : 네스토리우스




    하느님의 모친(Theotokos) 칭호는 4세기초에 그리스도교 문헌에 나타나는데, 특히 아리우스의 가르침에 첫 번째로 반론을 제기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델(Alexander)에게서1)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칭호는 특히 까빠도치아 사람들에게 확장되어 나가서 4세기말에는 일상화된다. 428년 네스토리우스(Nestorius)가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 그는 이미 전통적인 칭호에 대해 공격한 것이다.


    이 역설적인 칭호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칭호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원초적인 호칭에 대한 신앙 통찰의 열매이다. 기본적으로, 이 칭호는 첫 번째 긍정 이상의 것을 전혀 말하지 않는다 ; 형태로는, 결과적으로 거기에 실재로 내재했던 내용을 표명한다. 그러나 하나의 정식화에서 또 다른 정식화에 이르는 과정이 삼단논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정식화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서약하는 모든 것을 실재화시키는 신앙 체험의 열매이다. 예수가 개인적인 칭호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결국 하느님의 모친이다. 그녀는 물론 예수 신성의 모친은 아니다 : 하느님으로서의 하느님은 가령 모친을 가질 수 없다. 마리아는 육화된 말씀의 모친이다 : 그녀는 탄생을 통해 그분에게 인간성을 제공한 자이다. 그렇지만 육체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마리아 안에서 태어난 그분은 마리아의 아들이면서 하느님의 아들이시기도 하다. 비록 말가리다가 야고버에게 육체적으로밖에 출생을 제공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말가리다가 야고버의 모친이라고 말하는 보편적인 인간 체험과 완전히 일치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야고버라고 불리는 한 사람의 육체를 출산하였기 때문이다.


    네스토리우스는 그의 첫 설교에서 특히 그리스도의 인격의 단일성 안에서 그의 신성과 인성 사이에 ‘속성 교환의 원칙’(communication des idiomes)2)이나 고유성의 친교를 문제 삼는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인격은 여느 인격들 중 하나이지만 다른 모든 인격을 조건 지우는 인격이다. 결국 예수의 생명과 수난과 죽음 사건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이처럼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문제에 직면한다. 교회의 공통된 전통에 반대하여, 네스토리우스는 성서 언어에 근거하여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리아로부터 예수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 예수 사이에 실재적인 분리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428년에 스캔들을 야기한 사건이며 이는 431년의 에페소 공의회3)를 열게 한다. 따라서 제기된 문제는 우선적으로 그리스도론적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모친(Theotokos) 칭호를 둘러싼 논쟁이 보여주듯이, 문제는 아울러 마리아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 칭호는 네스토리우스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가늠하는 판단기준을 상징하는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네스토리우스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아주 분명하다 :




    거룩한 성서의 모든 곳에서 주님의 경륜에 대한 언급을 할 때, 거기 나타난 탄생과 수난은 신성의 탄생과 수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연유한 탄생과 수난이다. 따라서 거룩한 동정녀는 그리스도의 모친이란 더욱 분명한 칭호로 불리어져야지 하느님의 모친으로 불리어져서는 아니 된다. 다음 복음 말씀에 귀기울여 보아라 : ‘다윗의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책’(마태 1,1). 그러므로 하느님이신 말씀은 다윗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4)




    네스토리우스가 신성과 인성의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할 때는 그의 견해가 옳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그가 그리스도와 말씀과 하느님에 대한 구체적인 용어로 넘어갈 때 그의 견해는 틀렸다. 이는 여기서 문제되는 개념 사용에서의 혼란일 뿐만 아니라 가현주의의 형태로 육화의 역설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네스토리우스가 거부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양육하는 것, 그분을 점진적인 성장과 수난의 순간에 두려움에 동참하게 하는 것, 그분을 어떤 천사의 도움의 필요에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말한다 ; “나는 할례와 희생 제물과 땀과 배고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5)


   


    나. 에페소 공의회의 선언 : ‘하느님의 모친’(Theotokos) 마리아  




    우리는 에페소 공의회가 엄격한 의미에서 어떤 정의를 내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공의회는 특별히 확인된 네스토리우스에게 보낸 치릴루스의 둘째 편지를 선포한 것에 불과하다 :




    말씀이 육이 되셨으며, 이는 이 사실 이외에 다른 것이 전혀 아니다 : 말씀은 우리와 똑같이 전적으로 피와 살에 참여하셨고, 우리 육으로 당신 자신의 육을 이루셨으며, 그분은 한 여인에게서 사람이 되셨다. 이는 하느님이신 사실과 하느님으로부터 낳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거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이셨던 그대로를 견지하시면서 육을 받아들이심으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곳곳에서 선포되는 분명한 신앙의 가르침이다 ; 이것이 우리가 교부들에 의해 생각된 것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 이처럼 그들은 대담하게 거룩한 동정녀를 하느님의 모친이라고 호명한다. 이는 말씀의 본성이나 신성이 거룩한 동정녀로부터 자기 존재의 시작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분별력 있는 영혼으로 생기를 얻은 거룩한 몸이 그녀에게서 낳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말씀은 위격(hypostasis)에 따라 그 몸에 합치되었으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말씀이 육을 따라 낳음을 받았다고 말한다.6)




    이 칭호에 대한 치릴루스의 해설 역시 투명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를 그리스도교의 이방인화의 한 형태로 보거나, 풍요의 여신으로 이름난 아르테미스(Artemis)에 대한 경신례의 영향으로 보면 전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만다. 더욱이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칭호가 공식적으로 정의되지 않고 오히려 선포되고 확인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반대로 분명한 것은, 이 칭호에 부여된 새로운 강조가 신자들로 하여금 더욱 더 힘있게 마리아의 위대함과 그녀의 아들에 대한 역할을 고려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가나에서처럼 에페소에서 ‘예수의 어머니가 거기 있었다’(요한 2,1). 육화에 있어서 말씀의 ‘비움’(kenosis) 스캔들이 마리아의 품을 통하여 통과하였으며 마리아에게는 영광의 축복으로 되돌아온다. 에페소에서 복된 마니피깟의 동정녀를 선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마리아에 대한 고유 전례 축일 시기가 발전되는 것이 에페소 공의회 때부터라는 사실 또한 괄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교회는 마리아를 그리스도론적인 축일의 틀 안에서 기념하였다. 이 공의회 바로 직전 사람들은 12월 26일 ‘동정녀 기념’을 성탄 팔부 기간 안에서 거행하였다7). 431년 이후 하느님의 모친에게 봉헌된 8월 15일의 축일이 예루살렘에서 나타난다8). 그러나 순교자들의 기념을 하늘에 오른 그들의 탄생일(dies natalis)에 거행하는 것이 관습인 것처럼, 몽소 승천 축일로 설정되기 전에 8월 15일의 축일은 점진적으로 하느님 안에서의 동정녀의 ‘통과’ 축일이나 ‘죽음’ 축일의 의미를 취하게 된다. 그 원천이 ‘야고버의 원복음’에서 발견되는 9월 8일의 마리아 탄생 축일은 6세기에 확장되어 나간다. 이 축일은 7세기말에 논리적으로 9개월 이전에 설정되어 마리아의 잉태 축일(12월 9일)을 끌어들인다. 11월 21일 마리아의 봉헌 축일은 오늘날과 같은 날로 나타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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