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현대 신학의 관심
‘천주의 모친’(Theotokos) 칭호는 동방 정교회의 마리아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마리아의 대표적인 칭호이기도 하다.1) 니씨오티스(Nikos Nissiotis)는 ‘천주의 모친’ 칭호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그리스도교 초기 시대의 오류에 다시 빠지게 된다고 한다 : “천주의 모친(Theotokos) 용어만을 사용하기를 촉구한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의 주장은 중요하며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 즉 신적이고 인간적인 두 본성의 위격적 일치의 결과이다. 우리는 이 신비가 처음부터 충분히 올바르게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신앙으로 선언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방향으로 빗나갈 수 있는데 그것은 두 본성을 분리하는 이중 본성론(dyophysitism),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오직 하나의 본성만을 인정하는 단성론(monophysitism), 가상의 사상을 적용하여 사건 자체는 받아들이지 않는 가현주의(docetism)이다. 이러한 신학의 주장 배후에는 로고스(Logos)의 육화에 대한 신앙의 확고하고 분명한 확신이 있다.”2) 옛 에페소 공의회의 선언에 대한 신뢰가 그리스도론의 정통교리를 보증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Theotokos 용어를 받아들이는 것은 임의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Theotokos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올바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Theotokos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올바른 마리아 공경의 원칙을 혼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니씨오티스는 Theotokos 주제를 중심으로 마리아와 성령과의 관계, 마리아와 교회와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조명하며 특히 마리아 안에서 구원된 인간, 새 인간의 전형을 본다. 이때 그는 오래 전부터 마리아에게 적용되었던 용어인 Panagia(지극히 거룩한)를 함께 강조한다. 이 용어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마리아 신학 역시 동방 정교회의 마리아 신학의 특징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마리아 신학이 현대 그리스도교 인간학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강조하면서 ‘마리아론적 인간학’(mariological anthropology)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3)
고립된 마리아론을 신학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크게 기여한 칼 라너(Karl Rahner)4)는 마리아의 ‘천주의 모친’(Theotokos) 칭호를 그리스도론적 교의와 연결시키면서 마리아에 대한 다른 교리들을 푸는 열쇠를 이 칭호로 본다 : “우리가 마리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로부터이다. 속량된 세상을 하느님의 생명에로 들어 높이기 위하여 아담의 육체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가톨릭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가톨릭의 마리아 교의를 이해할 수 없다. 마리아 교의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론적 교의가 실재로 중시되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문제시되거나 신화적인 표현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표지이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접근을 느낀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아니, 베들레헴에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분은 전적으로 동시에 그리고 분리됨이 없이 참 인간이시며 아버지와 한 본체이신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실재로 그리고 순수히 이를 고백하는 사람과 함께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다른 마리아 교의들에 대해서도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5) 칼 라너는 그리스도의 육화 안에서 마리아의 신학적인 기능을 분명히 한다. 그에게 있어서 “마리아는 다만 혈육의 관계상으로가 아니라 인격적인 의미에서 어머니이고, 세상의 구원울 신앙을 가지고 받아들인 분으로서 역시 구원과 구원의 결실과 구원의 수용이 실현된 가장 높고 가장 근본적인 경우이다.”6)
Theotokos 용어가 자의적으로 ‘하느님을 세상에 낳으신 분’이라는 의미를 지닐 때, 쟝 갈로(Jean Galot)는 이러한 생물학적인 의미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학적인 모든 비중을 고려해서 ‘어머니’라는 칭호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모성이란 한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고 세상에 출산하는 생성행위만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생성에 근거해서 인격 대 인격의 항구적인 관계를 구성한다. 한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라는 인격의 어머니이다.”7)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의 어머니이다. 마리아는 ‘오직 한 분이시며 동일한 분이신’ 참 인간이시며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다.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는 인간 예수와의 관계가 먼저이고 그 다음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첨부되는 관계가 아니다. 마리아의 인격과 아들의 전 인격의 ‘오직 하나이며 유일한’ 관계가 설정된다. 그래서 또한 아들이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 구원의 극치를 보고 그분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꼴라(M. J. Nicolas)에 의하면 마리아는 순전히 육체적으로나 물리적으로만 하느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신앙과 동의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고 한다.8) 교부들은 마리아가 ‘태에서 보다 마음으로 미리 잉태했다’(concepit prius mente quam ventre)고 보았다. 니꼴라는 아우구스띠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를 강조한다 : ‘마리아는 육체의 사욕 욕정에서 잉태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의 열정 안에서 잉태한 것이다.’ 이러한 열정의 모성은 아들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심화되어간다.
뮐러(A. Müller)는 구원에 대한 성서적 계시에 근거해서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초월 사건에 대한 인간 참여의 모델로 본다 : “신적 모성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대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실재적인 참여로 드러나며 구원 사업의 구성원으로서 가장 차원 높은 협조로 드러난다.”9)
마리아 신학은 독자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고립된 신학이 아니다. 다른 모든 신학과의 연대 안에서 그 풍부한 의미가 드러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신학자들은 마리아론(mariologia)이라는 표현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표현 자체가 고립된 신학의 분야를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천주의 모친’(Theotokos) 칭호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도 발전된 다른 신학과의 유대가 필요하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머니 혹은 모성’에 대한 문화적이거나 인간학적인 의미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