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성모신심

 

올바른 성모신심


흔히 19세기 이후를 성모발현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전에도 ㄱ4ㅘ달루페 성모 발현(1531년)이나 말가리다 수녀에게 예수성심의 발현(1673년) 등이 있었지만 19세기 들어 성모발현이 잦아졌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발현은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를 말한다.


이에 본보는 몇몇 성모 발현이 교회로부터 공인 받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나아가 사계시(私啓示)에 접근하는 교회의 태도, 성모 발현이 갖는 의미 등을 조명해 봄으로서 올바른 성모신심은 어떤 것인가를 모색해 보았다.




루르드 성모 발현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1858년)에 대해 교구 조교와 본당 신부의 태도는 소극적이거나 적의를 품을 정도였다. 당시 경찰은 베르나데트를 죄인처럼 다루었고 그의 부친을 협박했다. 그러나 여론에 밀린 주교는 신학자 과학자 의학자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만들었고 3년 이상 이 사건을 정밀하게 조사시킨 결과 1862년 공인할 수밖에 없었다.




파티마 성모 발현


포르투갈 파티마 성모 발현(1917년)에 대한 정식 조사가 시작된 것은 1922년 5월이다. 첫 발현 후 5년만에 조사위원회가 구성된 셈이다.


레아야르의 요셉 실바 주교는 7년간에 걸친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6개월 동안 연밀히 검토한 뒤 1930년 10월 13일 성모 발현 13년만에 공인했다. 당시 교황 비오 11세는 보고 서류를 직접 읽고 같은 해 10월 1일 파티마 순례자에게 특별 은사를 내려주기도 했다.




바뇌 성모 발현


벨기에 바뇌 성모 발현(1933년)에 대한 교회 당국의 태도 역시 소극적이었다. 레애즈 교구장 겔호프 주교는 가톨릭계 신문이나 성직자에게 성모 발혀넹 대해 침묵을 지키도록 주의를 주면서 조심스럽게 의사와 신학자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구성, 1942년과 1847년 두 차례에 걸쳐 교회법에 의거한 면밀한 조사를 지시했다.


겔호프 주교는 1차로 1942년 바뇌 성모에 대한 특별한 공경을 공인하고 1949년 8월 22일 또다시 이 발현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므로 믿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이 사실은 교황청에 보고됐으며 후에 교황처에서도 공식 인정하게 됐다.


이밖에도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 발현(1531년)이 25년만에 공식 인정을 받는 등 몇몇 사례들이 교회의 공인을 받았으나 사실무근, 신빙성 없음, 거짓 등으로 판명돼 교구장이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조사 중에 있는 경우도 많다. 1947년부터 76년까지 이탈리아 몬티키아라 성모 발현, 1961년 스페인 가라반달 성모 발현 등이 아직 공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발현이나 예언 기적 등과 같은 현상을 이렇듯 조심스럽게 다르면서 ‘정통 교리나 윤리 또는 신심에 어긋남이 없다’라고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신자들이 ‘믿을 만한 근거가 있고 믿어도 좋다’는 사계시의 비중을 ‘믿어야 한다’는 공계시와 동일시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계시와 관련된 기적이나 기타 신비현상에 지나친 관심이나 호기심을 가져 갖가지 오해나 미신, 오류나 기만에 빠질까 해서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계시를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고 실제로 그것이 신앙생활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경우라면 신자들은 계시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실천적 교훈을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런 사계시는 왜 19세기 들어 자주 주어졌을까? 여러 곳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시고 메시지를 남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한 사실은 대부분의 발현 시점이 전쟁이나 혁명 등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웠으며 이에 따라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잃고 방황하던 때라는 점이다.


프랑스에서의 1830년(기적의 패), 1846년(라 살레트), 1858년(루르드) 발현 당시는 보수세력과 자유즈의 세력 그리고 급진사회주의 세력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혼란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으며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교회가 약탈되거나 파괴되었다. 1917년 파티마 발현시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사상 유례없는 대살륙전이 곳곳에서 전개됐고 이해 10월에는 모스크바에서 「붉은 세력」들이 볼세비키혁명에 성공하고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는 사상 면에서 볼 때 계몽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유물론 그리고 공산주의가 판을 치던 때였다. 사람들은 종교를 중세의 유물정도로 치부해버렸고 과학이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으며 심지어 신자들조차 이런 사조를 따라갈 정도로 신앙은 위기에 처해졌다.


이런 판국에 공산주의자들도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치부하며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 성모발현이 이루어진 것이다. 신앙을 잃은 시대, 하느님을 등지고 사는 세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시점에서의 발현이나 사적계시, 기적 등은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비상한 은사이며, 불신자들과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잃었던 신앙을 일깨우기 위해 베푸시는 과분한 은혜라고 영성가들은 말한다.


따라서 이 혼란한 시대에 있어 성모님의 발현은 단순히 당신 자신을 드러내려고 오시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의 모친이요, 교회의 능하신 어머니로서 당신 아드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우리 신앙인은 발현 그 자체보다는 그에 따른 메시지에 유의하고 이의 실천에 전력해야 한다. 메시지는 어떤 발현에서나 항상 회개와 기도를 그 중심 내용으로 삼고 있음도 명심해야겠다.


19990523 가톨릭신문 신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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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성모신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올바른 성모신심

    흔히 19세기 이후를 성모발현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전에도 ㄱ4ㅘ달루페 성모 발현(1531년)이나 말가리다 수녀에게 예수성심의 발현(1673년) 등이 있었지만 19세기 들어 성모발현이 잦아졌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발현은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를 말한다.

    이에 본보는 몇몇 성모 발현이 교회로부터 공인 받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나아가 사계시(私啓示)에 접근하는 교회의 태도, 성모 발현이 갖는 의미 등을 조명해 봄으로서 올바른 성모신심은 어떤 것인가를 모색해 보았다.


    루르드 성모 발현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1858년)에 대해 교구 조교와 본당 신부의 태도는 소극적이거나 적의를 품을 정도였다. 당시 경찰은 베르나데트를 죄인처럼 다루었고 그의 부친을 협박했다. 그러나 여론에 밀린 주교는 신학자 과학자 의학자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만들었고 3년 이상 이 사건을 정밀하게 조사시킨 결과 1862년 공인할 수밖에 없었다.


    파티마 성모 발현

    포르투갈 파티마 성모 발현(1917년)에 대한 정식 조사가 시작된 것은 1922년 5월이다. 첫 발현 후 5년만에 조사위원회가 구성된 셈이다.

    레아야르의 요셉 실바 주교는 7년간에 걸친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6개월 동안 연밀히 검토한 뒤 1930년 10월 13일 성모 발현 13년만에 공인했다. 당시 교황 비오 11세는 보고 서류를 직접 읽고 같은 해 10월 1일 파티마 순례자에게 특별 은사를 내려주기도 했다.


    바뇌 성모 발현

    벨기에 바뇌 성모 발현(1933년)에 대한 교회 당국의 태도 역시 소극적이었다. 레애즈 교구장 겔호프 주교는 가톨릭계 신문이나 성직자에게 성모 발혀넹 대해 침묵을 지키도록 주의를 주면서 조심스럽게 의사와 신학자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구성, 1942년과 1847년 두 차례에 걸쳐 교회법에 의거한 면밀한 조사를 지시했다.

    겔호프 주교는 1차로 1942년 바뇌 성모에 대한 특별한 공경을 공인하고 1949년 8월 22일 또다시 이 발현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므로 믿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이 사실은 교황청에 보고됐으며 후에 교황처에서도 공식 인정하게 됐다.

    이밖에도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 발현(1531년)이 25년만에 공식 인정을 받는 등 몇몇 사례들이 교회의 공인을 받았으나 사실무근, 신빙성 없음, 거짓 등으로 판명돼 교구장이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조사 중에 있는 경우도 많다. 1947년부터 76년까지 이탈리아 몬티키아라 성모 발현, 1961년 스페인 가라반달 성모 발현 등이 아직 공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발현이나 예언 기적 등과 같은 현상을 이렇듯 조심스럽게 다르면서 ‘정통 교리나 윤리 또는 신심에 어긋남이 없다’라고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신자들이 ‘믿을 만한 근거가 있고 믿어도 좋다’는 사계시의 비중을 ‘믿어야 한다’는 공계시와 동일시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계시와 관련된 기적이나 기타 신비현상에 지나친 관심이나 호기심을 가져 갖가지 오해나 미신, 오류나 기만에 빠질까 해서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계시를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고 실제로 그것이 신앙생활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경우라면 신자들은 계시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실천적 교훈을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런 사계시는 왜 19세기 들어 자주 주어졌을까? 여러 곳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시고 메시지를 남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한 사실은 대부분의 발현 시점이 전쟁이나 혁명 등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웠으며 이에 따라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잃고 방황하던 때라는 점이다.

    프랑스에서의 1830년(기적의 패), 1846년(라 살레트), 1858년(루르드) 발현 당시는 보수세력과 자유즈의 세력 그리고 급진사회주의 세력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혼란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으며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교회가 약탈되거나 파괴되었다. 1917년 파티마 발현시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사상 유례없는 대살륙전이 곳곳에서 전개됐고 이해 10월에는 모스크바에서 「붉은 세력」들이 볼세비키혁명에 성공하고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는 사상 면에서 볼 때 계몽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유물론 그리고 공산주의가 판을 치던 때였다. 사람들은 종교를 중세의 유물정도로 치부해버렸고 과학이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으며 심지어 신자들조차 이런 사조를 따라갈 정도로 신앙은 위기에 처해졌다.

    이런 판국에 공산주의자들도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치부하며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 성모발현이 이루어진 것이다. 신앙을 잃은 시대, 하느님을 등지고 사는 세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시점에서의 발현이나 사적계시, 기적 등은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비상한 은사이며, 불신자들과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잃었던 신앙을 일깨우기 위해 베푸시는 과분한 은혜라고 영성가들은 말한다.

    따라서 이 혼란한 시대에 있어 성모님의 발현은 단순히 당신 자신을 드러내려고 오시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의 모친이요, 교회의 능하신 어머니로서 당신 아드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우리 신앙인은 발현 그 자체보다는 그에 따른 메시지에 유의하고 이의 실천에 전력해야 한다. 메시지는 어떤 발현에서나 항상 회개와 기도를 그 중심 내용으로 삼고 있음도 명심해야겠다.

    19990523 가톨릭신문 신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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