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교의사적 전개(1)

 

3.  교의사적 전개




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참회의 형태는 상당히 다양하다. 거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공식적인 참회 예식 외에도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훈계와 경고, 갈라진 당파의 합치, 성찬례 전에 이루어지는 공동의 죄 고백, 개별적인 용서, 참회하는 이의 기도, 공동체의 중재 기도, 단식, 자선, “온갖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 (잠언 10,12; 1 베드 4,8; 2 클레 16,4)등이 있다.


교의사적 고찰에서는 참회에 대한 역사 중에서 단지 한 부문만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다. 즉 스콜라 신학이래로 “참회의 성사”라고 일컫는 교회 공식적인 참회 형식이다. 이에 대한 역사는 상당히 복잡한데, 여기서는 단지 중요한 단계만을 보고자 한다. 가장 큰 변화는 고대교회에서 실천하였던 일생에 단 한번만 가능한 참회에서 중세 초기에 반복할 수 있는 참회 형태로 옮아간 것이다.




3.1.     일회적이고 공개적인 파문 방식




3.1.1.    참회 절차


고대교회는 마태 18,18과 1고린 5에 근거한 참회 방식을 실천하였다: 살인, 간음 혹은 배교의 중대한 죄를 범한 사람은 공개적으로 성찬의 공동체에서 제외되는데, 그는 엄격한 참회 실천으로 자신을 정화하는 기간을 갖은 다음에 장엄한 예식을 통해서 다시 교회에 받아 들여졌다.




참회 방식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1) 파문: 참회자가 죄를 고백한 다음 주교는 그에게 보속을 부여한다. 전체 공동체가 참석한 공개적인 참회 예식에서 안수, 참회복 착복 그리고 성찬의 공동체에서의 제외를 표시하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서 참회자의 신분이 된다. 공동체는 큰 슬픔을 표시하면서 이런 과정을 함께 한다. (2) 참회 기간: 통상적으로 몇년씩 지속되는 참회 기간동안 참회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보속을 완수해야 한다. 보속에 속하는 것으로는 예를 들어서 단식, 자선, 사회적 활동에 참여, 특별한 기도 실천과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공적인 직무, 결혼, 그리고 자주 부부 관계의 포기(이는 그 당시에 널리 퍼진 성에 대한 두려움, 즉 성을 악의 세력이 침입하려는 문으로 간주하는 생각과 관계가 있다)가 보속으로 요구되었다. 교회 공동체의 삶에 참회자는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미사에 참석은 하지만 성찬 예식이 시작되면 자리를 떠나거나, 참회자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로 가야만 했다. 공동체는 그들의 참회 노력을 중재의 기도로서 지원하였다. (3) 화해: 참회의 기간 마지막에 참회자들은 장엄한 공동체 전례를 통해서 (보통은 성 목요일에) 다시 성찬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 화해의 예절은 영성체 예식으로 끝맺는다. 그러나 한번 참회자였던 사람에게 부여된 금령들은 일생동안 지속되는데,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 다시 받아들여진 다음에도 “이등급 신자”로 머물게 된다.




이런 방식 때문에 고대교회의 참회는 파문 방식의 참회라고 일컫는다. 이 참회는 공동체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후기의 참회 형태와 구분되는 가장 뚜렷한 표시는 일회성에 있다: 이런 방식의 참회는 일생에 단 한번만 허락된다. 누가 이런 참회 이후에 다시 중한 죄를 범하면, 그를 위해서는 단지 하느님의 자비에 그를 맡기는 공동체의 중재 기도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하면 보통 그에게 노자성체가 허락되었다.




3.1.2.  신학적인 요점들


고대교회의 참회신학은 참회 형태에서 잘 드러난다. 두가지 요소가 죄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한다. 즉 참회자 개인의 노력인 보속과 공동체와의 화해이다.


보속은 죄의 중대함에 상응한다. 왜냐하면 너무 가벼운 보속이나 참회 기간의 단축은 참회자를 도와주지 못하고, 그에게서 구원에 필요한 과정을 빼앗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방교회의 신학자들은 이것을 주로 치유적인 관점에서 생각했는데, 즉 보속은 병자에게서 치유의 과정이 필수적인 것처럼 참회자에게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서방교회의 신학은 법률적으로 생각했다. 즉 참회자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보속은 행해져야하고, 죄지은 것은 보상되야 한다.


두번째의 요소는 공동체이다. 3세기 초부터 교회 직무자, 즉 주교에서 사죄권이 유보되었으나(히뽈리뚜스의 『사도전승』 3장 참조), 공동체도 능동적으로 참회 예식에 참여하였다. 공동체는 참회자의 노력을 지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참회자를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과의 화해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성사적 행동이다: 교회 공동체와 다시 화해함(pax cum ecclesia)으로써 참회자는 다시 하느님과의 평화(pax cum Deo)를 이룬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공동체와 일치를 이루고 계시고, 그래서 죄인의 용서도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하시기 때문이다.




3.2.     반복이 가능한 비밀 사죄 방식의 참회




3.2.1.   전개 과정


6세기까지는 고대교회의 일회적이고 공개적인 파문 방식의 참회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무거운 보속, 그리고 사죄 이후에도 지속되는 금령때문에 참회는 점점 더 늙은 나이나 죽음에 임박한 시간까지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원래는 아주 요구가 많고 엄격한 참회 계율은 비교적 가벼운 형태으로 변화되었고, 이것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참회의 성사는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특별한 회개의 노력에서 죽기 전에 받는 성사로 변하게 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391년 이후로 공개적 참회가 줄어드는 것이 나타난다. 그 대신에 점점 더 영적지도자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증가되었다. 그 영적지도자는 사제나 주교가 아니라 영성적으로 존경받는 수도자인 경우가 많았다.


6세기에 동방교회의 영향을 받은 에이레와 영국 교회 지역에서 의도적으로 지금까지의 공개적인 참회 실천을 변경하였다. 이제는 주교가 아니라 사제를 통해서 반복적인 사죄가 일년 중 어느날에도 가능하고, 대죄만이 아니라 소죄도 고백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과거처럼 무거운 보속이 부과되었으나 이것도 곧 변경되었다. 즉 헌금, 많은 기도, 편태 등으로 대치되었다. 이런 새로운 참회 형태(‘켈트식 참회’)는 에이레-스코트랜드 선교사들에 의해서 유럽대륙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처음에 교회 교도권은 이 새로운 형태의 참회를 “저주받아 마땅한 교만”이라고 배척하였다 (예를 들어서 589년 Toledo의 지역 공의회: PL 84,353). 나중에 칼롤링의 개혁 공의회는 적어도 옛 참회 형태를 타협을 통해서 보존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래서 개인적인 죄에는 개인적인 참회로, 공개적인 죄에는 공개적인 참회를 하라고 규정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참회 형태는 계속 전파되어서 마침낸 800년 경에는 일반화 되었다.






새로운 참회 형태는 (1) 반복성, (2)비밀 유지, 그리고 (3) 참회 기간을 점진적으로 없애 버린 것이 그 특징이다.


(1) 중대한 잘못을 범하더라도 계속 참회가 허락되었다. 또한 소죄도 이 참회에 포함되었다.


(2) 참회의 고백뿐만 아니라 누가 참회자인가라는 사실도 가능한 비밀로 유지되어야 한다. 비밀 유지라는 주제가 중요성을 지닌게 되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공동체 앞에서 실천되던 참회가 단지 사제에게만 알리는 비밀의 성사, “귀를 통한 고백성사”로 변화된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참회를 “사적(私的)인 참회”라고 일컬었다.


(3) 이 형태의 참회도 처음에는 고대교회의 공개적인 참회처럼 세 단계로 구분되었다. 사제 앞에서의 죄를 고백하고 나서 참회 기간을 갖고 마지막으로 사죄를 통해서 교회에 다시 받아 들여진다. 하지만 점차로 많은 참회자들이 참회 기간이 지난 후에 사제에게 다시 와서 사죄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비밀 유지라는 이유 때문에 사죄는 죄의 고백 이후 즉시 주어졌다. 그래서 죄의 고백, 사제의 사죄, (“보속”, satisfactio라고 일컫는) 참회의 순서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런 형태는 1000년 경에 일반화되었다.


이렇게 해서 고대교회의 공개적 파문 형태의 참회는 개인적 사죄 형태의 참회로 변화된다. 그리고 원래는 사제가 중재적인 기도 형식으로 죄의 용서를 하느님께 청하였으나,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사제가 참회자에게 용서를 선포하는 직설적인 사죄경의 형태(“나는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로 바뀌게 되었다.




3.2.2. 신학적 평가


1) 참회 형태의 변화는 신학적 이해의 변화와 맞물려 진행된다. 신약성서를 살펴보면 새로운 참회의 방식이 더 복음 정신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예수께서는 죄인에게 먼저 무조건 용서를 베푸시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신다. “나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가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요한 8,11). 또한 실제로 무조건적 용서는 회개, 즉 새로운 삶에로 이끄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세관장 자케오는 자신의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께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렵니다”(루가 19,8)고 말한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먼저 용서해주시고, 그 용서에 대한 대답으로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요구하신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 교회에서 보속의 실천 ― 죄의 용서의 순서보다는 죄의 용서―보속의 순서가 예수님의 정신에 더 합당하다고 하겠다.


2) 공개적인 참회에서 비밀의 참회로 옮겨가면서 공동체의 역할은 불분명해지고, 이에 비해 사제의 역할이 전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죄경이 중개적 기도 형식에서 직설적 형식으로 바뀌면서 사제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었다. 즉 참회자를 위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사제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사제로 바뀌었다.


3) 참회 과정에서 어느 것이 죄를 극복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인가하는 질문에 관해서는 중점이 여러번 변화되었다. 고대 교회에서는 중점이 죄인의 보속 실천과 공동체의 행동에 놓여있었지만, 중세 초기에는 죄의 고백이 강조되었다. 죄 고백 자체는 그에 따르는 수치심 때문에 보속으로 평가되었고, 그래서 참회 성사는 본질적으로 “고백성사”로 되었다. 초기 스콜라 신학(12세기)에서는 참회가 결정적인 요소였다. 통회는 참회자가 갖추어야 할 세가지 필요한 요소(통회, 고백, 보속)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는데, 통회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의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런데 중기 스콜라 신학(13세기)에서는 통회 안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사제의 사죄경(absolutio)과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이렇게 된 동기는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 결정한 고해성사의 의무 규정인데, 여기서 도구로써 사용된 개념들은 불완전한 통회(attritio)와 (죄의 용서에 필수적인) 완전한 통회(contritio)의 구분과 질료 형상론에서 나온 개념들인 질료―형상이다: 통회, 고백, 보속은 성사의 “질료”이고, 사죄경은 성사의 “형상”이다. 누가 불완전한 통회로 고해성사를 받으면 사죄경은 불완전한 통회를 완전한 통회로 바꾸는 효과를 내고, 이런 방식으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 고해성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참회자의 행동 하나만도, 사제의 사죄경만도 부족하고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그러나 누가 완전한 통회로 고해성사를 받는 경우에는 사죄경의 필요성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사죄경이 앞서 작용하여서 회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 시도된다. 이로써 고해성사의 효력과 완전한 통회를 근거로 하는 죄 사함을 관계를 확고히 하고자 한다.




둔스 스코투스(Johannes Duns Scotus, +1308)는 통회, 고백, 보속은 고해성사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단지 성사에 필요한 전제 조건일뿐이라고 주장할만큼 고해성사를 사제의 사죄 행동과 동일시하였다.


어떻게 교회적―성사적 과정과 하느님의 용서가 관련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고대교회와 중세 초기에는 하느님과의 화해는 교회와의 화해와 밀접히 연관되어있다는 확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확신에는 하느님의 자비는 교회적 참회의 가능성보다 더 크다는 의식도 함께하였다. 참회 이후에 다시 죄짓는 사람에게 두번째의 참회가 허락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자비에 그를 의탁하는 관습이 바로 이런 의식을 증명한다. 스콜라 신학은 (마태 16,19과 18,18에 근거해서) 사제에게 주어진 “열쇠 권한”을 언급하는데,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다: 초기 스콜라 신학은 하느님의 은총 홀로 죄를 용서한다는 데에서 출발하면서 “선포의 이론”를 발전시켰다: 성사적 사죄를 통해서 사제는 하느님에 의해서 이미 죄를 용서 받은 사람에게 그가 깨끗하고 다시 경신례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선포한다. 이에 대한 성서적 본보기는 병이 나은 문둥병자들이 깨끗하다고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사제들과 (마태 8,4 참조), 다시 살아난 라자로를 묶인 데에서 “풀어주는”(요한 11,44) 사도들이다. 이에 비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사의 도구적 원인성 이론과 질료 형상론에서 출발해서 성사가 실제적으로 효력을 낸다고 가르친다: 통회와 사죄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참회자에게 하느님의 용서가 효과를 내도록하는 배치(配置, dispositio)가 이루어진다. 마침내 둔스 스코투스는 죄의 용서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는 이론을 발전시킨다: (사죄경을 통한) 성사적 사죄의 길과 (완전한 통회를 근거로 한) 성사 밖의 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누구도 완전한 통회를 했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스코투스는 모든 사람이 성사적 사죄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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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교의사적 전개(1)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  교의사적 전개


    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참회의 형태는 상당히 다양하다. 거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공식적인 참회 예식 외에도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훈계와 경고, 갈라진 당파의 합치, 성찬례 전에 이루어지는 공동의 죄 고백, 개별적인 용서, 참회하는 이의 기도, 공동체의 중재 기도, 단식, 자선, “온갖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 (잠언 10,12; 1 베드 4,8; 2 클레 16,4)등이 있다.

    교의사적 고찰에서는 참회에 대한 역사 중에서 단지 한 부문만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다. 즉 스콜라 신학이래로 “참회의 성사”라고 일컫는 교회 공식적인 참회 형식이다. 이에 대한 역사는 상당히 복잡한데, 여기서는 단지 중요한 단계만을 보고자 한다. 가장 큰 변화는 고대교회에서 실천하였던 일생에 단 한번만 가능한 참회에서 중세 초기에 반복할 수 있는 참회 형태로 옮아간 것이다.


    3.1.     일회적이고 공개적인 파문 방식


    3.1.1.    참회 절차

    고대교회는 마태 18,18과 1고린 5에 근거한 참회 방식을 실천하였다: 살인, 간음 혹은 배교의 중대한 죄를 범한 사람은 공개적으로 성찬의 공동체에서 제외되는데, 그는 엄격한 참회 실천으로 자신을 정화하는 기간을 갖은 다음에 장엄한 예식을 통해서 다시 교회에 받아 들여졌다.


    참회 방식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1) 파문: 참회자가 죄를 고백한 다음 주교는 그에게 보속을 부여한다. 전체 공동체가 참석한 공개적인 참회 예식에서 안수, 참회복 착복 그리고 성찬의 공동체에서의 제외를 표시하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서 참회자의 신분이 된다. 공동체는 큰 슬픔을 표시하면서 이런 과정을 함께 한다. (2) 참회 기간: 통상적으로 몇년씩 지속되는 참회 기간동안 참회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보속을 완수해야 한다. 보속에 속하는 것으로는 예를 들어서 단식, 자선, 사회적 활동에 참여, 특별한 기도 실천과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공적인 직무, 결혼, 그리고 자주 부부 관계의 포기(이는 그 당시에 널리 퍼진 성에 대한 두려움, 즉 성을 악의 세력이 침입하려는 문으로 간주하는 생각과 관계가 있다)가 보속으로 요구되었다. 교회 공동체의 삶에 참회자는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미사에 참석은 하지만 성찬 예식이 시작되면 자리를 떠나거나, 참회자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로 가야만 했다. 공동체는 그들의 참회 노력을 중재의 기도로서 지원하였다. (3) 화해: 참회의 기간 마지막에 참회자들은 장엄한 공동체 전례를 통해서 (보통은 성 목요일에) 다시 성찬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 화해의 예절은 영성체 예식으로 끝맺는다. 그러나 한번 참회자였던 사람에게 부여된 금령들은 일생동안 지속되는데,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 다시 받아들여진 다음에도 “이등급 신자”로 머물게 된다.


    이런 방식 때문에 고대교회의 참회는 파문 방식의 참회라고 일컫는다. 이 참회는 공동체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후기의 참회 형태와 구분되는 가장 뚜렷한 표시는 일회성에 있다: 이런 방식의 참회는 일생에 단 한번만 허락된다. 누가 이런 참회 이후에 다시 중한 죄를 범하면, 그를 위해서는 단지 하느님의 자비에 그를 맡기는 공동체의 중재 기도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하면 보통 그에게 노자성체가 허락되었다.


    3.1.2.  신학적인 요점들

    고대교회의 참회신학은 참회 형태에서 잘 드러난다. 두가지 요소가 죄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한다. 즉 참회자 개인의 노력인 보속과 공동체와의 화해이다.

    보속은 죄의 중대함에 상응한다. 왜냐하면 너무 가벼운 보속이나 참회 기간의 단축은 참회자를 도와주지 못하고, 그에게서 구원에 필요한 과정을 빼앗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방교회의 신학자들은 이것을 주로 치유적인 관점에서 생각했는데, 즉 보속은 병자에게서 치유의 과정이 필수적인 것처럼 참회자에게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서방교회의 신학은 법률적으로 생각했다. 즉 참회자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보속은 행해져야하고, 죄지은 것은 보상되야 한다.

    두번째의 요소는 공동체이다. 3세기 초부터 교회 직무자, 즉 주교에서 사죄권이 유보되었으나(히뽈리뚜스의 『사도전승』 3장 참조), 공동체도 능동적으로 참회 예식에 참여하였다. 공동체는 참회자의 노력을 지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참회자를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과의 화해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성사적 행동이다: 교회 공동체와 다시 화해함(pax cum ecclesia)으로써 참회자는 다시 하느님과의 평화(pax cum Deo)를 이룬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공동체와 일치를 이루고 계시고, 그래서 죄인의 용서도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하시기 때문이다.


    3.2.     반복이 가능한 비밀 사죄 방식의 참회


    3.2.1.   전개 과정

    6세기까지는 고대교회의 일회적이고 공개적인 파문 방식의 참회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무거운 보속, 그리고 사죄 이후에도 지속되는 금령때문에 참회는 점점 더 늙은 나이나 죽음에 임박한 시간까지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원래는 아주 요구가 많고 엄격한 참회 계율은 비교적 가벼운 형태으로 변화되었고, 이것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참회의 성사는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특별한 회개의 노력에서 죽기 전에 받는 성사로 변하게 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391년 이후로 공개적 참회가 줄어드는 것이 나타난다. 그 대신에 점점 더 영적지도자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증가되었다. 그 영적지도자는 사제나 주교가 아니라 영성적으로 존경받는 수도자인 경우가 많았다.

    6세기에 동방교회의 영향을 받은 에이레와 영국 교회 지역에서 의도적으로 지금까지의 공개적인 참회 실천을 변경하였다. 이제는 주교가 아니라 사제를 통해서 반복적인 사죄가 일년 중 어느날에도 가능하고, 대죄만이 아니라 소죄도 고백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과거처럼 무거운 보속이 부과되었으나 이것도 곧 변경되었다. 즉 헌금, 많은 기도, 편태 등으로 대치되었다. 이런 새로운 참회 형태(‘켈트식 참회’)는 에이레-스코트랜드 선교사들에 의해서 유럽대륙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처음에 교회 교도권은 이 새로운 형태의 참회를 “저주받아 마땅한 교만”이라고 배척하였다 (예를 들어서 589년 Toledo의 지역 공의회: PL 84,353). 나중에 칼롤링의 개혁 공의회는 적어도 옛 참회 형태를 타협을 통해서 보존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래서 개인적인 죄에는 개인적인 참회로, 공개적인 죄에는 공개적인 참회를 하라고 규정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참회 형태는 계속 전파되어서 마침낸 800년 경에는 일반화 되었다.



    새로운 참회 형태는 (1) 반복성, (2)비밀 유지, 그리고 (3) 참회 기간을 점진적으로 없애 버린 것이 그 특징이다.

    (1) 중대한 잘못을 범하더라도 계속 참회가 허락되었다. 또한 소죄도 이 참회에 포함되었다.

    (2) 참회의 고백뿐만 아니라 누가 참회자인가라는 사실도 가능한 비밀로 유지되어야 한다. 비밀 유지라는 주제가 중요성을 지닌게 되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공동체 앞에서 실천되던 참회가 단지 사제에게만 알리는 비밀의 성사, “귀를 통한 고백성사”로 변화된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참회를 “사적(私的)인 참회”라고 일컬었다.

    (3) 이 형태의 참회도 처음에는 고대교회의 공개적인 참회처럼 세 단계로 구분되었다. 사제 앞에서의 죄를 고백하고 나서 참회 기간을 갖고 마지막으로 사죄를 통해서 교회에 다시 받아 들여진다. 하지만 점차로 많은 참회자들이 참회 기간이 지난 후에 사제에게 다시 와서 사죄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비밀 유지라는 이유 때문에 사죄는 죄의 고백 이후 즉시 주어졌다. 그래서 죄의 고백, 사제의 사죄, (“보속”, satisfactio라고 일컫는) 참회의 순서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런 형태는 1000년 경에 일반화되었다.

    이렇게 해서 고대교회의 공개적 파문 형태의 참회는 개인적 사죄 형태의 참회로 변화된다. 그리고 원래는 사제가 중재적인 기도 형식으로 죄의 용서를 하느님께 청하였으나,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사제가 참회자에게 용서를 선포하는 직설적인 사죄경의 형태(“나는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로 바뀌게 되었다.


    3.2.2. 신학적 평가

    1) 참회 형태의 변화는 신학적 이해의 변화와 맞물려 진행된다. 신약성서를 살펴보면 새로운 참회의 방식이 더 복음 정신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예수께서는 죄인에게 먼저 무조건 용서를 베푸시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신다. “나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가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요한 8,11). 또한 실제로 무조건적 용서는 회개, 즉 새로운 삶에로 이끄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세관장 자케오는 자신의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께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렵니다”(루가 19,8)고 말한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먼저 용서해주시고, 그 용서에 대한 대답으로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요구하신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 교회에서 보속의 실천 ― 죄의 용서의 순서보다는 죄의 용서―보속의 순서가 예수님의 정신에 더 합당하다고 하겠다.

    2) 공개적인 참회에서 비밀의 참회로 옮겨가면서 공동체의 역할은 불분명해지고, 이에 비해 사제의 역할이 전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죄경이 중개적 기도 형식에서 직설적 형식으로 바뀌면서 사제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었다. 즉 참회자를 위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사제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사제로 바뀌었다.

    3) 참회 과정에서 어느 것이 죄를 극복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인가하는 질문에 관해서는 중점이 여러번 변화되었다. 고대 교회에서는 중점이 죄인의 보속 실천과 공동체의 행동에 놓여있었지만, 중세 초기에는 죄의 고백이 강조되었다. 죄 고백 자체는 그에 따르는 수치심 때문에 보속으로 평가되었고, 그래서 참회 성사는 본질적으로 “고백성사”로 되었다. 초기 스콜라 신학(12세기)에서는 참회가 결정적인 요소였다. 통회는 참회자가 갖추어야 할 세가지 필요한 요소(통회, 고백, 보속)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는데, 통회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의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런데 중기 스콜라 신학(13세기)에서는 통회 안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사제의 사죄경(absolutio)과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이렇게 된 동기는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 결정한 고해성사의 의무 규정인데, 여기서 도구로써 사용된 개념들은 불완전한 통회(attritio)와 (죄의 용서에 필수적인) 완전한 통회(contritio)의 구분과 질료 형상론에서 나온 개념들인 질료―형상이다: 통회, 고백, 보속은 성사의 “질료”이고, 사죄경은 성사의 “형상”이다. 누가 불완전한 통회로 고해성사를 받으면 사죄경은 불완전한 통회를 완전한 통회로 바꾸는 효과를 내고, 이런 방식으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 고해성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참회자의 행동 하나만도, 사제의 사죄경만도 부족하고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그러나 누가 완전한 통회로 고해성사를 받는 경우에는 사죄경의 필요성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사죄경이 앞서 작용하여서 회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 시도된다. 이로써 고해성사의 효력과 완전한 통회를 근거로 하는 죄 사함을 관계를 확고히 하고자 한다.


    둔스 스코투스(Johannes Duns Scotus, +1308)는 통회, 고백, 보속은 고해성사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단지 성사에 필요한 전제 조건일뿐이라고 주장할만큼 고해성사를 사제의 사죄 행동과 동일시하였다.

    어떻게 교회적―성사적 과정과 하느님의 용서가 관련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고대교회와 중세 초기에는 하느님과의 화해는 교회와의 화해와 밀접히 연관되어있다는 확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확신에는 하느님의 자비는 교회적 참회의 가능성보다 더 크다는 의식도 함께하였다. 참회 이후에 다시 죄짓는 사람에게 두번째의 참회가 허락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자비에 그를 의탁하는 관습이 바로 이런 의식을 증명한다. 스콜라 신학은 (마태 16,19과 18,18에 근거해서) 사제에게 주어진 “열쇠 권한”을 언급하는데,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다: 초기 스콜라 신학은 하느님의 은총 홀로 죄를 용서한다는 데에서 출발하면서 “선포의 이론”를 발전시켰다: 성사적 사죄를 통해서 사제는 하느님에 의해서 이미 죄를 용서 받은 사람에게 그가 깨끗하고 다시 경신례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선포한다. 이에 대한 성서적 본보기는 병이 나은 문둥병자들이 깨끗하다고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사제들과 (마태 8,4 참조), 다시 살아난 라자로를 묶인 데에서 “풀어주는”(요한 11,44) 사도들이다. 이에 비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사의 도구적 원인성 이론과 질료 형상론에서 출발해서 성사가 실제적으로 효력을 낸다고 가르친다: 통회와 사죄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참회자에게 하느님의 용서가 효과를 내도록하는 배치(配置, dispositio)가 이루어진다. 마침내 둔스 스코투스는 죄의 용서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는 이론을 발전시킨다: (사죄경을 통한) 성사적 사죄의 길과 (완전한 통회를 근거로 한) 성사 밖의 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누구도 완전한 통회를 했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스코투스는 모든 사람이 성사적 사죄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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