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의 과제

 

동성애자의 과제


사물의 정상적인 질서에서는 그러한 선에 마땅히 참여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 인간은 고통을 겪는다. 그러므로 동성애자가 지닌 그들의 성향은 고통이다. 자기 탓없이 생긴 자신의 성향이 기쁨인 동성애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고통은 땅위의 어느 곳에나 인간을 따라다니고 있는 보편적인 주제이며 인간의 본성에 본질적으로 관련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인간 자신과 마찬가지로 깊은 의미가 있다. 인간은 인간 자신을 넘어서 나아가도록 “운명지어져” 있으며 신비로운 방식으로 이 초월성을 향하여 부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들 중의 하나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통은 주체 안에서 회개에, 즉 선(善)의 재건에 기여해야 하며, 그 주체는 이 회개의 부르심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인식할 수 있다.


이 권고에 반발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다. 그렇다고 이 길이 자기 부정의 무의미한 노력이 아니며 십자가의 희생을 닮아 생명을 부여하며 악행의 자리에서 덕행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시는, 바로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자기 부정이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자신의 의지를 희생시키기를 거부하는 것은 실제로 구원을 가로막는 것이다.


사실 위의 과제는 신앙으로 비추어진 인간 이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으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열망에서 의식적으로 그 동기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아직 드러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위의 과제가 수용이 어렵고 이를 고수하는 그리스도교에 분노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동성애에 대한 기본 입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포기의 가능성은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성과, 더 나아가서는 인격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일 때에 가능할 것이며, 이렇게 된다면 인류 공동체의 기초인 가정은 파괴될 것이며 더 나아가 인류 공동체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소망은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 자신이 하시던 일을 계속하려는 것 한가지뿐이기 때문이다. 오직 진리에로의 추구만이 이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최후에 가서는 올바른 길의 제시였음을 알게 할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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