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죽음을 불러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로마 5,12)
1. 인간 운명의 수수께끼
모든 인간은 얼마쯤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한편 인간은 아픔과 꺼져가는 육체의 파멸을 괴로워할 뿐 아니라 영원한 소멸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커다란 수수께끼다. 우리가 앞에서 인간 창조에 관해 살펴보았지만 하느님은 결코 얼마쯤 살다가 영원히 없어지도록 인간을 지으시지는 않았다. 그러면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어야 되는 인간 운명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인간은 옳지 못한 것,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쉽게 그것을 저지르고 만다. 원하는 바 선한 것은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바 악한 것은 곧잘 행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것은 인간 자신 안에서 이미 생각과 의지가 분열되어 있음을 말한다. ‘악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성’ 이것 또한 하느님의 창조 때부터 연유될 수 없는 것이기에 수수께끼 같은 문제이다.
이렇듯 세상의 질서와 인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볼 때, 하느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과는 달리 세상은 부조리하고 인간은 분열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인간은 아무도 대답을 줄 수 없다. 다만 하느님의 계시만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준다. 창세기 2,3장은 창조된 인간이 행복에로 초대되었다는 것과 그 초대에 인간 스스로가 거부함으로써 파멸케 되었다는 사실을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통해 밝혀 준다.
2. 아담과 하와의 낙원 생활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어 그들을 에덴 동산에 살게 하셨다(창세 2,8). 그곳에서 인류의 원조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며 살라는 하느님의 배려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성서가 밝혀 주는 창조된 인간의 본래 모습과 상태는 이 두 가지 사실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생명나무란 육체의 죽음도 거치지 않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특혜의 나무로서, 인간이 그 열매를 따먹을 권리를 받았다는 것은 불사의 은혜를 받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에덴은 성서의 표현대로 나무가 무성하고 가운데는 강물이 흐르는 곳, 즉 사람이 사는 땅으로는 제일 좋은 조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하느님을 직접 대면해서 친교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원조 아담과 하와는 은총의 상태에서(초성은혜와 과성은혜 하느님이 인간을 지으신 후 베푸신 은혜에 머물러 있던 아담고 하와의 상태를 원조의 은총상태라고 말한 다. 하느님은 유한한 인간성을 초성은혜와 과성은혜로 꾸미시어 하느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도록 했다. 초 성은혜란 인간의 영혼을 성화시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은혜이며, 과성은혜란 인간의 자연본성을 훨씬 능가하여 베풀어진 은혜로 지혜와 옳은 판단, 물질성을 넘는 불사성의 은혜 등을 말한 다. 과성은혜는 범죄 이후 거두어졌지만 초서은혜는 영세 때 원죄의 사함을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될 때 다시금 주어진다.
) 행복에로 부름을 받았고, 이것은 그 후 역사에 나타날 전 인류에게까지 유효하게 전달될 것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러한 부름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 2,16-17)는 말씀이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베푸는 행복은 하느님의 질서 안에서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지선악수’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분부는 인간을 위해 내려진 하느님의 법도다. 그것을 지킬 때 인간은 하느님이 베푸시는 생명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3. 아담과 하와의 범죄
그러나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이 하느님의 명을 지키지 못했다. 범죄의 동기는 뱀의 유혹에 끌려 하느님의 분부를 의심한 데서 시작된다. “다 먹으면 정말 죽을까?” “뱀의 유혹대로 저것을 따먹으면 하느님과 같이 되니까 못 먹게 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의심하기 시작한 원조는 한걸음 더 나아가 더 슬기로와지기 위해서 따먹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따먹을까 말까 하는 기점에 서서 결국 따먹고 말았는데 따먹은 즉시 그들은 자신이 알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에 내려진 하느님의 처벌은 죽어야 될 운명, 수고를 들여야 겨우 살 수 있는 운명이었다(창세 3장 참조). 이렇게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 앞에서 자기의 자유를 하느님의 분부를 거스르는 데 사용했다. 자유를 남용하여 하느님의 명(질서)을 지키지 못하고 파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죄이다. 인류가 창조되어 세상에 살기 시작할 무렵 이렇게 죄가 생겨남으로써 죽어야 할 운명이 되고 만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제기한 수수께끼의 답을 얻는다. 죽음이란 인간이 하느님을 잃게 된 상태이며, 그 죽음을 인류의 원조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데서 생긴 죄의 결과이다. 또한 원조 아담고 하와의 자유 남용은 모든 인간의 자유 행사의 길을 하느님의 명을 거스르는 쪽으로 기울여 놓게 됐고, 그로 인해 인간은 내부로부터 분열되어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성을 지니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인간의 행복을 역사의 순간에 상실케 했을 뿐 아니라 주어진 초성은혜와 과성은혜를 상실함으로써 온 인류를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이다.
4. 죄악으로 만연한 세상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연유된 인간성의 부패는 역사 안에서 완전히 드러나고 말았다. 창세기 4-11장에 나오는 카인의 동생 살인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노아의 홍수, 바벨탑의 사건 등은 타락하여 가는 인류 역사를 말해 준다. 사실 우리의 현실을 보더라도 세상은 너무나 죄악으로 만연되어 있다. 매일같이 신문의 사회면에는 갖가지 범죄 사건이 기재되고 있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싸움과 전쟁, 한곳에서는 배고파 울고 다른 한 곳에서는 배를 두드리는 부조한 현상, 이 모든 것이 죄로 만연된 세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의로운 지위에 두셨으나 인간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 역사의 시초부터 제 자유를 남용하였고 하느님께 대립하고 하느님을 떠나서 제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하느님의 계시로 우리에게 알려진 이 사실은 우리 경험과 일치한다. 과연 인간은 제 마음을 살펴볼 때, 자신이 악에 기울어져 잇고 착하신 창조주로부터는 올 수 없는 여러 가지 죄악에 빠져 있음을 발견한다”(사목 13). 앞에 인용한 로마서(5,12)의 바울로의 말씀도 아담과 하와의 죄를 두고 모든 인류가 죄의 지배 하에 놓임으로써 죽게 됐다고 한 말씀이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의 죄는 온 인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원조 아담과 하와의 죄는 인류의 모든 죄에 앞서 최초로 범해졌고 또 죄의 원형이 되고 있으므로 이 죄를 원죄라 한다. 모든 인류가 아담의 후예로서 이 원죄 안에서 죽게 되었지만 교회는 구세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되어 새 생명을 받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1고린 1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