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찌아노, 아테나고라스
앞에서 살펴본 성 유스띠노 외에 호교론자들이 많지만, 2세기 교회 상황을 잘 엿볼 수 있는 다찌아노와 아테나고라스를 비교하여 보도록 하자.
10.1. 다찌아노
다찌아노는 120년 경에 시리아의 이교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로마에 와서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였다. 그후 그는 성 유스띠노의 제자가 되지만, 희랍철학과 이교사상에 대한 입장과 신앙의 태도에서는 스승과 생각을 달리 하였다. 유스띠노는 「로고스 신학」을 통해 이성과 신앙, 학문과 종교의 조화를 꾀하였던 반면, 다찌아노는 이교문화를 일체 배격하면서 희랍문화와의 극단적인 단절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종교생활 면에서도 극단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였는데, 172년에 메소포타미아에 가서 영지주의의 성격이 농후한 「금욕주의자들」의 한 분파를 세움으로써 정통교회에서 떠났다. 이들은 엄격한 희생과 극기를 이상적인 생활로 생각하여 결혼생활도 간음과 같은 부당한 것이라 하고, 일체의 육식과 주류를 금했다. 그의 극단적 금욕주의는 인간 육신을 천시하는 영지주의적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다찌아노는 의미있는 두 편의 저서인 「희랍인들에게 고함」과 「디아떼싸론」을 남겼다. 「희랍인들에게 고함」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호교론적인 저서이다. 이 저서에서 그는 이교문화와 희랍철학을 멸시하고 배척하며, 그 비도덕성을 여러 각도에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하느님의 초월성, 「로고스」의 역사하심, 인간창조, 부활, 공심판, 그리고 자유의지, 천사의 타락, 아담과 하와의 범죄, 타락한 천사와 악신 등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는 희랍문화에 비해 그리스도교의 고대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부도덕하고 식인종들이라고 하는 그릇된 소문에 근거하여 박해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역설하였다. 한편 「디아떼사론」은 성서학적으로 흥미로운 저서인데, 4복음서에 중복되어 나오는 내용들을 정리하고 종합하여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 즉 「예수 전기」형식으로 편집한 것이다. 이 작품은 성서정전이 확정되기 이전까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에서 공적 전례에 사용할 정도로 권위를 갖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