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그리스도의 가현설
천상의 그리스도가 영지를 알려주기 위해 이 세상에 왔을 때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나타났는가? 영지주의자들은 인간 육신 안에 감금되어 있는 「신적 섬광」을 해방시키러 온 그리스도가 절대로 육신을 취할 수 없으며, 단지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위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허깨비 또는 환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가현설」이라 부른다. 예컨데 그리스도가 처형당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로마 군사가 지나가던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한 일이 있는데, 영지주의자들은 이때 진짜 그리스도는 빠져나가고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서 처형당했다고 설명한다.
이 가현설은, 인간 육신은 궁극적으로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그들이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는 육화의 신비를 부인하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내용에 좀 더 접근하려는 영지주의파들중에 발렌티노파에서는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서 태어나셨지만 마치 통속을 지나오듯 마리아를 거쳐왔을 뿐이지, 육신을 취하신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가 하면, 아펠레파에서는 그리스도의 육신이 이 지상의 것이 아니라, 외계의 별에서 온 육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며 인간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도 부인한다. 따라서 영지주의는 여러가지 면에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