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해방과 교회 발전-종교해방 후의 교회발전

 

32.2. 종교해방 후의 교회발전


‘불법적인 종교’, ‘지하교회’ 또는 ‘까다꼼바교회’로 특징지워지던 그리스도교는 콘스탄띠누스의 포고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의 보호와 특권을 누리게 되면서 4-5세기에 황금기를 맞게된다. 교회는 대중의 대량 입교로 인해 양적으로 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수많은 교부들을 배출하였다. 사실 교부학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교부들은 대부분 이 시대에 속한다. 교회의 주교들은 당시의 최고의 지성인들이었으며, 온갖 형태의 이교사상과 반(反) 그리스도교적 사상을 거슬러 교회의 교리를 정립시켜 나갔다. 교회의 신학발전은 4대 공의회 즉 니체아 공의회(325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 에페소 공의회(431년), 칼체돈 공의회(451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신학자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서를 연구하고 다양한 신학사상을 개진하는 가운데, 특히 성삼론이나 그리스도론 같이 미묘하고 어려운 문제에 있어서는 이단적인 사상들이 나올 수도 있었다. 이러한 이단들에 대한 논쟁을 통해 신학이 발전되었으며, 공의회들을 통해 정통교리가 확정, 공포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시대에는 교회에 부정적인 요소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교가 누리게 된 영광과 특권을 메시아적 승리의 관점에서 이해하는가 하면, 교회가 국가권력과 너무 밀착되어 부(富)와 권력을 누리면서 세속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대중의 입교로 인해 완화된 세례준비와 입교절차 때문에 신자들의 신앙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여 교회의 복음화와 내적 쇄신 그리고 신앙의 심화를 위해 수도생활 운동이 도처에서 나타났다. 수도자들은 교회의 타락과 세속화를 막아주는 소금의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박해시대의 순교영성을 대신하여 교회를 강화시키고 쇄신하는 힘이 되었다. 사실 당시의 유명한 교부들 중에는 성 바실리우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우스, 성 아우구스띠누스등 수도자 출신 주교들이 많았다.


한편 서방교회는 라틴어를, 동방교회는 희랍어를 통용어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서방교회 사이의 신학적 교류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의 많은 희랍어 문헌들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은 예로니무스와 루피누스이다. 그들은 동방교회의 신학을 서방에 소개하는 데에 공헌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번역한 문헌들 중에는 후에 희랍어 원문이 상실되고 라틴어 번역만 남아있는 경우들이 많아 귀중한 역사적 문헌들을 후대에 전해주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공로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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