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사람이 약해질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가족들이 자신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질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벽, 이승훈 등도 부모 때문에 배교를 했다. 완강한 부모 앞에서 보통의 자녀들은 약해진다. 그런데 예전에 한 의로운 사람이 있었다. 한 무리가 그에게 동료를 배반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 무리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끌고 와서 배반을 강요했다.




“네가 끝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너의 가족들을 죽이겠다.”




그러자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한다.




“죽는게 두렵니?”




그러자 아내와 아이들은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살고자 다른 이를 모함할 수는 없단다. 우리 의롭게 죽음을 선택하자꾸나.”




결국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마치 마카베오서에 나타나는 어머니와 일곱 자녀들처럼(2마카7.1-14)




한편 조정에서는 주문모 신부의 거처를 알아낼 수 없었기에 안달이 났다. 그들은 약종의 아들 정철상 가롤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약종이 의금부의 옥에 갇히자 가롤로는 옥 근처에 머물면서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하여 심부름도 하고, 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지냈다. 관리들은 가롤로를 붙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얘야! 네가 한 마디만 한다면 너의 아버지는 물론 저 옥에 갇힌 사람들이 다 풀려날 수 있단다. 너도 중국인 신부를 본적이 있지?”




“저는 잘 모릅니다.”




“어허! 이놈아! 네놈이 말하지 않으면 네 아버지는 물론이고 저 옥에 갇힌 사람들은 모조리 참수를 당할 것이니라. 네놈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네 아비를 죽이고자 함이니 그것이 어찌 자녀의 도리란 말이냐?”




“모르는 것을 어찌 안다고 말씀드리겠습니까?”




“어허! 그 애비의 그 아들이로구나. 네 이놈! 네놈도 천주학쟁이라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네놈을 잡아넣지 않는 이유는 애비와 아들을 함께 죽일 수 없어서 이거늘 어찌 그리 모른단 말이냐! 네놈의 아비 다음에는 바로 네놈 차례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그렇다 할지라도 어찌 부모의 뜻을 거절할 수 있겠사옵니까? 어찌 자식이 부모의 노력을 헛되게 할 수 있사옵니까? 나리라면 그렇게 하시겠사옵니까?”




“네 이놈. 두고보자.”




  정철상 가롤로는 아버지가 순교의 영광을 받은 날 체포되어 한달 뒤(1801년 5월 14일) 기쁜 마음으로 순교의 영광을 안았으니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한편, 의금부의 옥에는 새로운 형제가 순교의 길을 함께 하기 위해서 왔으니 그는 바로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었다. 이존창 루도비코는 첫 번 박해 때 나약해져서 잠시 배교하였지만 다시 일어나서 굳굳하게 하느님의 나라를 전한 사람이었다.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만들어낸 분이 바로 이존창 루도비코였고, 바로 우리는 그분의 노력으로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초선 최초의 신부 두 사람이 그의 집안이었으니, 김 안드레아 신부님이 그의 조카딸의 손자요, 최양업 신부님은 그의 조카의 손자였다. 바로 그가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의금부로 입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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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람이 약해질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가족들이 자신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질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벽, 이승훈 등도 부모 때문에 배교를 했다. 완강한 부모 앞에서 보통의 자녀들은 약해진다. 그런데 예전에 한 의로운 사람이 있었다. 한 무리가 그에게 동료를 배반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 무리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끌고 와서 배반을 강요했다.


    “네가 끝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너의 가족들을 죽이겠다.”


    그러자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한다.


    “죽는게 두렵니?”


    그러자 아내와 아이들은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살고자 다른 이를 모함할 수는 없단다. 우리 의롭게 죽음을 선택하자꾸나.”


    결국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마치 마카베오서에 나타나는 어머니와 일곱 자녀들처럼(2마카7.1-14)


    한편 조정에서는 주문모 신부의 거처를 알아낼 수 없었기에 안달이 났다. 그들은 약종의 아들 정철상 가롤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약종이 의금부의 옥에 갇히자 가롤로는 옥 근처에 머물면서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하여 심부름도 하고, 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지냈다. 관리들은 가롤로를 붙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얘야! 네가 한 마디만 한다면 너의 아버지는 물론 저 옥에 갇힌 사람들이 다 풀려날 수 있단다. 너도 중국인 신부를 본적이 있지?”


    “저는 잘 모릅니다.”


    “어허! 이놈아! 네놈이 말하지 않으면 네 아버지는 물론이고 저 옥에 갇힌 사람들은 모조리 참수를 당할 것이니라. 네놈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네 아비를 죽이고자 함이니 그것이 어찌 자녀의 도리란 말이냐?”


    “모르는 것을 어찌 안다고 말씀드리겠습니까?”


    “어허! 그 애비의 그 아들이로구나. 네 이놈! 네놈도 천주학쟁이라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네놈을 잡아넣지 않는 이유는 애비와 아들을 함께 죽일 수 없어서 이거늘 어찌 그리 모른단 말이냐! 네놈의 아비 다음에는 바로 네놈 차례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그렇다 할지라도 어찌 부모의 뜻을 거절할 수 있겠사옵니까? 어찌 자식이 부모의 노력을 헛되게 할 수 있사옵니까? 나리라면 그렇게 하시겠사옵니까?”


    “네 이놈. 두고보자.”


      정철상 가롤로는 아버지가 순교의 영광을 받은 날 체포되어 한달 뒤(1801년 5월 14일) 기쁜 마음으로 순교의 영광을 안았으니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한편, 의금부의 옥에는 새로운 형제가 순교의 길을 함께 하기 위해서 왔으니 그는 바로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었다. 이존창 루도비코는 첫 번 박해 때 나약해져서 잠시 배교하였지만 다시 일어나서 굳굳하게 하느님의 나라를 전한 사람이었다.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만들어낸 분이 바로 이존창 루도비코였고, 바로 우리는 그분의 노력으로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초선 최초의 신부 두 사람이 그의 집안이었으니, 김 안드레아 신부님이 그의 조카딸의 손자요, 최양업 신부님은 그의 조카의 손자였다. 바로 그가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의금부로 입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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