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위

 

 


   전북 익산군 망성면 화산리는 한국인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이 유학한 지 9년만에 사제가 되어 이 땅에 첫 발을 디딘 황산포에서 2km 떨어진 한적한 마을이다. 1845년 10월 12일 김신부님은 조선교구 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님과, 5대 교구장님이 되신 다블뤼 安주교님을 모시고 황산포에서 이곳 나바위에 도착, 교우 구순오의 집에서 은거하였다.


   나바위 성당은 비록 피흘림이 있었던 순교지는 아니지만 한국 교회가 길이 보존해야 할 축복의 땅이다. 초기 한국교회의 유적지인 나바위가 순교지가 아니데도 성지로서 신자들의 끊임없는 순례의 발길이 닿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한국 땅에서 한국인 신부에 의해 처음으로 미사성제가 봉헌된 곳이기 때문이다. 나바위는 조선 헌종 11년(1845년) 10월 12일 밤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라파엘호를 타고 입국, 첫발을 디딘 황산포에서 약 2km 떨어져 있는 한적한 마을로 김신부는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고주교와 제 5대 교구장이 되신 다블뤼 安주교를 모시고 이곳 신자 구순오의 집에 은거하면서 첫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1897년 나바위지방의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는 요안군 안대동 공소에 살면서 성당 부지를 물색하던 중 동학란 때 멸망한 김여산의 집을 사들여 성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이때의 본당 내부는 남녀칠세 부동석의 한국 풍속에 따라 남녀 교우들이 구별하여 앉도록 입구도 다르고, 좌석도 칸막이로 가려 구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바위에는 김신부님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나바위는 원래 “너른 바위”에서 나온 말이다. 나바위가 있는 이곳 화산(華山)은 우암 송시열이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광장같이 너른 바위가 있는데 화산 위에 자리잡고 있는 나바위 성당은 이 너른 바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본떠서 세운 김대건 순교비가 우뚝 세워져 있는 이곳 나바위는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입국하던 성직자들의 결의에 찬 모습들을 묵상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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