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단과 공의회(公議會)
아리아니즘 때문에 처음으로 공의회가 열리게 되었고 또 새로 이단이 나올 때마다 잇따라 공의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공의회에서는 문제의 그릇된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하는 한편, 정통신앙을 신경(神經)으로 확정지었다.
이단은 한때 교회에 분열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불행한 일이었으나 신앙을 연구하여 심화시킨 점에서 불행한 일이었으나 신앙을 연구하여 심화시킨 점에서는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공의회는 8차까지 모두 동방(비잔틴)에서 열렸으며 황제들이 소집하고 주재했다.
이것은 당시 정치적으로는 물론 신학적으로도 동방이 서방보다 우세했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의 4차례의 공의회 중 325년의 ‘니체아 공의회(제1차)’와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제2차)’는 삼위일체론을 다루었고, 431년 ‘에페소 공의회(제3차)’와 451년의 ‘갈체돈 공의회 (제4차)’는 그리스도론을 다루었다.
공의회로 이단은 극복되었으나 이단자까지 극복되지는 못했다. 이단자들은 파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장을 고수하며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때 로마제국을 휩쓰지 않을까 하고 크게 우려했던 아리아니즘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강력한 조처로 로마제국에서는 사라질 수 있었으나 고트족, 반달족등 새로 등장한 게르만민족에게 널리 전파되어 가톨릭 신앙의 가장 큰 적수가 되었다.
네스토리아니즘도 박해로 제국에서는 사라졌으나 페르시아로 가서 고유한 교회를 세웠고, 나아가서는 인도를 거쳐 7세기에는 중국에까지 전파되어 경교(景敎)로 불렸다.
또한 단성론은 다음 세기에 나타나 553년의 제5차 공의회에서 단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 이디오피아등지로 널리 전파되어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