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노리오 1세 교황 Honorius 1.

 77. 호노리오 1세 교황  Honorius Ⅰ.  625~638

교황 호노리오 1세라는 이름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황권과 교황의 무류성을 둘러싼 논쟁에 있어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교황 호노리오 1세는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의 제자였으며, 625년 10월 27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는 단성론주의자들을 다시금 교회와 화해시키기 위해 애썼으나 동시에 단의론이라는 또 다른 이단으로 빠졌다. 교황 호노리오 1세는 총대주교에게 보내는 이 편지를 통해 단의론에 동의했다. 681년에 개최되었던 콘스탄티노폴리스 보편 공의회는 이 가르침을 이단으로 단죄했고, 단의론의 옹호자들을 파문시켰다. 하지만 비잔틴 황제는 그의 신하들에게 의무적으로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도록 명령했다.


  공의회가 결정한 단죄에는 교황 호노리오 1세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황 호노리오 1세의 후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교황 레오 2세는 호노리오 1세가 사도적인 가르침을 위반하였다고 비판하였다. 후에 교황 레오 2세는 자신의 비판을 완화시켰다. 즉 교황 호노리오 1세는 부주의로 인해 이단의 불길을 적절한 시기에 충분히 잡지 못했다고 자신의 바판을 완화시켰다. 이른바 ꡐ호노리오 문제ꡑ는 교황의 무류성에 관해서 정의를 내린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정의에 반대하는 자들은 호노리오의 오류에 대해 언급하였다. 실제로 교황은 칼체돈 공의회의 결정을 고수하고자 했다. 내심으로 교황 호노리오 1세는 단의설에 동조하는 자신의 태도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분명한 상태에 있지 않았다.


  실제로 교황 호노리오 1세는 교회의 현명한 지도자였다. 영국의 선교에 열중했을 뿐만 아니라,아리우스주의의 이단자들을 교회로 다시 복귀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도 열중했다. 그 밖에 그는 교회 재산을 모범적으로 관리하였고, 그 사용에 있어서도 탁월했다. 교황 호노리오 1세는 638년 10월 12일에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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