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 2세 교황 Stephan 2.

 102. 스테파노 2세 교황  Stephan Ⅱ.  752~757

스테파노 2세는 로마의 오르시니(Orsini) 가문 출신의 부제로서 752년 3월 26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스테파노 2세 교황은 랑고바르드족에 의한 가장 강력한 위협을 체험하였고, 랑고바르드족은 752년 10월 교황에게 로마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하고 공물세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동로마의 황제는 도움을 요청하는 교황 스테파노 2세의 호소를 들어줄 수도 없었고, 아울러 들어줄 의사도 없었다.


  교황 스테파노 2세는 로마인들이 숭모하는 그리스도상을 직접 모시고 행한 참회 행렬에서 프랑크족과의 첫 번째 접촉을 가졌다. 그 결과 프랑크의 국왕 피핀은 교황이 요청한 도움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 피핀은 스스로 그리스도교의 왕으로 자처하였고, 자신에게 교황권을 보호해야 할 임무가 위임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피핀은 왕으로 등극할 때, 수도 대주교가 국왕 도유식을 주재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프랑크족의 초대가 있자, 동로마의 황제는 교황 스테파노 2세에게 랑고바르드족과 접촉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교황은 먼저 파비아(Pavia) 여행을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파비아 여행은 내부적으로는 독일 여행을 계속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동로마의 황제는 매우 격분하였다. 이로써 교황권은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해 왔던 비잔틴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프랑크 제국 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피핀 국왕으로부터 치대한의 융숭한 영접을 받은 교황 스테파노 2세는 프랑크 제국과 수교 동맹을 맺었다. 이 동맹으로 피핀은 랑고바르드족의 위협으로부터 교황권을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 교황 스테파노 2세는 피핀의 국왕 도유식을 다시금 성대하게 반복해 주었다. 피핀은 제국 의회에서 행한 공식적인 연설을 통해 자신이 점령한 모든 지역을 성 베드로에게 증여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바로 이 증여로 나중에 성립될 교회 국가의 초석이 다져지게 되었다. 피핀의 국왕 도유식 때 교황 스테파노 2세는 피핀에게 ꡐ로마의 귀족ꡑ이라는 공식적인 칭호를 수여하였다. 이로써 로마 교회를 공식적으로 보호하는 권한이 프랑크 제국에 위임되었고, 프랑크 제국과의 수교 동맹은 비준되었다. 교황 스테파노 2세는 757년 4월 26일 서거하였고, 바티칸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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