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하드리아노 1세 교황 Hadrian Ⅰ. 772~795
8세기 중반 이후 독일 제국에서는 불화가 발생하였다. 칼 대제와 그의 형제 칼만이 제국의 통치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두 형제는 서로 불화와 갈등의 관계에 직면하였다. 그리고 칼만이 요절하자(771년), 칼 대제는 단독으로 독일 제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랑고바르드족은 칼 대제를 만나기 위한 의도로 칼만의 아들들을 왕위에 올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 칼 대제는 교황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772년 2월 1일 교황으로 선출된 하드리아노 1세-그는 로마의 귀족인 콜론나 가문의 출신이었다-는 772/773년에 랑고바르드족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크 제국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칼 대제는 즉시 랑고바르드족의 침공을 물리쳤다. 로마 순례의 길에 오른 칼 대제는 성대한 의전 절차에 따라 영접을 받았고, 774년 부활 대축일에 피핀의 증여를 다시금 서약하였다. 하드리아노 1세 교황 재임시 교황 문서에 날짜를 기입하는 관례에 변화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비잔틴 황제의 통치 해에 따라 날짜를 기입하였으나 이제부터는 교황의 독자적인 재임 해에 따라 날짜를 기입하였다. 아울러 주화에 사용하는 초상도 비잔틴 황제의 초상이 아니라 교황 자신의 초상을 각인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교회 국가는 공식적으로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781년 교황 하드리아노 1세는 칼의 네 살 먹은 아들 피핀을 ꡐ랑고바르드의 왕ꡑ으로 도유하였고, 루트비히-나중에 프롬메의 황제 루트비히-를 ꡐ아키텐의 왕ꡑ으로 도유하였다. 칼 대제가 또 다른 기회를 이용하여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 교회 국가는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교회 내적으로 볼 때 교황 하드리아노 1세의 재임 기간은 동방 교회와의 일치를 회복시키려는 시기였다. 787년에 개최되었던 제7차 니케아 공의회에 교황이 참석하거나 아니면 교황에 의해 파견된 특사가 참석함으로써, 그리고 공의회의 결정을 교황이 승인함으로써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일치는 실현되기도 하였다. 교황 하드리아노 1세는 795년 12월 25일 서거하였다. 교황은 22년간 칼 대제와 함께 활동하였다. 교황이 서거했을 때, 칼 대제는 마치 형제의 죽음처럼 그렇게 슬퍼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교화와 프랑크 제국의 유대 관계는 계속되었다.

107. 하드리아노 1세 교황 Hadrian Ⅰ. 772~795
8세기 중반 이후 독일 제국에서는 불화가 발생하였다. 칼 대제와 그의 형제 칼만이 제국의 통치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두 형제는 서로 불화와 갈등의 관계에 직면하였다. 그리고 칼만이 요절하자(771년), 칼 대제는 단독으로 독일 제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랑고바르드족은 칼 대제를 만나기 위한 의도로 칼만의 아들들을 왕위에 올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 칼 대제는 교황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772년 2월 1일 교황으로 선출된 하드리아노 1세-그는 로마의 귀족인 콜론나 가문의 출신이었다-는 772/773년에 랑고바르드족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크 제국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칼 대제는 즉시 랑고바르드족의 침공을 물리쳤다. 로마 순례의 길에 오른 칼 대제는 성대한 의전 절차에 따라 영접을 받았고, 774년 부활 대축일에 피핀의 증여를 다시금 서약하였다. 하드리아노 1세 교황 재임시 교황 문서에 날짜를 기입하는 관례에 변화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비잔틴 황제의 통치 해에 따라 날짜를 기입하였으나 이제부터는 교황의 독자적인 재임 해에 따라 날짜를 기입하였다. 아울러 주화에 사용하는 초상도 비잔틴 황제의 초상이 아니라 교황 자신의 초상을 각인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교회 국가는 공식적으로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781년 교황 하드리아노 1세는 칼의 네 살 먹은 아들 피핀을 ꡐ랑고바르드의 왕ꡑ으로 도유하였고, 루트비히-나중에 프롬메의 황제 루트비히-를 ꡐ아키텐의 왕ꡑ으로 도유하였다. 칼 대제가 또 다른 기회를 이용하여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 교회 국가는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교회 내적으로 볼 때 교황 하드리아노 1세의 재임 기간은 동방 교회와의 일치를 회복시키려는 시기였다. 787년에 개최되었던 제7차 니케아 공의회에 교황이 참석하거나 아니면 교황에 의해 파견된 특사가 참석함으로써, 그리고 공의회의 결정을 교황이 승인함으로써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일치는 실현되기도 하였다. 교황 하드리아노 1세는 795년 12월 25일 서거하였다. 교황은 22년간 칼 대제와 함께 활동하였다. 교황이 서거했을 때, 칼 대제는 마치 형제의 죽음처럼 그렇게 슬퍼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교화와 프랑크 제국의 유대 관계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