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니콜라오 2세 교황 Nikolaus Ⅱ. 1058~1061
피렌체의 주교였던 제라르(Gerhard von Burgund)는 수도승 힐데브란트에 의해 교황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로마의 귀족 투스칼리니 가문은 교황 스테파노 9세의 서거 후 벨레트리(Velletri)의 주교를 교황 베네딕토 10세로 옹립하였다. 힐데브란트는 교황권을 로마 귀족들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더 나아가 교회의 개혁을 가속화시키려고 모색하였다. 이를 위해 힐데브란트는 제라르를 적임자로 보았다. 니콜라오 2세는 1058년 12월 6일 시에나(Siena)에서 추기경들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2세는 1059년 1월 수트리(Sutri) 시노드를 소집하여 베네딕토 10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그사이 베네딕토 10세는 로마를 떠났고, 그래서 니콜라오 2세 교황은 1059년 1월 24일 로마에서 성대한 착좌식을 치를 수 있었다.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는 교회 개혁 작업의 일환으로 라테라노에서 시노드를 개최하였다. 이 시노드에는 113명의 주교들이 참석하였다. 이 시노드에서는 성직 매매를 거부하는 엄격한 규정을 반포하였으며, 사제들에게는 독신 생활을 요구하였다. 또한 교황 선거에 대한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 법령에 따르면, 주교 추기경들은 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고 자신들의 결정을 사제 추기경들과 부제 추기경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그래야만 교황 선거가 종결될 수 있었다. 로마의 백성들과 성직자들은 단지 선거의 결과에 대해 동의만을 행사한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왕 또는 황제는 앞으로는 더 이상 제안권을 행사할 수 없고 단지 동의의 권리만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추기경단은 사실상의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2세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노르만족과 화평을 원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2세는 노르만족의 몇몇 제후들에게 영지를 봉토로 주었고, 이에 대응하여 제후들은 교황에게 봉신(封臣)의 서약을 이행하였다. 이는 곧 이탈리아에서 행사하는 독일 제국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빚었으며, 이 때문에 지금까지 원만하게 유지되었던 교황과 독일제국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그래서 보름스(Worms)에 모인 독일의 주교들은 1061년 교황의 직무 수행을 무효로 선언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2세는 1061년 7월 19일 아니면 27일 서거하였다.

174. 니콜라오 2세 교황 Nikolaus Ⅱ. 1058~1061
피렌체의 주교였던 제라르(Gerhard von Burgund)는 수도승 힐데브란트에 의해 교황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로마의 귀족 투스칼리니 가문은 교황 스테파노 9세의 서거 후 벨레트리(Velletri)의 주교를 교황 베네딕토 10세로 옹립하였다. 힐데브란트는 교황권을 로마 귀족들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더 나아가 교회의 개혁을 가속화시키려고 모색하였다. 이를 위해 힐데브란트는 제라르를 적임자로 보았다. 니콜라오 2세는 1058년 12월 6일 시에나(Siena)에서 추기경들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2세는 1059년 1월 수트리(Sutri) 시노드를 소집하여 베네딕토 10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그사이 베네딕토 10세는 로마를 떠났고, 그래서 니콜라오 2세 교황은 1059년 1월 24일 로마에서 성대한 착좌식을 치를 수 있었다.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는 교회 개혁 작업의 일환으로 라테라노에서 시노드를 개최하였다. 이 시노드에는 113명의 주교들이 참석하였다. 이 시노드에서는 성직 매매를 거부하는 엄격한 규정을 반포하였으며, 사제들에게는 독신 생활을 요구하였다. 또한 교황 선거에 대한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 법령에 따르면, 주교 추기경들은 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고 자신들의 결정을 사제 추기경들과 부제 추기경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그래야만 교황 선거가 종결될 수 있었다. 로마의 백성들과 성직자들은 단지 선거의 결과에 대해 동의만을 행사한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왕 또는 황제는 앞으로는 더 이상 제안권을 행사할 수 없고 단지 동의의 권리만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추기경단은 사실상의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2세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노르만족과 화평을 원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2세는 노르만족의 몇몇 제후들에게 영지를 봉토로 주었고, 이에 대응하여 제후들은 교황에게 봉신(封臣)의 서약을 이행하였다. 이는 곧 이탈리아에서 행사하는 독일 제국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빚었으며, 이 때문에 지금까지 원만하게 유지되었던 교황과 독일제국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그래서 보름스(Worms)에 모인 독일의 주교들은 1061년 교황의 직무 수행을 무효로 선언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2세는 1061년 7월 19일 아니면 27일 서거하였다.